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의 잡 카운슬링(counseling)은 학생 독자의 신청으로 대학내일 편집진의 사연 선정에 따라 직접 대면상담을 통해 상담과 코칭을 진행합니다. 아래 기사는 김OO 학생과 저의 상담 장면을 녹취 후 대학내일의 전아론 기자가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서형준 주)


김OO 학생의 Question

한 학기 앞둔 졸업, 전공에 대한 회의가 들지만 제 적성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광운대 화학과에 재학중인 김OO라고 합니다.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있어요. 학점은 3.89 로 낮지는 않지만, 토익은 670 이 전부입니다. 과의 특성상 공모전이나 모임이 활발한 편이 아닌데다가, 대학원 가려고 준비했던터라 주목할만한 활동없이 마지막 학기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국과수 연구원이 되기를 꿈꾸었지만, 최근들어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연구하는데 중요한 '과학적 호기심'이 제게는 부족한 것 같아요. 이과 전공생인데 수학을 잘 못하고 문과적 성향이 강한 편이거든요. 제가 배운 과학을 가지고 연구직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아요. 이렇게 계속 고민하고 있으려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서형준 코치의 Answer

현재, 미래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도록

OO씨는 지금 '학과'의 틀에 너무 묶여있는 것 같아요. 대학에서의 4년 공부로 평생직업을 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죠.  
본인이 '이과 전공자 치고는 문과적 성향이 강하다'고 걱정하는데, 사실 기존의 잣대로 자신의 성향이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될 것 없습니다. 과거 자신의 모습 속에서 모든 걸 결정하지 마세요. 현재 이후, 그러니까 미래의 자기 자신 속에서 선택을 한다면 앞으로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택한 후에, 부족한 것은 노력을 통해 이뤄내면 되는 겁니다.
화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꼭 이과적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원래 지식의 원료는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고대의 화학자였던 연금술사는 동시에 철학자의 역할까지 함께 했습니다. 요즘 '통섭'이라는 개념이 떠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죠.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생각하기 힘들더라도, 한번쯤은 전공이나 배경, 제약조건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리스트를 작성해 보세요.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써보세요.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여행도 좋고, 자기계발 서적을 읽거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의 강의를 듣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모닝페이지' 쓰기를 추천합니다. 앞으로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써 보세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눈뜨자 마자 씻거나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책상 앞에 앉으세요. 무의식 중에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꺼내놓는 겁니다. 꿈이야기, 어제 있었던 일, 상상했던 것, 어떤 내용이든지 좋아요. 꼭 글을 써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림이나 낙서도 괜찮아요. 다만 중요한 것은 매일, 적은 양이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또 글을 쓰는 행위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들지요. 마음 속에 쌓인 스트레스나 앙금이 배출될 통로가 생기니까요. 일찍 일어나서 뭔가 남들보다 한 가지 더 해놓은 것이 있다는 든든함도 보너스로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천직' 찾아 끝까지 고민하기

OO씨에게 길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 빨리 진로가 결정된 사람은 뭔가 부족한 상태에서 내린 어설픈 결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의 내부나 외부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더 위험한 일이 됩니다. 그러니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직업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생업이 첫 단계, 전문가가 두번 째 단계, 마지막으로 일 자체를 즐기게 되는 천직의 단계가 있죠. 이것은 순차적 단계가 아닙니다. 때문에 마지막 단계를 목표로 진로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죠. 보통 자기계발 서적들을 보면 '집으로 일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는데, 천만에요. 일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집에 가져가서라도 더 하고 싶지 않겠어요? 일이 즐거움이고, 일이 놀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어요.
일정한 고민의 시기를 거친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됩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든, 연구원이 되든, 회사에 취업하든 자기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머릿 속에 갈등이 있어야, 그것이 성장동력이 되는 겁니다. 다만, 그런 갈등 상황을 OO씨가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거죠. ■ (대학내일 522호 2010. 7.12 ~ 7. 18)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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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책장에서 21세기형 성실 꺼내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온달산성의 평강공주)

 

지난 세기 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선 좋은 인재의 요건에 성실성이 꼭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정도의 지식과 외국어 수준, 사규를 잘 지키고 성실하게 일하면 좋은 인재라고 평가받았습니다. 아주 단순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과 시장은 빠른 속도로 많이 변했습니다. 오늘날 국내 선두기업은 물론이고 글로벌 선진기업의 인재상은 전문능력과 변화주도역량, 도덕성과 인간미를 지닌 인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사견이 아니라 실제로 국내외 굴지의 기업들이 표방하고 있는 인재상입니다.

