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는 나의 무대
- 미술 총감독 한유정


▶ 방송일시 : 2007년 1월 11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황범하, 작가 : 허수빈

 

영화의 꿈이 시작되는 세계적인 영화 제작소 미국 할리우드.
할리우드는 배우나 감독 외에도 수많은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진검 승부를 펼치는 세계 최고무대다.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은 세트 제작에서부터
작은 소품배치에 이르기까지
카메라에 담기는 모든 공간을 연출하는 영화제작 전문가.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미술 총감독 중 동양인은
불과 5% 미만에 불과하다.
그 엄격하고 냉혹한 할리우드의 벽을 넘어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미술 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유정씨(34).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영화, TV쇼, 광고 등의 미술 총감독으로 활동한지
9년째가 된 그녀는
파라마운트, 워너브라더스, ESPN, MTV, NBC 등
유수의 제작사와 함께 일했다.
앞으로 5년 안에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 세계 TOP 10에
들겠다는 당찬 계획을 갖고 있는
한유정의 할리우드 도전기와
할리우드를 무대로 펼치는 그녀의 활약상을 따라간다.


▶ 할리우드의 토종 한국인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 한유정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손을 거친다. 그 중 카메라에 담기는 모든 공간을 창조하고 연출하는 총책임자가 바로 프로덕션 디자이너, 미술 총감독이다.
20년 전만해도 할리우드의 여성 미술 총감독은 극소수였을 뿐더러 특히, 외국인이
할리우드에 입성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그런 미개척지에 10년 전 도전장을 내밀고 당당히 할리우드에서 유일한 한국인 미술
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유정씨. 교포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조기 유학파도 아닌
그녀가 자신의 한글 이름 ‘한 유 정’을 당당히 내걸고 할리우드의 냉혹하고 엄격한
무대를 누빌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리더십과 섬세한 미적 감각, 그리고 신선한
아이디어와 도전정신, 자신감 때문이었다.

★ 할리우드는 겉보기에 그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화려한 꿈의 무대처럼 비춰지지만,  그 실상은 치열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항상 나를 긴장하게 하며 나태해 지지 않게 잡아주는 그 할리우드의 전쟁터가 삶의 원동력이다. ★                        
-한유정 인터뷰 중-

▶ 할리우드에서 고교시절 꿈을 이루다.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영화, 광고, TV쇼 등의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
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본래는 연극이나 오페라의 무대 디자이너가 꿈이었다는
한유정씨. 고교시절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었던 때만 해도 한국의 무대 디자인 분야는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한국의 대학에서 실내 환경 디자인과를 졸업, 1년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하며 악착같이 포트폴리오를 준비한 것은 바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 즉 미국으로 떠나오기 위함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1년간 매일 밤샘 작업했던 포트폴리오가 마침내 미국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무대 디자인 석사 과정에 입학허가를 가져다주었다. 유학시절 덩그러니 작업실에 홀로 남아 도면을
그리고, 무대를 세우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꿈에 매일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늘 행복했다.

★ 유정은 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훌륭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미술 쪽의 이력, 시각적 역량, 상상력으로 봤을 때 그녀가 그 일을 분명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유정의 스승 ‘단 월런’(연극과 조교수)-

▶ 최고의 배경과 공간을 창조하는 미술 총감독, 한유정

대학원 시절, 연극과 대학원 학생들에게 의뢰받은 무대 디자인을 해주며 자신의 경력을 쌓아갔던 한유정씨. 당시 그녀에게 작품을 의뢰했던 대학원 학생 중에는 영화 프로듀서가 있었다. 뛰어난 미적 감각과 순발력, 그리고 팀을 이끄는 리더십이 뛰어났던 그녀는 대학원에서 만난 영화 프로듀서의 발탁으로 1999년 정우성, 고소영 주연의 <러브>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을 맡았다. 이 후 무대 디자이너가 아닌 미술 총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엔디 가르샤, 제임스 코번, 믹 제거 등 유명 스타들이 출연했던 영화에서부터 인디영화에 이르기까지 수십 편의 영화제작에 참여한 그녀는 특히
저예산으로 최고의 배경과 공간을 창조해내는 유능한 미술 총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녀의 능력은 2002년 선댄스에 출품됐던 저예산 영화, 베터 럭 투모로우
(Better Luck Tomorrow)의 신인감독이 일약 메이저급 할리우드 감독으로
성장하는데 숨은 공로를 했다.

