대략 15년 만인가 봅니다.
얼마전 9월 첫 일요일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습니다.
도선사 입구 쪽에서 출발한 백운대 산행!
90년대 초반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던 해의 새해 첫 날, 하얀 눈을 이고 거연히 솟은 백운대를 찾아 희망 한가득 안고 내려오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는 서른 살을 전후한 나이임에도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운동이란 걸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이 번 산행은 예상과는 다르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아프지도 않았고 물집 따위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산을 잘 타지 못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 증상인 하산 시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현상도 거의 없었습니다. 9월 초인데도 무더위가 기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다지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운동부족인 여인네들도,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들도 생각보다 산을 잘 올랐습니다.

예전 기억에 산 저아래서 백운대 정상을 바라보며 허리를 펴면,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이제 다 왔다고 격려반 약올리기 반으로 마주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백운대 정상이 바라다 보이고 인수봉이 가까이 보이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인수봉을 암벽등반으로 오르는 사람들을 제법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흔들흔들 하면서도 조금씩  자일을 튕기면서 잘도 오릅니다.
백운대에서 바라본 인수봉

백운대 한 5백미터 전일까요, 백운산장에 이르렀습니다. 시장기가 밀려오지만 배에 음식을 담고 오르면 무거워서 더 힘들까봐 물만 조금 마시고 다리를 쉬어 다시 올랐습니다. 백운대 정상에 이른 길이 좀 바뀐 것 같습니다. 오르 내리는 사람들이 같은 등산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약간 위험한데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두 잘 올랐습니다.

드디어, 백운대 정상!
정상에 선 순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이르러 하늘로 시선을 던집니다.
깨끗한 하늘! 여전히 높은 하늘입니다. '잘 있었나?'
하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사진 몇 장 담았습니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운대 정상에서는 모두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도 보이고, 저멀리 하얀 아파트들도 즐비하게 보입니다.
산아래서 그렇게도 높아보이던 바위산 인수봉도 저만치 아래 있습니다.
조금 더 올라 정상에 서면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과거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오늘이 때로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거의 매일 힘들게 살아가지요.
뜻한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고,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때도 있는 법이지요.
우리는 압니다. 그게 인생이란 것을. 또 우리는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땀흘리며 오른 백운대 정상은 백두산 아래 있고, 인수봉 위에 있습니다.
그러니 또 오르면 더 높은 봉우리에서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백운대 산행을 통해 한 가지 기쁜 일은 예전보다 다리와 폐, 심장이 모두 튼튼해 진 것을 알았다는 점입니다.
올 해는 봄, 늦봄 연이어 손가락과 발목을 다쳐서 달리기를 하지 못했는데도 백운대 산행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경력이 가진 연륜이 연습부족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나봅니다. 산을 내려오며 작은 다짐을 합니다. 산을 내려가 평지에 이르면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야 겠다고.
평지를 힘껏 달리면 정상에 이르는 길도 그리 힘들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한가지 기쁜 일은, 아이들이 많이 커서 어린 나이에 백운대 정상에 거뜬히 오를만큼 자랐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산행을 성공리에 해냄으로써 아이들 다리와 가슴, 머리 속에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믿습니다.

백운대, 인수봉아 안녕!
다음에 다시 보자. 그 때까지 상처입지 말고 잘 있어 줘.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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