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어 사전에서는 "장애"의 유의어로 "쓸모없는"이나 "불구" 를 들고 있지만, 신기원을 이룬 육상선수 에이미 멀린스는 장애의 정의를 다시 쓰고 있다. 정강이뼈 없이 태어난 역경을 딛고, 장애와 관련된 수식어를 극복하고 있는 그녀는 역경이 개개인의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내는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에이미 멀린스 : 역경의 기회

몇 달전 제가 이탈리아판 Wired지를 위해 기사를 쓰면서 한가지 느낀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언제나 무언가 글을 쓸때는 늘 유의어사전을 옆에 두곤 하는데요. 기사 교정을 막 끝내면서 제가 평생 사전에서 "장애"라는 단어의 뜻을 단 한번도 찾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전의 정의를 한번 읽어볼께요. "장애": 형용사- 불구의, 약한, 쓸모없는, 망가진, 막막한, 불구의, 부상을 입은, 짓이겨진, 변변찮은, 훼손된, 쇠퇴한, 낡은, 약화된, 무력한, 힘을 빼앗긴, 마비된, 장애가 있는, 노망한, 노쇠한, 병으로 누운, 녹초가 되어, 몹시 지친, 바닥난, 쇠약한, 소외된; 또는 아픈, 쓸모없는, 약한. 반대말은 건강한, 강한, 유능한. 전 친구에게 이 정의를 읽어주면서 처음에는 너무 황당해서 웃었는데, ‘짓이기다’를 읽는 순간에 목이 메였고, 이런 단어들의 폭력성에서 받은 심리적 충격을 참기 위해서 읽는 것을 멈출 수 밖에 없었어요.

물론, 낡고 오래된 사전이라 '그래. 굉장히 오래전에 나온 사전이라 그런걸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사전은 80년대 초반에 출판된 것이었어요. 그 때는 제가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무렵으로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벗어나 다른 아이들과 제 주위의 사회에 적응하던 시기이지요. 제가 이 사전을 그 때 쓰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에요. 이 사전의 정의대로라면, 이세상에서 저같은 사람은 장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사실 지금의 저는 제 인생을 통해 얻어낸 성공과 모험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2009년 인터넷 버전의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뭔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나 해서요. 수정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안타깝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네요. 반댓말 중에서 마지막 두 단어가 특히 거슬리는데, "온전한" 과 "건강한" 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단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단어들로 불리워질 사람들에 대해서 갖게 되는 선입견과 그 단어에 감추어진 의미와, 왜 그런 의미들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언어는 우리의 사고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스와 로마 등의 고대 사회에서는 저주도 입밖으로 내서 말로할 때 더욱 강력해진다고 믿었는데요. 말로 표현하여 외치면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떤 것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걸까요. 무능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능력이 많은 사람일까요. 무심코 누군가를 '어린아이'라고 단순히 이름 붙이고는 우리는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구속하고 억누르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고 아이들에 좀 더 많은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걸까요?

어릴 적 저에게 그런 기회를 주신 분이 계셨어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듀퐁 연구소의 의사선생님이었는데요. 그분의 이름은 피주틸로 선생님이십니다. 이태리계 미국인이셨는데, 이름이, 보다시피 대부분 미국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렵다보니, P선생님으로 불렀지요. P선생님은 언제나 화려한 나비 넥타이를 메고 다녔고 아이들을 다루는 데에 대단한 소질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지내는 것을 정말 좋아했지만 물리치료 시간 만큼은 무척 싫어했습니다. 재활운동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거든요. 여러가지 색깔의 두꺼운 고무 밴드를 차고 말이죠. 제 다리 근육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전 이 밴드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어요. 싫어서, 욕이 나올 정도였어요. 정말 싫었죠. 겨우 5살이었지만, 재활운동을 빼먹을 방법이 없는지 P선생님과 흥정을 할 정도였어요. 물론 성공적이진 못했지만요.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제 훈련때 오셔서 -- 철저하고 엄격했던 그 훈련에서요 -- 저에게 말씀하시길, "이야, 에이미, 넌 정말 강하고, 힘이 넘치는 소녀로구나, 내 생각엔 너 이 밴드 하나쯤은 끊어뜨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만약에 이걸 끊어뜨리면, 내가 너한테 100달러를 주마."

지금에야, 물론, 이건 P선생님이 제가 하기 싫어하는 훈련을 시키게 하려는 일종의 계략이었지만 2층 병동의 5살짜리 중에 가장 부자가 될 가능성을 뒤로 하고 하지만 그가 저에게 그렇게 함으로써, 매일 반복된 끔찍했던 훈련을 저로 하여금 새롭고 기대되는 경험으로 변화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저를 대하는 그의 시각과 저를 강하고 힘이 넘치는 소녀라고 불렀던 한마디 덕분에 제 자신의 태도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강하고 힘이 넘치고 장래에 어엿한 운동선수가 되리라고 말이죠.

이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나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런 동의어 목록의 사례들로 보면, 우리 언어들은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현실로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사회의 변화를 쫒아가지 못해 왔습니다. 기술발전에서 생기는 수많은 변화들 말이죠. 의학적인 관점에선 제 의족, 라식수술이나 노쇠한 몸을 대체할 티타늄 무릎과 골반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도우며 자연이 만든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소셜네트워킹 플랫폼도 사람들로 하여금 자아를 만들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정의를 내려서 스스로 선택한 집단에서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릴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래서, 아마도 기술이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바로 모든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나타내는 희귀하고 강력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인간의 적응력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자산이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적응력, 그것은 정말 흥미로운 것이지요. 사람들은 역경의 극복을 주제로 저와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여기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표현은 저에겐 전혀 맞지 않고, 그런 질문에 대해 대답하려 할 때마다 늘 불편한 감정이었어요. 그리고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역경을 극복한다는 구절에 숨겨진 의미는 성공이라던가, 행복이라는 개념이 담겨있고 고된 경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상처받을 만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니고 마치 제 인생에서의 성공이 어떤 능력에서 온 것 처럼 여긴다는 것이죠. 의족이나 저의 장애때문에 생길 수 있는 위험들을 회피하거나 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제 변했습니다. 도전을 통해 우리는 달라졌어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혹은 두 경우 모두의 도전을 통해서요. 그리고 전 역경도 꽤 괜찮은 거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역경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닙니다. 역경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저의 그림자인 것 처럼 생각합니다. 어떨땐 잘 보이고, 어떨땐 잘 보이지도 않지만 늘 저를 따라 다닙니다. 그렇다고, 투쟁의 압박감과 부담을 폄하하려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역경이기도 하고, 도전이기도 하고 모든 개개인들마다 상대적인 것이죠. 문제는 역경을 마주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순히 그들을 역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맞이할 수 있게 준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뭔가에 적응할 준비를 하도록 하려면 그 아이들을 모질게 대하곤 하잖아요. 자 여기 중요한 차이점과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다리가 없다는 객관적인 의학 소견과 제가 불구냐 아니냐 하는 사회의 주관적 견해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솔직히, 제가 직면했어야 했던 유일한 장애는 저를 이런 사전적 정의들로 묘사하고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보호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의학적 예후에 관한 냉정하고 믿기 힘든 진실을 알려줄 때나 혹은, 정말로, 의학적 소견에서 예상되는 그들의 삶의 질을 알릴 때 진정으로 불구자로 내몰 수도 있는 벽을 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만 찾으려 하고 그 증상 자체보다 치료방법이나 얼마나 장애요인이 될것인지만 판단하다보면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그들의 잠재력을 묵살하게 되어서 우리는 그들의 선천적인 시련 위에 더한 고통을 안겨 줄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나 점수를 매기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그 병적인 측면보다는 개인 역량의 범위를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건, 결함으로 여겨지는 것들과 우리의 위대한 창조적 능력은 동반자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무언가를 폄하하고 부정하거나 피하고 숨기는데에 공을 들이기 보다 오히려 역경에 감춰진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역경을 극복하려 너무 많이 애쓰지 말고, 우리들 마음의 문을 열어두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메다 꽂기고 하고, 프로레슬링 식 표현을 쓰자면요, 기꺼이 함께 춤추듯 즐기자는 거죠. 그리고, 만약 역경을 자연스럽고, 별 다르지 않고 유익한 것이라고 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때문에 맘고생할 일은 없을 겁니다.