★ YJ(유정)과 일하는 것은 매우 즐겁다.
그녀는 몇 가지 요소를 끄집어내어 마치 백만 불짜리처럼 공간을
만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 ‘게리파머’(카메라 감독) -

▶ 곧은 길 보다는 굽은 길로 간다.

가족을 떠나온 지 10년. 미국 땅에서 힘들 때 마다 그녀를 붙잡아준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마라, 미래만 생각해라’라고 늘 말씀해 주신 어머니였다.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한국음식과 드라마를 보면서 향수를 달랜다는 한유정씨. 한국의 전통
문양과 한옥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언젠가 할리우드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 것이
꿈이기도 하다. 곧은 길 보다는 일부러 굽은 길을 택해, 장애물을 하나씩 넘으며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아가는 삶이 더 즐겁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 자신이 만들고 싶어 하는 공간에 대한 욕심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용기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한유정씨는 앞으로 5년 안에 할리우드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 TOP 10에 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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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유혹하다
- 바이올리니스트 제니 배


▶ 방송일시 : 2006년 12월 28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이낙선, 작가 : 양희정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인 음악가,
바이올리니스트 제니 배.
루치아노 파바로티, 엘튼 존, U2등 세계적인 거장들과의 협연!
‘독일 월드컵 결승전, 베를린오픈페스티벌의 피날레 장식’!
‘노벨 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오프닝 공연’!!

26살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제니 배가
세계인의 마음을 매혹시킨다.
클래식과 전자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럽 무대를 종횡무진 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 속으로 들어가 본다!


▶ 미모의 바이올리니스트,
                          세계를 유혹하다!

‘바네사 메이’로 대표되던 전자바이올린계에 무서운 신예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유럽을
주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스물여섯의 한국인 제니 배. 그녀는 줄리아드
음대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00년, 한국에서 열린 평화콘서트에서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의 협연을 계기로 세계무대에 얼굴을 알렸다.
그 후, ‘백혈병 환자를 위한 호세 카레라스 갈라 콘서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초청되어
공연을 했다. 뿐만 아니라 ‘2006 노벨평화상 수상자 회의’의 오프닝 무대와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을 축하하는 콘서트 '베를린 오픈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등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굵직한 무대에서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있다.

▶ 새로움을 향한 끝없는 도전,
                             정상을 향해 달리다!!

제니 배는 항상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나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하는 클래식협연뿐만 아니라 주페로, U2, 폴영 등 세계적인 팝아티스트들과의 협연으로 대중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클래식과 전자음악을 하나로 아우르는 연주는 세계무대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런 그녀가 또 한번 새로운
장르로의 도전을 준비 중이다. 바로 한국의 소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
오랜 시간의 외국생활에도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는 제니 배는
국악과 전자바이올린을 접목, 동양의 고전적요소와 서양의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으로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매일같이 연습에 매진하는 그녀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된다!

▶ 평화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노벨평화위원회 홍보대사로 위촉되다!