 

20세기의 책장에서 21세기 성실을 뽑아들다

 

21세기 초국적 경쟁환경에서 성실이 인재의 중요한 가치이자 덕목이라고 하면 낡은 교과서 냄새가 물씬 묻어납니다. 중용이나 대학과 같은 동양고전에서 자주 등장하는 덕목이지요. 변화주도역량이 각광받으면서 창의성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대개 우리는 창의성이 성실성을 지양하고 호기심으로 나아갈 때 체득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지난 세기의 성실성이 지나치게 가볍고 손쉽게 이해된 까닭입니다. 또한 창의성을 그 무슨 괴짜들만이 펼칠 수 있는 독특한 장기라고 생각하는 데서 기인합니다. 물론 창의성은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에 바탕을 둔 특성입니다. 그렇지만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한 창의성은 끊임없는 반복과 혁신, 성실한 연습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창의성의 대가들이 지적하는 바입니다. 아인쉬타인은 99번의 성실한 실패를 통해 한 번의 큰 성취를 이룩합니다. 모짜르트는 24개의 미숙한 교향곡을 작곡한 후에야 후세에 길이 남을 25번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었습니다. 탁월한 창조는 중단 없는 성실한 노력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성실한 반복과 연습이 창의성을 낳습니다.

 

모닝페이지라는 말을 들어본 본들이 많을 줄 압니다. 모닝페이지는 원래 90년 전에 미국에서 고안된 글쓰기 훈련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세 장의 종이에 자기 의식의 흐름을 기록하는 방법입니다. 모닝페이지는 그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해 그 유명한 <아티스트웨이>를 통해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쓸 것이 없을지언정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와 자기 자신을 만나게 함으로써 창의성을 꽃피게 하는 연습의 방법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각기 나름의 모닝페이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 모닝페이지는 정말 성실함을 요구합니다. 필자도 몇 달 전부터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습니다만, 어떤 날은 정말 한 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쓸 말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쓰란 말인가? 내가 나 자신에게 꼭 무엇을 써야만 하나? 하루쯤 그냥 넘어가면 안되나? 라고 이런 말들을 쓰다 보면 이내 내면의 두뇌는 운동을 하기 시작해서 상당한 양을 쓰게 됩니다. 모닝페이지는 그야말로 성실한 창의성 연습에 다름 아닙니다. 성실한 반복과 연습 없이 창의성은 없습니다.

 

인간미 넘치는 사람

 

또한, 21세기 인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도덕성과 인간미입니다. 성실과 책임, 헌신은 도덕적인 인간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동안 성실한 사람이 손해 본다., 성실한 사람은 인정받지 못한다.라는 말을 진리라 믿었습니다. 성실한 사람의 최대의 장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성실함입니다. 그 반대는 불성실함입니다. 회사생활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친분관계에서도 불성실함은 관계의 미덕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선 관계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이 조직에게, 조직이 개인에게, 개인간에 믿음직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측가능한 신뢰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만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도움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현대의 탁월한 경영학자들은 이런 특성을 인간미가 넘치는 인재라 합니다. 한마디로 운이 따르고, 사람이 따르는 인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직과 자기 자신에 성실한 사람이 곧 조직과 자기 자신에 헌신하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이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인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갑니다.

 

앞에서 저는 성실과 헌신의 미덕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무한경쟁이 우리 삶의 지배원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오늘 성실하다는 말은 곧 어리석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현명하거나 지혜롭지 못하고 우직한 일꾼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우직한 어리석음이 현명함과 지혜로움과 다른 편에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현명함과 지혜로움의 바탕이자 컨텐츠인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류와 산업 및 기업발전의 역사가 어리석은(=성실한)자들의 우직함으로 인해 조금씩 바뀌어 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눈부시게 푸른 하늘빛 5월에 우리가 성실과 헌신을 생각하는 여유와 지혜입니다. ()
(c)서형준 코치 (현대산업개발 사보 2008년 5월호, 테마커리어칼럼)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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