올해가 찰스다윈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죠. 150년전 그는 진화론에 대한 책을 쓰면서 인간의 특징에 대해 서술하기도 했습니다. 다윈에 의하면, "가장 강한 종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며 가장 똑똑한 종이 생존하는 것도 아니고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 것이다." 투쟁은 창조의 모태입니다. 다윈의 연구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것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능력은 변화하고자 애쓰는 인간 정신력의 고군분투로 인해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변화한다는 것, 적응한다는 것은 우리 인류의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시험에 들기전에는 우리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역경이야말로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자아와 능력을 일깨우도록 하고 우리 자신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는 거죠. 우리는 역경을 그저 험난했던 시간 이상의 무엇인가로 새롭게 그려낼 수 있습니다. 변화라는 차원에서 볼 수도 있겠지요. 역경은 그저 우리들이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던 변화에 불과합니다.

제 생각엔 우리들이 만들어왔던 가장 큰 역경은 정상 이라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누가 정상이죠? 정상적인 것은 없어요. 보통이라거나 전형적인 것은 있어도 정상적인 것은 없습니다. 있다한들 이렇게 특색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까요? (웃음) 그럴리가 없죠. 만약 우리가 '정상에 가깝다' 라는 것에 대한 가치관을 가능성과 잠재력 또는 약간은 위험할 수도 있는 어떤 것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욱 더 많은 아이들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고, 그들의 귀중하고 값진 능력들을 사회와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이 말하길, 우리가 사회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단 한가지는 사회에 도움이 되고 공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6만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은 노인들과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들을 떠받들었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그 이유는 아마, 그들이 생존하면서 쌓아온 경험들이 집단에 공헌해온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쇠약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지 않고 귀중하고 값진 존재로 여겼을 것입니다.

몇년 전, 어떤 식료품점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자랐던 펜실베니아주 북동쪽 부근 마을의 가게였는데요. 저는 한 가득 쌓아놓은 토마토 더미 앞에 서있었고요. 한여름이라 반바지를 입고 있었어요. 제 뒤에서,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음, 혹시 에이미 멀린스 맞나요." 전 돌아봤고, 어떤 나이드신 분이 계셨죠. 전 누군지 몰랐어요.

그래서 말하길, "죄송합니다만, 우리 만난적이 있던가요? 제가 만난 기억이 없어서요."

그분 말씀이, " 음, 아마 날 만난걸 기억 못할게야." "그니깐, 우리가 만난건 자네를 어머님 자궁에서 막 꺼내고 있을 때였으니까." (웃음) 아. 그 분이구나. 정말로 불현듯 생각이 났어요.

이분이 킨 선생님이구나. 엄마한테서 말로만 전해들었던 내가 태어난 날의 바로 그 분이었죠. 왜냐면, 보통 그렇듯이, 전 예정일보다 2주나 늦게 태어났는데요. 아무튼, 어머니의 담당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이 휴가를 떠나버리는 바람에 전혀 본 적도 없는 그 분이 저의 분만을 맡으셨던거죠. 그리고, 제가 태어 났을 때 종아리뼈가 없었고, 두 발은 안쪽으로 돌아가 있었고, 이쪽발에 발가락 약간, 저쪽발에도 약간, 이런 상태라 이 낯선 분이 저의 이런 나쁜 상태를 전하는 심부름꾼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가 제게 말하길, "부모님에게 자네의 예후에 대해서 설명했어야 했지. 자네가 절대 걸을 수 없을거고, 다른 아이들만큼 운동능력도 갖지 못할테고, 다른 사람 도움없이 살지 못할 거라고 말이야. 근데 넌 날 완전히 거짓말장이로 만들었어." (웃음) (박수)

정말 놀라운 것은 그 분은 제 유년시절 동안의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해서 보관해 왔다는 겁니다. 철자맞추기 대회에서 2등을 한 거라던가, 걸스카우트들과 행진한거, 할로윈 퍼레이드 같은거요, 대학 장학금 받은거나, 체육대회 수상한 것들,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아서 수련의들이랑, Hahnemann 의대, Hershey 의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써왔던 거죠. 그리고 그는 이 과정의 이름을 '미지의 인자 - 인간 의지의 잠재력'이라고 지었답니다. 그리고 그는 이 과정의 이름을 '미지의 인자 - 인간 의지의 잠재력'이라고 지었답니다. 인간의 의지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고 이것은 의학적인 예후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킨 선생님이 계속 제게 말씀하셨죠. 뭐랬냐면, "내 경험으로 봤을 땐, 자꾸 반복해서 얘기하지 않고, 그리고 거기다 도움도 최소화하고, 자기 의지대로 하게 놔두면, 아이들은 결국 스스로 해내더군."

그래요, 킨 선생님은 생각을 바꾼거였어요. 그는 의학적인 상황들과 그것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거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사고방식이 바꼈습니다. 만약 15살 시절의 저에게 의족을 실제 다리와 바꾸겠냐고 묻는다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을 것입니다. 전 그때 정상인처럼 살기를 간절히 원했거든요. 만약 지금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면, 아닐지도 몰라요. 의족을 하고 경험해 온 것들 덕분에 안 바꾸겠다는 것이지, 그런 경험들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안 바꾼다는 게 아니에요. 아마, 저에게 이런 인식전환이 일어난 까닭은 저를 구속하고 보호하려는 사람들 보다는 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일겁니다.