제니 배는 얼마 전 노벨평화위원회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참석한 노벨수상자연석회의에서 결정된 ‘평화 헌장’을 세계 곳곳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지난 11월 치러진 노벨 수상자 정상회의에서 감동적인 오프닝 무대를
선보인 제니에게 주최 측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인권과 평화가 필요한 사람들을 돕자는 의의를 알리는데 제니의 음악이 큰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평화사절단으로 임명된 그녀는 첫 무대로 노벨평화위원회에서 주최한 자선공연에
올랐다. 자신의 음악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오랜 꿈을 조금씩 실현해 가고 있는 그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꿈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제니 배!
한국인 최초의 그레미어워드의 수상자가 되겠다는 당찬 한국인, 그녀를 만나본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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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공격수
독일 핸드볼 슈퍼스타 윤경신


▶ 방송일시 : 2006년 12월 21일(목)  밤 11시 40분~12시 3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안창헌  작가 : 소현진


독일 핸드볼 슈퍼스타
윤경신 을 아십니까?
2m 3cm의 거구, 시속 120km의 속사포를 쏘아대는 코트의 골리앗
윤경신은 세계 정상의 핸드볼리그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세계적인 왼손잡이 공격수다
1990년 최연소 핸드볼 국가대표, 1995년 세계선수권 대회 득점왕
2002년 8월 세계핸드볼연맹이 선정하는 최우수 선수 선정
2005~2006 분데스리가 시즌 통산 2481점이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의 주인공 윤경신(33)

1996년 비인기종목의 선수라는 설움을 안은 채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는
10년 후, 독일인들이 영웅이라 칭송하는 세계최고의 선수가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다.
 


▶ <차붐>에 이은 <윤붐> 신화의 주역, <분데스리가>의 슈퍼스타 윤경신

독일의 핸드볼은 축구 다음으로 사랑받는 인기스포츠다.
전국적으로 일 년 내내 크고 작은 경기가 펼쳐지며 모든 관중석이 만원을 이룰 정도로
그 열기가 축구를 초월한다. 특히 11월 12월은 최고의 핸드볼 리그 <분데스리가> 와
<독일컵 대회> 그리고 <유럽컵 대회>까지 독일 전체가 연일 핸드볼 열기로 들썩인다.

윤경신은 바로 그 뜨거운 열기에 매료됐고 보장된 미래를 뒤로한 채 과감히 독일행을
선택했다. 그는 독일 핸드볼팀에 진출한 최초의 동양인이었다. 초창기 말조차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설움을 감내하며 코트를 달리고 또 달렸던 윤경신.

세계 최고의 선수를 꿈꾸던 그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해냈다. 지난 10년간 굼머스바흐에 몸담으며 무려 7회나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가 넣은 골의 수는 무려 2481골. 매 경기 7골 이상을 넣어야 달성할 수 있는 대단한 기록이다. 윤경신은 모든 감독들이 표적 1호로 삼는 코트의 제왕이다.

★ 그는 굼머스바흐의 대스타였죠.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도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팬들은 쾰른 아레나에 윤선수의 대형 현수막을 설치할 정도였는데
한마디로 제왕이었어요. 굼머스바흐에 아직 동상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죠 ★  

- 브로슈토크 감독

▶ <Danke YOON-An Nyung Hi 안녕히>
          독일인들에게 영웅이라 불리는 사나이
인구 3만의 작은 도시 <굼머스바흐>. 동양인이라곤 윤경신이 거의 유일하다할 만큼 보수적인 동네에서 <서울>은 아주 친근한 도시다. 바로 윤경신 때문. 그는 이곳에서 '닉(nick)'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닉은 독일어로 ‘고개를 끄덕이다’란 말로 윤경신의 겸손한 성품에서 붙여진 애칭이다.

그가 독일로 날아갔을 당시 <굼머스바흐> 핸드볼 팀은 오랜 전통과 역사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1부 리그에 발을 걸치고 있는 무력한 팀에 불과했다. 그런 굼머스바흐에 활기를 불어 넣은 주인공이 바로 윤경신. 그는 파워풀한 속공과 지능적인 플레이로 굼머스바흐를 단번에 스타팀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활약도 잠시, 재정적 위기로 인해 해체 위기에 놓였던 <굼머스바흐>! 윤경신은 차와 집을 차압당하는 상황에서도 직접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뛰었고 결국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또한 2부 리그로 전락할 뻔했던 굼머스바흐를 분데스리가 3위의 막강팀으로 끌어올렸다. 그 뒤
굼머스바흐 시민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그들은 윤경신이 떠난 지금,
그가 사용했던 선수복과 공을 쾰른 올림픽 박물관에 소장할 정도로 윤경신을 사랑하며 존경한다고 말한다.

