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이 가고 기축(己丑)년 새해 2009년이 밝았다. 새해의 시작이 따뜻한 봄날이었으면 좋을 텐데 올해의 시작도 여지없이 한겨울 복판에서 시작되었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이 왜 가장 추운 겨울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을까?
언제나 희망으로 시작하는 한 해는 1년 동안 지치고 낡은 해가 된다. 1년의 세월은 우리 사람들에게 많은 에너지와 지혜를 주느라고 지치게 된다. 버리고 가야 할 낡은 것들이 많아진 것이다. 낡은 해의 찌꺼기들이 추운 겨울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에 새해의 시작이 겨울의 한복판에 자리한다고 한다.
새날의 시작도 가장 깊은 한밤중에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는 해를 보내고 새해 첫날을 맞으며 추운 거리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도 한다. 가장 춥고 어두운 때 새해와 첫날이 시작되는 것이다. 낡은 해는 무거우니 겨울을 건너지 못하고 사라진다. 지난해와의 완전한 작별이야말로 새해 새날을 맞는 우리의 각오로 할 만하다.

작심삼일인 까닭

해마다 작심삼일을 한탄하는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와 탄성이 들린다. 작심삼일은 지난해와의 철저한 결별 없이 세워진 마음 때문일 것이다. 바탕이 깨끗하지 않아서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이치와 같다. 깨끗한 마음에 새긴 새로운 각오가 아니어서 흐려지기 쉬운 것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것이 좋다는데 올해는 작심하지 않는 것도 괜찮겠다.
대신 지난 해와의 철저한 결별을 해보면 어떨까.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누구나 아쉬움이 남는다. 고통스러운 기억들과 어려웠던 순간들이 스쳐간다. 하반기에서 세밑으로 올수록 어두운 기억이 지배한다. 새해를 시작하며 고통과 어려움을 잊어버리는 것은 지혜로운 자세이다. 하지만, 고통과 어려움을 잊지 않는 것은 더 큰 용기이다. 한 해를 열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잊고, 무엇을 간직할지 생각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한 시작이다.

 

위기의 경제, 위기의 직장인

 2007년 후반기 미국을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1년 만에 우리나라를 강타했다. 경제주체마다 체감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97년 경제위기 시기에 못지않은 징후들이 보인다. 기업파산, 인원감축, 가계부채 증가, 임금삭감, 실업, 고용 대란 예고는 낯선 소식들이 아니다. 자본주의 최고의 경제학자, 금융공학자들이 막지 못한 것을 우리 각자가 막을 순 없다. 강도예측 불능의 쓰나미급 경제위기가 몰려오고 있다. 이번 위기가 아니어도 우리는 알고 있다. 위기는 언제 어디서부터이건 반드시 온다. 피해보려고 노력하지만 피할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이다.

 

위기경영 시대

위기가 상시화된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열심히 일해온 직장인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 일시적으로 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채택할 전략은 위기를 경영하는 것이다. 회사는 회사대로 위기를 경영한다.
우리 각자가 위기를 경영하는 방법은 먼저 위기상황을 인식하는 것이다. 위기를 증오하지 말고 이해하고 친해지는 것이 좋다. 그 다음 자신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통해 성찰하는 것이다. 새해를 맞는 마음처럼 버릴 것 버리고, 간직할 것을 간직하며 나아간다. 진정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다. 장기적인 목표에 따라 올 한해 성취할 작은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운다. 글로 쓰고, 기한을 정해야 진정한 목표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들을 리스트로 만든다. 리스트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리고 실행한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기는 기회의 성난 모습일지 모른다. 위기의 다른 이름 기회는 준비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경영되어야 한다. 회사도, 개인도, 커리어도, 가정도 그리고 위기도 경영되어야 한다. 위기를 경영하는 CEO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Evil() 뒤집으면 Live(산다)

영어단어에 ()을 뜻하는 evil이란 단어를 뒤집으면 Live가 된다. 위기일수록 산다는 것이 아름답게 돋보이는 것이다. 각자가 뛰어난 인재이고,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휘할 것이다. 동료 간, 부하와 상사 사이에 심장을 오가는 경청과 배려는 각자의 힘을 몇 배로 강화시켜 주는 힘이 된다. 불황타개를 위한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이 제시하는 전략 방향은 간단하다. 불황기는 우리를 차별적으로 인식시킬 기회이다. 불황기일수록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라.고 제시한다. 이것이 위기를 경영하고, 위기를 다루는 장기적인 관점일 것이다.