그래요, 정말 필요한 단 한사람은 여러분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하고 표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들 자신의 능력을 일깨우는 열쇠를 건넬 수 있다면 인간의 영혼은 잘 받아들이게 돼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문을 열 수 있도록 열쇠를 건네는 것이야 말로 그들을 교육시키는 최고의 방법이지요. 스스로 문을 여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에요. 사실, '교육(educate)'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educe"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안에 고여있는 것을 밖으로 뻗어내는 것, 잠재력을 끄집어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잠재력을 끄집어 내길 원하는 걸까요?

여기 한 사례가 있는데요. 1960년대에 영국에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는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영국에선 streaming trial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tracking 이라고 하는 건데요. 학생들을 A부터 D, 이런식으로 나누어 우열반을 정하는 거죠. A등급의 학생은 더 어려운 과목과 최고의 선생님들을 배정받게 됩니다. 이 때, 3개월간의 실험기간 동안 D등급의 학생들에게 A 등급을 부여하고는 너희들은 A등급의 우수한 학생이라고 말해 주었지요. 실제로 3개월 후에는 그들의 성적은 A 등급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 실험의 한편에는 안타까운 면도 있는데요. A등급 학생들에게 D등급의 열등생이라고 속인 겁니다. 바로 3개월 후, 도중에 중퇴한 학생을 제외하고 남아있던 학생들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실험에서 중요한 것은 선생님들도 속였다는 점이에요.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바뀐 것을 전혀 몰랐지요. 누구는 우등생, 누구는 열등생이란 말만 들은 것이에요. 선생님들은 들은대로 학생들을 대하고 가르쳤던 거죠.

그래서, 제 생각에 진정한 장애는 억눌린 마음입니다. 억눌려서 아무 희망도 없는 마음이죠. 장점을 보지 못하고 우리의 자연스러운, 아이들같은 호기심이나 천부적인 상상력도 없는 상태 말입니다. 만약 대신에, 마음속에 희망을 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내면의 장점을 볼 수 있고 호기심과 상상력이 가득하도록 힘을 북돋아 준다면 진정으로 우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가치관을 마음에 품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현실과 새로운 존재의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시 한편 남겨드리고 저는 가보겠습니다.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Hafiz의 시인데요 제 친구, Jacques Dembois가 알려준 것입니다. 시의 제목은 "네 개의 단어만 아는 신" 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신을 알고 있다네, 혼 내지도 않고 하지 말란 얘기도 없고 오로지 네 개의 단어만 알고 계속해서 반복하네. Come dance with me - 이리 와서 나랑 춤추자" 이리 와서 나랑 춤주자.

감사합니다. (박수)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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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무어는 자신이 살아 온 동안 신발끈을 잘못 묶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TED의 의미를 살려, 그는 무대에서 신발끈을제대로 묶는 법을 공유합니다. (역사적 참고: 이 강연은 2005년에 TED에서 개최한 최초의 3분 강연입니다.^^)





 
 ▲ 원본 시청 : TED2005, Posted 2011. 5
 
▲ 한국어 번역 : Bianca Lee, 검토(Review) : Simon Park
▲ 한글 자막 (전문)
저는 TED 관객분들을 가장 영향력있고, 총명하고, 지적이고, 상식적이고, 세상 경험이 많고 혁신적인 분들의 훌륭한 모임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마 맞을겁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아마도 대다수가, 신발끈을 제대로 묶지 않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테리 무어: 신발끈을 제대로 묶는 법

저는 TED 관객분들을 가장 영향력있고, 총명하고, 지적이고, 상식적이고, 세상 경험이 많고 혁신적인 분들의 훌륭한 모임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마 맞을겁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아마도 대다수가, 신발끈을 제대로 묶지 않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하하)

물론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실겁니다. 터무니없겠지요. 사실 저도 3년전까진 그런 안타까운 삶을 살았지요. 그 때 저는, 저에게는, 무척 값비싼 신발 한 켤레를 구입했습니다. 그 신발은 동그란 나일론 끈이 있었고, 그 끈은 계속 플어 졌습니다. 그래서 상점으로 다시 가 주인에게 말했죠. “신발은 맘에 들지만, 끈은 별로군요.” 그가 보고 이렇게 말했죠. “오, 끈을 잘못 매셨어요.”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50살이나 됬으니, 신발끈 제대로 매는것은 통달 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하지만 아니었죠. 지금 보여드리죠.

이것이 대부분의 분들이 신발끈을 묶도록 배운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 감사합니다. 잠깐만요, 더 있습니다. 신발끈을 묶을 때, 매듭엔 단단한 형태와 약한 형태가 있지만, 우리는 약한 형태로 묶는 법을 배웠던 겁니다. 검토 방법을 보여드리죠. 매듭의 기본이 되는 끈을 당기면, 리본이 신발 중심축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약한 형태의 매듭입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다시 시작해 간단히 리본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이런 모양이 되어, 단단한 형태의 매듭이 만들어집니다. 만약 매듭 밑에 끈을 당기면,보시다시피 이번에는 리본이 신발의 반대 방향으로 만들어졌지요. 이것이 단단한 형태입니다. 끈이 덜 풀리게 되지요. 우리를 덜 실망시키고,.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더 나아 보이지요.

이것을 한번만 더 해보겠습니다. (짝짝짝) 평소처럼 시작하지만, 고리의 다른 쪽으로 묶는겁니다. 아이들에겐 좀 어렵겠지만, 여러분은 하실 수 있을겁니다.매듭을 이제 당깁니다. 완성입니다. 단단한 매듭 형태입니다.

이제, 오늘의 주제와 함께, 제가 말하고픈 것은, 모두 이미 아시겠지만, 때때로 삶의 어느 한면의 작은 장점이 다른 면에 막대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수하시고 번창하시길!

(짝짝짝)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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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그리고 우리가 결정하는 걸 돕기 위해 종종 전문가에게 의존합니다. 하지만, 경제학자인 노린 헐쯔가 말하기를, 전문가에게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제한적이고 심지어는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전문화할 것을 --의사와 최고경영 책임자들의 말 뿐만이 아니라 직원들의 제안도 들어--민주주의화 할것을 요구합니다.




▲ 원본 시청 : (TEDSalon London 2010, 2011. 2 ) Noreena Hertz: How to use experts - and 
when not to
▲ 한국어 번역 : Jeong-Lan Kinser, 검토(Review) : Sophia Yu 
▲ 한글 자막 (전문)

노린 헐쯔: 전문가를 이용하는 방법과 이용하지 않아야 하는 시기

월요일 아침 워싱턴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서 예멘에 있는 알카이다를 공습해야 할지 그 여부를 검토중입니다. 다우닝가 10번지에서는 데이빗 카메론이 경제 이중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삭감해야 하는지를 고심중입니다. 마드리드에서는 마리아 곤잘레즈가 문앞에 서서 그녀의 아이가 계속 우는 것을 보면서 울다 잠이 들도록 그냥 놔둬야 할지 안아줘야할 지 고민중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의 병원 침대 옆에서 1.5리터병에 든 물을 보면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과연 아버지께 이 물을 드시게 해야할까요? 아버지가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못 드셨고 오늘은 뭐라도 꼭 마시게 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지만 이 물을 마시게 하면 아버지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진 않을까요?