★ 우리는 윤경신을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아무래도 ’Seoul'에서 온 사람들은 ‘soul'이 훌륭한 것 같다. ★

    - 굼머스바흐 시민

▶ 핸드볼 종주국 독일에서 이룬 세계 최고 선수의 꿈

33살, 운동선수로서 결코 적지 않은 나이. 그는 제2의 고향 굼머스바흐를 떠나 함부르크 팀으로 둥지를 옮겼다. 팀 내에서 그는 골키퍼를 빼곤 가장 나이 많은 선수지만 기량에 있어서는 여전히 20대 못지않은 파워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감독의 평가다. 감독은 그가 완벽한 선수라고 말한다. 윤경신은 그만의 겸손한 성품과 세계최고의 기량으로 이적 4개월 만에 함부르크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간판플레이어로 등극했다.

그의 주변엔 늘 팬들이 따라다닌다. 윤경신 선수를 모델로 사용한 각종 캐릭터 상품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갈 정도로 스테디셀러가 됐다. 함부르크의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윤경신 선수처럼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핸드볼 선수 윤경신은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Seoul에서 온 세계 최고의 핸드볼 선수다.

▶ 꿈을 향해 쏴라! 33세 백전노장 윤경신,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함부르크는 이제 결성 4년째 접어든 신생팀. 윤경신은 앞으로 2년간 HSV함부르크팀의 등넘버 77번 선수로 코트를 누벼야 한다. 그는 과연 굼머스바흐를 위기에서 구한 것처럼 함부르크를 분데스리가 최고의 팀을 이끌 수 있을 것인가. 핸드볼 시즌에 돌입한 독일
현지의 뜨거운 열기 생중계!!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윤선수의 독일 생활 공개, 그리고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존경까지 독일 속에 한국인의 원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자랑스런 한국인, 윤경신 선수를 만난다.

지난 2006 도하아시안게임, 우리나라 남자 핸드볼팀은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인해
아쉽게도 6연패 금메달 달성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늦었지만 최선을 다해 뛰어준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더불어 세계 속의 한국인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핸드볼을 비롯한 비인기종목
선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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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축구계 신화를 만들다.
- ‘데뽀르띠보 꼬레아노’ 구단주 최병수


▶ 방송일시 : 2006년 12월 14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김상우
▶ 작가 : 김수현

 

남미축구를 대표하는 나라, 아르헨티나!
이곳에 ‘꼬~레아노(대~한민국)’를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축구클럽,
‘데뽀로띠보 꼬레아노(Club Deportivo Coreano)’를
응원하는 소리다.
‘데뽀르띠보 꼬레아노’는 말 그대로 한국인 클럽이라는 뜻이다.
구단주는 한국인, 최병수(42)씨.
그는 해외 프로 축구계 첫 한국인 구단주다.
최병수, 그가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가는 꼬레아노 神話-
그 열광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아르헨티나에 울려 퍼진 함성, ‘꼬~레아노’

2005년 3월 21일 창단한 한국인 클럽 ‘데뽀로띠보 꼬레아노(Club Deportivo Coreano)'는
6부 리그에서 데뷔, 수많은 클럽들과의 경기에서 전승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 5부 리그로 진출, 64개 팀이 참가한 5부 리그에서 우승까지 거머쥐어 당당히
아르헨티나 4부 리그에 진출했다. 창단 1년 반 만에 이뤄낸 눈부신 성과.
이는 백년 전통의 아르헨티나 축구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고지인 로보스 지역언론은 물론, 전국에 연일 대서특필 되며 아르헨티나 축구계 무서운 신예로 떠오른
데뽀르띠보 꼬레아노! 지난 시즌, 경기장 앞은 그들을 취재하러 몰려든 사람들로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에 혜성처럼 등장한 클럽,
데뽀르띠보 꼬레아노- 이 클럽의 중심에는 바로 한국인, 최병수가 있다.