새해이다. 위기 속에 빛나는, 일하는 사람의 멋진 행진이 한껏 기대되는 한 해이다. (현대산업개발 사보 2009년 1월호에 기고한 글)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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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열흘 전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전화벨에 잠이 깨어 친구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며칠 전에 간암으로 위독하다는 친구 소식을 듣고 중환자실이라 면회도 안된다고 마음 속으로 안타까와 했던 순간이 스쳤습니다.
멍하니 이불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일단 내 생각은 접어둔 채 많은 친구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에 연락을 했습니다.
내가 임종을 지킨 것도 아닌데 나한테 묻는 친구들에게 나는 그냥 그대로 1월 초에 말기 간암 판정을 받았는데 3주만에 운명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연말 동창 모임에서 술도 제법 마시던 친구였습니다. 워낙 모범생 스타일의 친구여서 과음을 하거나 흐트러지는 법이 없는 친구였죠. 술은 그 친구의 간암의 발병 원인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명색이 직업세계의 전문가라고 해서 최근 2년여간 그 친구의 커리어에 관해서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명문대를 나와 몇 년간의 수험생활과 실패, 다시 대기업 입사와 오랜 기간 근무, 퇴사후 다시 수험생활, 다시 다른 대기업에 입사한 지 수개월 되는 터였습니다.
안색이 많이 안좋았는데 어디 아프냐고 하면 그냥 피곤해서 그런다고 하면서 전혀 본인도 병색을 눈치채지 못하였던가 봅니다.
재작년엔 이른 새벽 귀가길에 사고로 운명을 다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40대에 접어들어 가까운 곳에서 운명소식이 들릴 때마다 섬뜩함을 느낍니다. 벌써 그럴 수도 있는 나이인가 하고 말입니다.

사고이든 병이든 한국의 40대는 죽음과 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연일 술로 고객과 상사,동료, 부하직원들과 몸을 지치게 합니다. 쌓이는 스트레스는 피할 길 없어 끊지 못하는 담배는 몸을 병들게 합니다. 지친 몸은 주말마저 가볍게 운동하는 것도 방에 묶어 둡니다. 자상하지 못한 남편, 아빠로 낙인찍히며 가족들에게서도 따뜻하게 대접받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40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닙니다.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40대는 정말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직업세계의 길목에 서 있는 나는 이런 상황을 자주 봅니다.
10여년간 충성을 바친 회사에서도 더이상 고용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전날 과음하면 지각하고도 웃으면서 상사에게 아양을 부리면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부하사원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면서 눈치를 보는 일이 흔치 않다고 합니다. 회사는 노련한 사원을 원치 않나 봅니다. 아까운 인재들을 말입니다.

나는 커리어코칭이나 커리어컨설팅 하게 된느 40대에게 말합니다. 아직도 적어도 30년을 넘게 일해야 하는데 벌써 지치시냐구요. 일한 경력을 잘 정리해서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어떠냐구요. 30년이면 최소한 몇 개 분야에서 전문가로도 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보통 한 분야에서 2천시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 2시간 씩 어림 계산해 보면 3년이면 가능한 시간이지요.

40대는 위기를 기회로 맞이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의지와 열정이 남다르고, 경험이 모자르지 않는 40대여 죽음의 그림자를 거두고 새 삶의 굳센 뿌리를 내려봅시다.
친구 J야, 병마가 너를 데려 갔지만 그곳은 조금 편히 쉴 수는 있겠다. 나중에 내가 아주 많이 일해서 이제 쉴만하다 싶어 그 곳에 가게 되면 다시 만나자.
안녕.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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