우리는 살면서 중요한 결과가 뒤따르는 중대한 결정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결정들을 내리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결정의 순간 우리는 친구들과 상의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뒤져보기도 합니다. "구글"과 "트립어드바이저"(여행 전문 웹사이트), "아마존 추천"이 대중화된 오늘날에도 위험도가 높고 중요한 결정일수록 우리는 여전히 전문가를 찾습니다. 온갖 정보가 범람하고 극도로 복잡한 오늘날, 전문가들이 우리보다 정보를 더 잘 분석할 수 있고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때론 끔찍하고, 때론 혼란스런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전문가들이 있어야만 마음을 놓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문가들은 마치 부모님들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확실히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점이 바로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이것은 앞으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전문가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의 공헌은 큽니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전문가들에게 중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문가들의 분명하고도 확신에 찬 모습, 명확한 일처리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지성과 분별력 대신 전문가들이 하는 소위 "타당성 있는 말"로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감을 회피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불편함과 불확실성을 그들이 제공하는 확실성의 환상과 바꾸어 버린 것이죠.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최근 한 성인 집단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습니다.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고 그동안 MRI로 뇌의 활동을 관찰했습니다. 상당히 믿기 힘든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전문가의 음성을 듣고 있는 동안 그들 뇌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부분이 전혀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뇌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문가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맞든지 틀리든지요.

하지만 전문가들도 실수를 범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의사들이 열번 중 네 번 정도 오진한다는 걸 아시나요? 만일 여러분이 세금정산을 스스로 처리한다면 세금담당자가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다음 예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재정 전문가들이 엄청난 실수를 해서 우리는 1930년 이래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건강과 부유함 그리고 집단적인 안전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 두뇌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형성하는 부분의 스위치를 계속 켜두어야 합니다. 더는 지난 몇 년동안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람들은 누구를 신뢰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경제학자로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아이러니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저 자신 역시 전문가의 한 사람이고 교수이고, 또한 각 나라의 수상들이나 대기업 사장들과 국제 조직에 조언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전문가의 역할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인거죠. 하지만 저는 우리가 더욱 마음을 열고 우리의 의견들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민주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 제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분을 저의 세계, 전문가의 세계로 모시기로 하죠.

물론 거기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훌륭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예외가 있지요. 하지만 제 연구가 보여준 것은 전문가는 대부분 아주 엄격한 집단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고 이 집단내에서 지배적인 견해가 생겨나고 종종 반대의견을 침묵하게 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 지배적인 견해를 따라 움직이고, 때로는 그들의 집단의 스승들을 숭배하기도 합니다.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앨런 그린스팬의 주장은 경제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그의 동료들에 의해 반박이 되었습니다. 보세요, 우리도 알다시피 전문가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의 규범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규범에 의해 지배당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의사들은 성적 욕구를 표현한 여자들을 수용소에 보내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1973년까지 정신과 의사들이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시사하는 것은 패러다임이 변하는 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복잡성이나 미묘한 차이 같은 것들은 무시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자본의 영향력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제약회사들이 약품 효능검사연구에 자금을 제공하고 그 연구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약품의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례들의 증거가 있습니다. 또한 식품회사들도 자신들이 새로 시장에 내놓을 제품에 대해 그 건강효능을 과장되게 광고할 수 있도록 연구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식품회사가 개입된 식품 효능연구는 독립연구보다 일곱배나 더 과장을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문가들도 역시 실수를 한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매일 매일 실수를 합니다. 부주의에서 기인된 실수들이죠. 최근 수술 기록에 대한 분석에 의하면 외과의사들이 건강한 난소를 제거하거나 수술해야할 반대편 뇌를 수술하고 치료해야할 반대쪽 손, 팔꿈치, 눈, 발 등을 치료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실수는 생각의 오류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방사선전문의들이 종종 잘못된 생각으로 실수를 하는데, CT스캔을 볼 때 - 검사를 의뢰한 의사가 한 말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다고 의심을 하고 검사를 의뢰하면 방사선전문의는 의사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방사선전문의가 어떤 환자가 폐렴을 가졌다고 의심하고 그 환자의 스캔을 보게 될 경우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스캔도중 폐렴의 증거를 발견하면 방사선전문의는 거기서 스캔을 멈춥니다. 3인치 아래 족에 있는 폐 종양을 놓치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전문가들의 세계를 통찰해  보았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과 공유한 사실들이 통찰에서 끝나지 않고 그 사실들로 인해 여러분들이 왜 우리가 전문가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멈추어야 하는지 왜 우리가 반항해야 하는지, 또 왜 우리가 우리의 독립적 의사결정 스위치를 켜놔야 하는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시간관계상 세가지 전략에만 집중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지금까지 나눈 전문가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을 취하거나 또 배제해야 합니다. 걱정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말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 모든 분야에 박사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전문가들의 짜증스런 얼굴에도 계속해서 우리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들어,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우리가 실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 주기를 바랍니다. 제가 전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의사가 제게 "헐쯔 여사, 이상고열을 인지하세요"라고 하더군요. 알아듣기 쉽게 "고열 조심하세요."라고 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전문가를 취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보는 그래프의 이면과 복잡한 식과 예측, 예언 등을 캐내서 무슨 말인지 알아내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할지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 말입니다. "이것을 입증하는 전제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요? 당신의 조사는 어디에 중점을 두었습니까? 그리고 어떤 사실들이 배제되었습니까?"