▶ 스프츠 마케팅 전문 변호사 최병수, 축구 구단주 되다!

아르헨티나의 명문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최병수.
그는 현재 15년 경력의 베테랑 변호사다. 최병수 변호사는 현지 법과 제도에 밝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한인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스포츠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하며
여러 축구클럽들의 법률 자문을 맡아왔다. 그런 그가 지난 해 3월, ‘로보스’를 연고로 한
축구클럽을 창단했다. 로보스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 1946년 대통령에 당선 된 후안페론의 고향이기도하다.
로보스에는 큰 축구클럽이 없어 현지의 팬을 확보할 수 있고, 한인들의 상가와 묘지가
인접해있어 연고지로써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최병수 변호사가 ‘데뽀르띠보 꼬레아노’를 창단한 데는 숨겨진 뜻이 있었다.
아르헨티나에 한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지 40여년. 하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한인들은 더불어 사는 사람이 아닌, 일벌레로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최병수 변호사는
‘축구를 통해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 최병수는 아르헨티나 축구계의 유명인사이자 로보스의 자랑이다.

▶ 한국의 매운맛, 꼬레아노를 만들다!

축구클럽을 창단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문제.
최병수 변호사의 뜻을 공감한 한인중소기업체, 두 곳이 최병수의 취지를 이해하고
흔쾌히 동참해 주었다. 또한 현지의 한인들도 데뽀르띠보 꼬레아노의 창단에 팔을
걷어 부쳤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병수 구단주를 비롯한 한인 이사진들은 ‘데뽀르띠보 꼬레아노’에
한국인의 정신을 심었다.
‘한국인의 투지와 열정’, 그것은 오늘의 꼬레아노팀을 있게 했다.

▶ 꿈을 향한 도전, 1부리그를 향하여!

‘데뽀르띠보 꼬레아노’팀의 성장은 아르헨티나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백년 전통의 수많은 현지 클럽들도 하지 못했던 일을 최병수는 해낸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백지상태였던 로보스 지역 사람들은 물론, 한국인을 아르헨티나에 잠시
머물다 떠날 일벌레로 여기던 사람들까지 이제는 함께 ‘꼬~레아노’를 외친다.
그가 그리던 1차 목표는 달성한 셈!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아쉽게도 이번 시즌 전기리그를 4부 리그 하위권으로 마무리 한 데뽀르띠보 꼬레아노.
올해 말 로보스시에 데뽀로띠보 꼬레아노의 전용구장이 완공되면 잠시 주춤했던 연승
행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전용구장은 약 1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어 2부 리그의 허가도 가능한 규모.
이곳에서 최종 목표인 1부 리그 진출을 위한 필살의 노력이 시작될 것이다.
나아가 유소년 축구 프로그램까지 갖춘 세계적인 명문구단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가진 최병수! 클럽 데뽀르띠보 꼬레아노가 만들어가는 神話는 이제 시작이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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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VIP들의 입맛을 사로잡다.
- 두바이 특급호텔 수석주방장 권영민


▶ 방송일시 : 2006년 12월 7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이상운
▶ 작가 : 허수빈

◎ 기획의도

세계적인 관광·비즈니스 도시로 주목받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두바이에 들어선 260여개에 달하는 호텔 가운데 ‘페어몬트 호텔’은
세계 VIP들이 찾는 초특급 호화 호텔로 꼽힌다.
세계 최고의 음식과 서비스를 자랑하는 ‘페어몬트 호텔’ 수석 주방장은,
바로 서른여섯의 한국인 권영민씨.
2003년 미국 조리사 협회가 주관한 “젊은 조리사 TOP10” 선정,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조리차장,
2005년 중국 톈진 쉐라톤 그랜드 호텔 총주방장
등을 거쳐,
8개월 전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 수석 주방장으로 스카웃된
권영민이 이끄는 조리사들은 모두 191명.
세계 각국에서 모인 조리사들을 호령하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쉐프 권영민의 성공기와
그가 쓰는 요리의 천일야화가 펼쳐진다.