최근 알려지기를, 대부분의 약품들이 시장에 나오기 전에 이미 임상실험을 거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우선 수컷 동물들에게 실험을 하고 그 다음에는 남성들에게 실험을 합니다. 어찌된건지 그들은 세계의 절반 인구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성들이 운나쁘게 당하게 되는거죠. 왜냐하면 이 약품의 대다수는 남성들에게 효과가 있는 만큼 여성들에게도 효과가 있지 않거나 그 약품들이 너무나 효과가 있어서 여성들이 복용하기에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역자가 된다는 것은 전문가의 추측들과 그들의 방법들에도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제가 "반대권 행사"라고 이름붙인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고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내고 신화를 파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전문가의 아이디어들이 싸움에 져서 내몰려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그 안에서 새롭고, 다문화적인 생각과 대립적이고 이단적인 견해 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토론으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러한 과정이 아이디어의 창조 뿐만아니라 아이디어의 파괴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지고 대립되는 의견들과 이단적인 생각들로 우리 자신들을 둘러싸야만 그런 과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우리가 더욱 현명해질 수 있다는 것을 연구결과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대권을 장려하는 것은 반항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믿고 있거나 또는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의견과 조언으로 우리 자신을 둘러싸려고 하는 우리의 바로 그 본능들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활발하게 반대권을 행사할 필요에 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구글의 최고경영 책임자인 에릭 슈미트는 이 철학의 실질적인 실행가입니다. 회의할 때, 그는 사람들을 주시하다가 팔짱을 끼고, 약간 어정쩡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바로 그 사람들을 토론으로 끌어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사실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반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불일치와 부조화 그리고 다름의 가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출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정의해봐야 합니다. 통념적으로는 전문가라고 하면 고학력에 화려한 직책, 학위증을 갖고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상위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상상해 보세요. 만일 우리가 이 전문가라는 개념에 있어서 엘리트 핵심집단으로 보는 관점을 버리고 대신에 민주적인 개념으로 전문가를 포괄적으로 생각한다면 전문가는 단지 외과의사나 최고경영간부 뿐만아니라 가게의 여자 점원도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스트바이라는 전자제품 전문 판매회사는, 모든 고용인들에게 내기를 걸게 합니다. 실질적으로 판매 예상수치를 맡고 있는 부서뿐만아니라 청소부, 판매 보조원, 자원부서 직원들까지 모두 내기를 걸게 합니다. 어떤 상품들이 크리스마스 전에 잘 팔릴지 안 팔릴지, 소비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회사에서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할지를 말입니다. 또한 어떤 프로젝트가 제 때 시작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고 회사내의 전문성을 수용함으로써 베스트바이라는 중국에 개점 예정이었던 아주 큰 규모의 거대한 매장이 제 시간에 개점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해낼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 중국에 오픈할 매장을 예정대로 제 때에 오픈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내기를 걸어보라고 했는데 재정부서의 한 그룹이 그들의 칩을 전부다 매장이 열리지 않는 쪽에 걸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예측 전문가들이나 중국의 현지에 있는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던 기술적인 문제를 그 회사내의 어떤 전문가도 알지 못하고 있었을 때, 그들은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밤 제가 말씀드린 전략들을 정리하자면 반대의견을 받아들이자는 것과 전문가들을 어떻게 이용해야할지, 전문성을 민주화하자는 것입니다. 반항적인 전략들은 우리로 하여금 혼돈스럽고 복잡하고 어려운 이 시대의 도전들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뇌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형성하는 부분을 계속 켜놓고 있다면, 만일 우리가 전문가들에게 도전한다면, 만일 우리가 의심쩍어 한다면, 만일 우리가 권위를 양도한다면, 만일 우리가 반항적이라면, 그리고 만일 우리가 불확실성과 의심, 미묘한 차이 등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리고 전문가들이 불확실성과 의심, 미묘한 차이 등을 사용하여 그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21세기의 도전에 대해 잘 대항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자,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은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은 두 눈을 크게 뜨고 - 세계에 직면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래요. 전문가를 이용하는 것은 우리가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제 스스로 직업을 완전히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한계점과 우리 자신의 한계점을 인지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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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스 로드리게스와 아이차 엘-와피는 가늠할 수 없는 상실감에서 강한 우정을 이루어냈습니다. 로드리게스의 아들은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에서 사망했습니다. 엘-와피의 아들인 자카리아스 무싸위는 그 테러에 가담하여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평화를 찾는 희망을 품고, 이 두 어머니들은 서로 이해와 존중을 하게 되었습니다.




▲ 원본 시청 : (TEDWomen, 2011. 5 ) 9/11 healing: The mothers who found forgiveness, friendship
▲ 한국어 번역 : Poram Lee, 검토(Review) : Jeongyob Park
▲ 한글 자막 (전문)

9/11 치유: 용서와 우정을 찾은 어머니들

필리스 로드리게스 : 저희는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다고 여기는 저희의 우정 때문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우정이 이제 저희에게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저는 제 아들이 세계무역센터에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지만, 36시간 후에야 제 아들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는 그것이 정치적인 사건임을 알았습니다. 조국이 제 아들과 제 남편 올랜도, 저와 우리 가족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려할지 두려웠습니다. 그 사건을 겪었을 때, 말 그대로 우리의 삶에 정말 끔찍한 충격이었음에도 우리는 복수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자카리아스 무싸위가 테러에 대한 공모의 6가지 죄목으로 기소를 당하고, 유죄가 평결될 경우, 미국 정부가 사형을 요구했을 때도 제 남편과 저는 공개적으로 그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 상황을 거치며 인권단체들을 통하여 우리는 몇몇 다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기소당했을 때 왔던 아이차를 대중매체에서 봤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용감한 여성인가. 언젠가 내가 좀 더 강인해지면, 그녀를 만나고 싶다." 저는 여전히 깊은 슬픔 가운데 있었고, 제가 강인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그녀를 찾거나 서로를 찾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제 아들이 희생자라는 것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제게 동정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녀의 아들이 기소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그런 동정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저와 동일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2002년 11월에 만났습니다. 이제 아이차가 여러분께 그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통역) 아이차 엘-와피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자카리아스 무싸위의 어머니입니다. 저는 인권단체에 희생자들의 부모님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를 다섯 가족들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필리스를 만났고 그녀를 봤습니다. 그녀는 그 모임의 유일한 어머니였습니다. 다른 이들은 피해자들의 형제, 자매들이었죠. 저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녀는 저와 같은 어머니였습니다. 저는 어머니로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는 14살에 결혼을 했고, 15살에 아이를 잃고, 16살에 둘째 아이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 자카리아스의 이야기는 정말 감당하기 힘듭니다. 저는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제 아들이 생매장을 당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필리스가 아들 때문에 정말 슬퍼한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아들의 생사도, 고문당하고 있는지의 여부도 모릅니다. 저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제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제가 겪는 고통이 다른 여성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말입니다. 모든 여성과, 생명을 잉태하는 모든 어머니들은 사랑을 돌려주고,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여성들에게 달렸습니다.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이고,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뭔가를 함께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여성에 반(反)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여성과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폭력과 테러리즘을 비난합니다. 저는 어린 무슬림 소녀들에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학교에 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지에 반하는 조혼(早婚)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어린 소녀들이 저와 같이 결혼을 하고 고통을 겪는 것을 피하도록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 앞에 나선 이유입니다.

필리스 로드리게스 : 다른 가족들과 가장 처음으로 만났던 날로부터 저는 아이차에게 아주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때가 2002년 11월이었기 때문에 그 모임은 아주 조용히 진행되었습니다. 가실 그 당시에는 저희 가족 모임 구성원들은 미국내에서의 배타적 애국주의가 두려웠습니다. 우리는 모두 긴장했습니다. "왜 그녀가 우리를 만나기 원할까요?" 그리고나서 그녀도 긴장했죠. "왜 우리가 그녀를 만나기 원했을까요?" 우리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통성명이나 다른 것을 알기도 전에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이런 화해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도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둘러 앉았습니다. 아이차가 시작했을 때,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에 얼마나 유감스러운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고 느끼고 있습니다. 범죄가 있다면 공정하게 재판받고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섰습니다. 그것은 서먹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고, 인간으로서 모두 연결되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3시간이 지나 그 오후가 끝날 무렵, 우리가 정말 오랜동안 알아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그녀로부터 배운 것은 이런 현재의 상황하에서 그 당시 어땠는지 그녀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뿐만아니라 그녀의 삶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있어떤 여성상이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저와는 완전히 다르면서,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온 이를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우 소중하고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그것이 상대방을 두려워 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걸음 내딪은 뒤에 깨달았습니다. "이봐요.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네요. 제가 모르거나 저와는 아주 다른 또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자, 아이차. 마지막으로 몇 마디만 해줄 수 있어요? 우리 시간이 다 되어가서요.

(웃음)

(통역) 아이차 : 저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알려고 노력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려분은 관대해야 하고, 마음이 관대해야 합니다. 정신이 관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관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폭력에 대항해 싸워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평화와 상호존중 안에서 함께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박수)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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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태어나 아랍 나라들에서 30년이상 영어를 가르쳐왔던 패트리샤 라이언(Patricia Ryan) 이 두바이에서 열린 TEDx에서(TEDxDubai)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이 영어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다른 언어를 통한 위대한 아이디어의 확산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예를들어, 아인슈타인이 토플을 통과해야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2주일마다 한 개의 언어가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정작 영어 장벽 때문에 아이디어를 세상에 펼치지 못하는 것을 날카롭고 열정적으로 지적한 패트리샤 라이언의 강연 영상을 봅니다. 단 10분간의 짧은 강연이 영어에 목을 맨 나머지 우리 자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마저 맘껏 펼치지 못하는 상황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한 번 이상 시청을 권합니다.(서형준 주)




▲ 원본 시청 : (TEDxDubai, 2011. 3) Patricia Ryan: Don't insist on English!

▲ 한국어 번역 :  Poram Lee, 검토(Review) : JY Kang
▲ 한글 자막 (전문)

영어만 고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여러분은 네가 길을 잃은 것 같으시겠지요. 그리고 곧 누군가가 무대 위로 올라와 친절히 절 다시 제자리로 안내할 거라 생각하실 겁니다. (박수) 두바이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머님, 여기 휴가 오신 건가요?" (웃음) "아이들을 방문하러 오셨나요?" "얼마나 계실 건가요?"

사실, 아직까지는 좀 더 머물 생각입니다. 전 약 30년간 걸프만 쪽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박수) 그 시간 동안 전 많은 변화들을 보았지요. 자, 저 통계는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화면 : 세계 총 언어 = 6,000. 90년 후 = 600] 전 오늘 여러분께 언어의 소멸과 영어의 세계화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아부다비에서 성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제 친구 얘기부터 해볼까요. 어느 좋은 날, 그녀는 정원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갔답니다. 자연에 관한 어휘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반대로 그녀가 지역 식물에 관한 여러 아랍어 단어들을 배우고 말았지요. 그 뿐만 아니라, 식물들의 이용 방법도 배웠어요. 그러니까 의약품으로서의 효능, 화장품 대용, 요리 방법, 약초로 활용하는 방법같은 것들이요. 어떻게 그 학생들이 이 모든 지식을 갖고 있었을까요? 물론, 그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심지어 자신의 증조부모로부터 배운 겁니다. 세대 간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굳이 여러분께 말씀드릴 필요 없겠지요.

하지만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언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례없는 속도로 말입니다. 14일마다 하나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오늘 날 영어는 명실공히 세계 공용어입니다. 여기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음, 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겪은 많은 변화를 보아왔다는 건 분명합니다. 처음 걸프만 지역에 왔을 때, 제가 도착한 쿠웨이트는 여전히 체류기피 지역이었습니다. 사실 그리 오래 전이 아니지요. 이 사진은 좀 오래된 사진이네요. 그럼에도 저와 약 25명의 다른 교사들이 영국문화원에 채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쿠웨이트 주립학교에서 가르친 최초의 비이슬람교도들이었습니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불려갔었죠. 쿠웨이트 정부는 교육을 통해 국가를 현대화하고 국민들의 능력도 키우길 원했거든요. 그리고 물론, 영국이 얻은 혜택은 그 매력적인 석유자원이었죠.

좋아요. 바로 이것이 제가 본 그 대단한 변화입니다. 영어를 가르친다는 상호이익이 되는 작은 활동을 시작으로 해서 거대한 다국적 교역사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더 이상 영어는 단순히 교과 과정에 있는 외국어 중 하나가 아닙니다. 이제 어디상은 모태인 영국이라는 지역에 국한된 언어도 아닙니다. 이제는 지구상 모든 영어권 국가들의 우세한 언어가 되어버렸습니다. 딱히 안 될 이유가 있나요? 결국 최고의 교육은, 최근 세계적 대학 순위에도 나타나듯이, 영국과 미국의 대학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자연스레 영어 교육을 받길 원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면 어떠한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과연 학생들 단지 언어적 능력만 보고 거부하는 것이 옳은가요? 어떤 천재 컴퓨터 과학자가 있다고 치죠. 그렇다면 그에게 변호사와 같은 언어능력이 필요할까요? 글쎄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영어 교사들은 늘 그들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멈춰세우고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죠. 그들은 더이상 자신들의 꿈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영어가 될 때까지는요. 자, 이번엔 좀 다르게 설명해보죠. 암 치료제를 개발한 한 네덜란드인이 자국어 하나만 할 수 있다면, 그의 영국 대학으로의 진학을 막아야 할까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어 교사들은(외부인을 막는) 문지기이고, 여러분은 영어 실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야 하는 겁니다. 문제는 사회의 좁은 특정 부분에 너무 많은 힘을 [화면: "chick(양계)포인트", 원래 "check point(검문소)" 여야 함. 번역주] 쏟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장벽이 너무나 보편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연구보고서들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잖아" 그렇죠. 책도 영어로 되어 있고 학술지도 다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충족예언인 거죠.(자기충족예언 :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심리) 영어가 필요조건이 되도록 강화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돌고 돌아 계속되는 거죠. 제가 여러분께 묻죠. "번역은 또 어떤가요? 이슬람 황금시대를 돌이켜보면 그 때는 많은 번역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페르시아어로 아랍어로 번역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유럽의 게르만어와 로망스어로 번역되었죠. 그리하여 유럽 중세 암흑시대에 빛이 밝혀진 겁니다. 자, 제 말을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저는 수 많은 영어 교사들이나 영어 교육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에요. 세계 공용어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어느 때보다 더욱 우리는 세계 공용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 그것을 장벽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여러분은 진정 단 600개의 언어만을 원하십니까? 그 중에서 영어나 중국어만 주요 언어가 되기를 바라세요? 우리는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합니다. 한도를 정할 필요가 있나요? 이 시스템은 영어로 된 지식만을 지성으로 한정 짓습니다. 상당히 독단적인 거죠.