▶ 미국 “젊은 조리사 TOP10" 선정

쉐프 ‘에드워드 권’이라 불리는 권영민씨의 고교시설 꿈은 가톨릭 신부였다.
집안의 반대로 신부의 꿈을 접고 조리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바로 재수시절. 국내 대학의
조리학과를 거쳐 특급호텔에 취업했던 그가 서양요리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2000년 봄이었다. 언어장벽과 인종차별, 그리고 국내와는 다른 생소한 식재료와
낯선 주방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길 3년만에 2003년 <미국 조리사 협회>가
주관한 “젊은 조리사 TOP 10”에 선정된 쉐프 권영민. 1년에 6차례, 손님으로
위장한 미식가 평가단이 비밀리에 요리의 맛과 질을 평가,
1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최고의 젊은 요리사 TOP 10에 꼽힌 권영민은 타이거 우즈, 토니 블레어, 샤라포바 등
유명인사들 뿐 아니라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요리에 대한 극찬을 받기도 했다.

▶ 모자를 벗다 - 편안하고, 친숙한 수석 주방장, 권영민

권영민씨는 조리사의 상징이자 높은 직위를 말해주는 ‘하얀 모자‘를 미련 없이
벗었다.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191명의 조리사들에게 언제나
편안하고 친숙하게 다가서기 위해서다. 11개국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조리사들과
매일같이 소통하며 남다른 애정으로 대하는 따뜻한 쉐프 권영민.
그런 그도 단
둘뿐인 한국인 후배 조리사들을 대할 때만큼은 유난히 엄격하다. 한국인이기에 더욱
따갑게 채찍질하지만 뒤에서는 격려를 아끼지 않고 어깨를 두들겨 주는 속 깊은 쉐프가
바로 권영민이다. 동료, 후배 조리사들에게 뿐 아니라 호텔을 찾는 모든 고객에게 높은
모자를 쓴 채 우쭐하기 보다 친숙함을 택한 당당한 그의 요리 철학은 무엇일까.

▶ 왕의 남자, 권영민 - 0.01%의 맛을 잡아라!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의 18개 주방을 오가며
조리사들을 호령하는 쉐프 권영민.
그러나 수석 주방장인 권영민씨가 직접 손을 거둬
붙이고 본격적인 요리를 하는 날은 극히 드물다.
식재료 선택부터 요리 완성까지 그가 나서서 하는 요리는 오직 아랍 에미리트 왕족의
식사 뿐.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방인이기
때문에 따라잡을 수 없는 맛의 차이 0.01%를
따라잡기 위해 직접 두바이 재래시장을 발로
뛰기도 하는 권영민은 결코 자신이 서있는
최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다. 매일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고, 창조하는 데에 게을리 하지 않는 그의 손에서 오늘도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요리가 태어난다.

▶ 한국의 맛을 알려라!