(박수 + 휘파람)

그리고 전 여러분께 현대 지식인들의 디딤돌이 되어준 위인들에게는 영어가 필요 없었고, 영어 시험을 통과할 필요가 없었음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일례로, 아인쉬타인도 학교에서 보충수업이 필요한 아이로 취급받았습니다. 실제로 그가 난독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행스러운 건 그는 영어 시험을 통과할 필요가 없었다는 겁니다. 1964년까지는 아직 미국의 영어 시험인 토플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금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너무나 많고 많은 영어 시험들이 있죠. 수천 수백만의 학생들이 매년 이 시험들을 치릅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화면: IELTS 150달러+, 토플 150달러, 토익 170달러 : 번역주) '응시료가 저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은데요.' 하지만 수많은 가난한 이들에겐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시험입니다.

우린 즉각적으로 그들을 거부하는 거지요. (박수)

이는 제가 최근에 본 기사 제목을 떠올리게 합니다. "교육: 그 대분수령"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사람들이 왜 영어에 집착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사라들은 자녀에게 인생 최고의 기회를 주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구의 교육이 필요하죠. 왜냐하면, 최고의 직장은 당연히 서구의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대로 이건 돌고 도는 일이니까요.

자 그럼, 여러분께 어느 두 과학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두 영국인 과학자가 있었는데요. 그들은 유전자와 관련하여 동물의 앞다리(forelimb)와 뒷다리(hindlimb)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어요. 어느 독일 과학자가 나타나기 전 까지는요. 그는 영국 과학자들이 앞다리와 뒷다리를 칭할 때 다른 단어를 쓴다는 것을 알아차렸죠. 하지만 유전학은 그 둘을 구분하지 않았고, 독일어 또한 그 구분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빙고! 문제가 해결되었죠.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할 수 없는 경우, 진전이 없이 막혀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언어로는 그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언어간의 협력을 통해서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이룰 수 있습니다.

제 딸은 쿠웨이트에서 영국으로 왔습니다. 그녀는 과학과 수학을 아랍어로 공부했죠. 아랍 중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녀는 영국의 중학교에서는 그 과목을 영어로 변역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목에 관해서는 학급에서 최고였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죠. 어떤 학생들이 외국에서 왔을 때, 우리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알고 있는 것이지요. 한 언어가 사라지면 그 언어와 함께 무엇을 더 잃게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 여러분이 최근 CNN에서 이걸 보았는지 모르겠네요 - CNN은 케냐의 어린 양치기 소년에게 올해의 영웅상을 수여했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에서는 밤에는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을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등유 등불의 연기에 그의 눈이 손상됐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차피 충분한 등유조차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1달러 정도로 무엇을 살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는 돈이 들지 않는 태양등을 발명했습니다. 이제 그의 마을 아이들은 전기시설이 잘 된 집에 사는 아아들과 똑같은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박수) 그 상을 받을 때 그 소년은 이런 멋진 소감을 밝혔습니다. "아이들은 오늘날 어두운 대륙인 아프리카를 밝은 대륙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에반스 와동고"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가 이러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빛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물리적이든 은유적이든 우리의 시험에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절대 알지 못할 겁니다. 우리 자신을, 그리고 그들을 어둠에 가두지 맙시다. 우리, 다양성을 널리 알려봅시다. 여러분의 모국어를 소중히 여기세요. 멋진 아이디어를 확산하는데 그것을 사용하세요.

(박수) [화면: 수많은 꽃이 보는이 없이 혼자 피어 얼굴 붉히고 그 달콤한 향을 사막 허공에 헛되이 뿌리나니 - 토마스 그레이. 시골 묘지 비문에서: 번역주]

정말 감사합니다.

(박수)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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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행복과 긍정적 사고가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한편, 긍정적 사고의 위험성을 파헤친 날카로운 책도 눈여겨볼만하다. 이런 두 가지의 경향은 모두 물질만능주의의 페단을 있는 그대로 보느냐 마음상태로부터 시작하느냐의 문제이다.

히말라야의 인구 70만의 작은 나라 부탄은 이런 문제를 실천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1972년에 즉위한 17세의 어린 국왕이 경제성장과 행복이라는 문제를 고민한 끝에 모든 정책을 '부탄 국민의 행복'을 기준으로 펴나간다. 국민총생산(GNP), 국내총생산(GDP)가 아니라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개념을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
유투브에 올려진 3분 29초 짜리 짧은 동영상이 의미있는 시사를 던져준다.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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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언론의 뉴스가 대부분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뉴스가 지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으로 사고하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나쁜 뉴스, 부정적 소식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록 작은 뉴스일지라도 <좋은 뉴스>를 올린다. <편집자: 서형준 주> 

1. 가수 인순이 장애우를 위한 자선 공연

평소에도 나눔 천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잘 돕는 가수 인순이가 이번에 또 좋은 공연을 했다. 한 장애우 시설 확장을 위해 자선공연을 열었다. 공연 수익의 전액을 장애우 시설 확장에 돌리기로 했다. 가수 인순이는 어린 시절 혼혈 가수 등으로 주위 냉대와 차가운 시선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기도 했다. 지금의 그는 어쩌면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주위의 힘없거나 약한 이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과 정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의 착한 행동은 사랑과 친절의 미덕과 강점을 실천한 아름다운 행위이다. 그러니 참 좋은 뉴스이다.

(관련 뉴스)
'노래를 나누는 천사' 인순이, 그녀의 특별한 공연 (MBC TV)

2. 장기기증으로 마지막 교육을 대신한 교사

뇌출혈로 쓰러진 광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뇌사판정을 받은 가운데 가족들이 장기기증을 결단, 교육자로서 그의 삶을 뜻깊게 기려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다. 동료 교사들은 "학생과 함께 하는 모습이 가장 교사다운 모습임을 몸소 보여주신 분, 학생을 사랑으로 대하는 자세가 다른 교사들의 귀감이 됐던 분"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비록 그 선생님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또 다른 신체의 일부가 필요한 이에게 이 세상에 돕는 이도 있다는 믿음을 실천한 것이다. 따뜻하고 좋은 뉴스이다.

(관련 뉴스)
▲ 뇌사판정 40대 교사의 '마지막 가르침' (뉴시스)

3. 미화원 어머니들에게 사랑과 의리를 실천한 성공회대 학생들

비정규직에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주장하는 미화원 어머니들을 소란스럽다면 냉대했던 대학생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와 반대로 자신들의 대학 미화원 어머니들의 어려운 사정을 개선코자 활동하여 따뜻한 점심이라도 제공할 수 있게 된 학교가 있다. 성공회대학 학생들이다. 마침 이 대학의 용영업체는 사회적기업이어서 학생들의 선의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었다고 하니 참 잘 된 일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성공회 대학생들 참 고마운 일을 해주었다. 정말 좋은 뉴스이다.