세계 유수의 특급호텔 총주방장을 지낸 그에게도 아직은 남겨진 과제가 있다. 바로
한국의 맛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최근 그는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 ‘델리 샵’
메뉴에 불고기 샌드위치를 선보이며 한국의 맛을 알리기 위한 계획을 차분히
실현하고 있다.
“델리 샵‘에서 판매되는 불고기 샌드위치는 현지에서도 선풍적인 인기!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한국요리 개발에도 소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요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엿보인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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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나른다, 13人의 전사들
-영국 국제 택배사 ACI


▶ 방송일시 : 2006년 11월 30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김정수
▶ 작가 : 양희정

◎ 기획의도

세계 물류시장에서 빠르고 정확한 배송으로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 국제택배회사ACI. 그중에서도 ACI런던 지점은 세계 34개의 지점을 건립하는데 교두보가 되었던 곳으로 세계 물류업계의 빅4라 불리는 DHL, 페덱스, TNT, UPS보다 빠르고 정확한 배송으로 현지 무역업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영국-중국 간 24시간 물류수송을 현실화 시키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승리로 바꿔가고 있는 전사들, 김광근 지점장과 12인의 한국인들을 만나본다!

▶ 승부는, 시간이다!

ACI의 업무는 다른 업체들보다 한 두 시간 빠른 아침 7시에 시작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찾듯 세계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한 발 빨라야 한다는 것이 ACI의 생각이다. 세계 최고의 국제택배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ACI가 내세운 두 번째 전략은 넥스트데이(next day)서비스. 가격경쟁 만으로는 거대 물류수송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판단한 ACI가 내린 결론은 물류수송시간 단축. 빅4라 일컬어지는 대형 업체들조차 영국-중국 간 배송에 3일의 시간이 걸리는데 비해 ACI는 그 시간을 단 하루, 즉 고객이 짐을 보낸 다음날 목적지에 도착하는 넥스트데이서비스로 무려 이틀을 단축시켰다. 중국 광주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 지점을 설립해 핸드캐리로 물건을 옮기는 방법으로 초고속 배송이 가능해 진 것이다.

▶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라!

물건이 도착할 시간을 고객에게 미리 알려주는 ‘전화 알림 서비스’또한 고객중심의
생각에서 비롯된 차별화 된 전략이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막히는 구간은
걸어서라도 반드시 시간 내에 배송한다. 가끔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특별히 물건과
함께 꽃을 배달해 주기도 하고, 급한 상황에 처한 고객을 위해서 주문 받은 물건을
당일에 바로 배송해 주는 세임데이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또한 영국의 기업과 거래계약을 맺은 한국 기업들에게 그동안의 거래를 통해 알게 된
정보와 직접 수집한 여러 자료를 분석한 신용도제공서비스를 실시하며 한국기업의
진출을 돕는다. 이렇게 ACI의 고객편의를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

▶ 김광근 지점장과 12명의 전사들!

ACI를 성공으로 이끈 요인 중에 그들의 끈끈한 동료애도 빼놓을 수 없다.
13명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물론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중창연습을
하기도 하고, 적어도 한달에 두 번은 회식자리를 마련해 바쁜 업무에 치여 서로에게
쌓였던 앙금을 풀어낸다. 또,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직원을 풀타임으로 채용해 근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워크퍼밋 시스템을 적용했다. 워크퍼밋은 정직원으로 근무한 지
5년이 지난 사람에게 영국정부에서 준시민의 자격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 직원들의
근무의욕을 향상시킨 배려이다. 이 모두가 직원의 행복이 곧 고객의 행복이라는
김광근 지점장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ACI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세계 물류수송업계에 뛰어 든 지 불과 7년 만에, 현재 한국의 대기업과 영국 내 동종
업계의 수많은 고객을 확보하게 된 ACI 런던지점!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매일 새로운 기적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13인의 전사들!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그들을 만나본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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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 장으로 뉴욕의 신화가 된 사나이-
사진작가 김아타

 

▶ 방송일시 : 2006년 11월 23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황범하
▶ 작가 : 소현진

 

나는 존재를 탐구해 가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다.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면 그를 만나고

크고 넓은 세계가 있다면 그를 찾아가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다.

직접 가서 손으로 만져보고 혀로는 핥아보고 귀로는 들어보고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한 사람의 여행자이다.

나는 김아타다. - attakim
 


▶기획의도

지난 10월 한국인 사진작가 한명이 아직 촬영하지도 않은 사진 2장을 무려 1억에 팔렸다는 기사가 신문을 장식했다. 그 주인공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사진작가. 김아타(49)다. 2002년 영국사진전문 출판사 <파이돈>이 선정한 세계 100대 사진가, 2006년 뉴욕의 국제사진센터 ICP에서 개인전을 연 최초의 한국인, 2007년 사진계 아카데미상인 <도이체 보르세 포토 그래피>에 노미네이트
된 최초의 동양인!

그의 이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김아타’ 국내에선 이름조차 생소한 그가 어떻게 미국 그것도 세계사진예술의 메카라는 뉴욕에서 최고의 사진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김아타는 지금 <센트럴 파크>재단에 영구 전시 될 180X240 사이즈의 대형 사진작업과  UN 총회장 작업 등으로 매일매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년 중 가장 아름답다는 뉴욕의 가을 그 한 복판에서 세계 속의 한국인
- 김아타를 만나본다.    

 

▶센트럴 파크를 뷰파인더에 담다.  

“철학적 사고가 극히 참신한 작가”이며 ‘지속성과 동시성의 예술’이다.“

피사체를 다루는 아이디어가 탁월하다.‘ - 뉴욕타임즈
 

사진 2장에 12만 달러(약 1억1400만원)!! 믿기지 않는 액수이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김아타씨가 최근 미국 뉴욕 에섹스 하우스와 맺은 금액이다. 에섹스 하우스는 아타가 찍게 될 센트럴파크 사진을 영구 전시할 예정. 이는 지난 6월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에서 가진 개인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센트럴 파크 작업을 통해 아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어느 위대한 화가가 저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겠어. 자연이 위대함은 저런 것 같아. 내 카메라는 24시간 동안 채집을 한 거야. 천천히... 천천히..” 내 작업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시 같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완벽하게 다 가져와야지..

 


▶섬 소년에서 세계최고의 사진작가로, 세계를 감동시킨 ‘아타’의 사진세계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세상을 만나는데 몸과 영혼과 생명을 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 못 간다는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attakim

 

경남 거제에서 섬 소년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처음 사진기를 잡았고, 카메라를 쥐고 바라보는 세상은 어느 곳이든 환상 그 차체였다고 한다. 한 때 사진집을 폐간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최근 뉴욕에 있는 세계적 사진출판사 “아파추어(Aperture)"사에서 1995년부터 2002년 초까지 대표작만 모은 사진 시리즈로 <뮤지엄 프로젝트>를 출간했다.

<뮤지엄 프로젝트> 외에도 작품을 만들 땐 기본 적인 세계관은 동양철학이었고, 그렇게 아타는 작품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걸 말하고 있다.

 

▶뉴욕시리즈.. 아타의 사진 세상 속으로

'ON-AIR 작업에서 UN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상징이고 클라이막스다.

고향과 같은 곳 소호가 새로운 방의 문화를 시작하는 시간

우리는 카메라를 내린다.' - 2006. 11. 6 소호 작업일지 중에

 

뉴욕시리즈를 통해 아타의 사진 무대는 더욱 화려해졌다. 메트로폴리탄, 월스트리트, 브로드웨이, 소호, UN까지.. 동양인인 그에게 뉴욕은 어떻게 자신의 무대가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작품과 사상을 알아준 것이 뉴욕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곳도 뉴욕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작업이라면 어렵지 않게 촬영 허가증을 내준다. 그렇게 다이나믹한 도시 뉴욕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타를 바라본다.  

이 거대한 세트장 뉴욕에서 아타의 카메라가 반짝인다.

 

아타가 찾아가야 할 세계는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많은 세계가 남아있기 때문에 사진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나야 할 세계가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김아타.

앞으로 <뉴욕시리즈>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클라이막스. 마지막 UN총회 작업이 남아있다. 장장 8시간이라는 시간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베를린에서 아타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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