(관련 뉴스)
▲ 학생들이 찾아준 미화원의 '따뜻한 밥 한끼' (연합뉴스)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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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언론의 뉴스가 대부분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뉴스가 지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으로 사고하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나쁜 뉴스, 부정적 소식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록 작은 뉴스일지라도 <좋은 뉴스>를 올린다. <편집자: 서형준 주>
지난 해 9월 17일 이후 <좋은 뉴스>를 올리지 못했다. 일이 바빠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 후에 짬이 났을 때도 올리지 못한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좋은 뉴스>가 드물고 나쁜 뉴스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부정적인 뉴스가 자칫 우리의 정서를 어둡게 만들 수 있다. 지금도 쉽지 않지만, 오늘 문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고등학생이 내게 용기를 준다.


고교생 영화감동 김수랑
 청춘이 무엇인지 말하다


영화예술이 각광받는 시대이다. 시청각과 디지털 기술이 힘을 합쳐 사람들에세 새로운 세상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 영화 제작자들도 숱한 고생과 수련을 거쳐 영화인의 길에 들어선다. 나이어린 학생신분이야 말할 나위 없다. 요즘 처럼 입시지옥에 공부 잘 하면 성공한다는 획일적인 기준이 암묵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에서 말이다.
김수랑 감독!
그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그것도 고 3이란다. 그가 우리 앞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제 9회 퍼블릭액세스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부터이다. 7전 8기 끝에 첫 수상을 한 순간이다. 열정과 재능으로 가득한 17세 소년에게 심사위원들이 심사비를 모아 상금을 마련해 주었다는 그 소년이다. 지난 해엔 제 10회 퍼블릭액세스시민영상제에서 <풋! 고추이야기>라는 뮤지컬영화로 고등부 작품상을 수상했다. 제 4회 공주 신상욱영화제에서 특별상도 수상했다.
그는 아직 학생이라 전문 영화인이 아니지만 영화감독답다. 평소에는 순하고 어리벙한 성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단 영화제작에 들어가면 동료학생들에게도 민감할 정도로 날카롭고 세심해진다. 스탭과 배우들을 선발할 때도 꼼꼼히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그의 학교 계양고교의 방송반 선생님의 도움으로 인천의 모든 고등학교에 공문을 보내 스탭과 배우를 선발하는 것을 알렸다.
이쯤되면 그는 영낙없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청소년영화이면서도 우리 세상이 채우지 못하는 부족한 그 무엇을 메시지로 전하고 싶단다. 기특하고 장한 일이다.
21세기 그리고 현대. 다양하고 주체적인 개성들이 존중받는 세상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겉으로 표방하는 것과 실상이 다르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아직도 공부 잘해야 똑똑한 학생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여기 저기서 우리의 젊은 김수랑들은 작은 반란을 시작하고 있다.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그에게 많은 시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련은 달콤한 것일 수 있다. 왜냐고? 그가 원하는 일이니까.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고교생 영화감독 김수랑의 행동은 긍정심리학의 24가지 강점 가운데 창의성, 호기심, 용기, 인내를 발휘한 참 좋은 뉴스이다. 


(관련 뉴스)
▲ [김수랑] 뭐든지 연출해보고 싶어요 (씨네 21)
▲ [인터뷰] 한국 최초 청소년 뮤지컬 영화로 퍼블릭액세스 작품상 받은 김수랑 감독 (오마이뉴스)
힘 센 카메라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프레시안)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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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건 작건 오늘의 뉴스 가운데 좋은 뉴스 3가지를 선정하여 내 블로그에 기록한다. 거의 모든 언론의 뉴스가 대부분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뉴스가 지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으로 사고하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나쁜 뉴스, 부정적 소식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록 작은 뉴스일지라도 <좋은 뉴스>를 매일 밤 간단히 편집하여 다음 날 오전 중에 올린다. <편집자: 서형준 주>

1. 기부하면 행복해져요 

기부행위를 하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이른바 기부천사로 알려진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커다란 만족감과 기쁨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어떤 기부자는 '기부중독'이란 표현까지 사용하며 기부를 기뻐한다. 희열이라고 한다. 또한, 최근에 유명 홍콩배우 주윤발은 현재 재산 약 1, 280억원의 99%는 자신이 죽은 뒤 모두 사회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재산은 영원히 내 것은 아니며 사후에 가져갈 생각도 없다' 고 밝혀 멋을 더해준다. 영화 영웅본색에서 수많은 당시 소년들을 정의와 의리감으로 들뜨게 했던 배우다. 기부행위는 선한 기부가 있는가 하면 추악한 기부행위도 있다. 위에서 말한 기부가 선한 기부의 예들이다. 반면 선거법을 위반해가며 표심을 기부로 사기 위해 금품을 제공하는 등의 기부는 부끄럽고 추악한 기부에 해당한다. 같은 기부이고 금품의 이동이란 면에서 같지만 그 의도의 선악은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룬다. 부의 불공정 배분 등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꽤 심각하다. 기부행위로 이런 사회 문제를 다 해소할 순 없다. 그래도 우리는 선한 마음으로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선한 기부행위를 반긴다. 작은 나눔이라도 큰 기쁨과 큰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뉴스)
▲  모두가 행복해지는 경영전략, 기부‥보람 가득 (MBC)
▲  홍콩 배우 주윤발, 재산 1280억원 사후 기부! (프런티어타임스)
▲  기부행위 위반 군의원 벌금 300만원 선고 (뉴시스)


2. 편안한 자연 속 뇌기능 활성화된다

북적대는 도심을 벗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환경에 있으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기도 하지만 뇌 기능에도 아주 좋은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 쉐필드대학교 인지신경이미지 실험실의 마이클 헌터 박사에 의해 주도되었다. 헌터 박사는 말한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갑갑한 도심에서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볼 때 뇌 기능이 더 활발하다”며 “인위적인 도시를 떠나 자연이 있는 곳으로 탈출하는 것은 마음뿐 아니라 지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단순히 여가를 즐기기위해 산으로 바다로 떠나기도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그동안 우리 선인들의 지혜로운 삶의 태도와도 일치한다. 학문을 갈고 닦음에 가장 좋은 곳으로 뒤로 산이 있고 앞으로 물이 흐르는 곳을 택했던 것이다. 인문의 지혜를 구하는 망가진 도시의 지성들이 자주 찾을 곳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품이다. 참 좋은 연구이니 좋은 뉴스이다.

(관련 뉴스)
▲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선 뇌 훨씬 역량발휘 (KorMedi)


3. 몸 튼튼 어린이 머리(뇌)도 튼튼

몸이 튼튼하면 마음 뿐 아니라 머리도 튼튼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잘 뛰어노는 아이는 신체 건강만 좋은 것이 아니라 기억력까지도 탄탄해진다는 것. 미국 일리노이대학 찰스 힐만 교수팀은 9~10세 어린이 49명을 대상으로 신체 건강도를 테스트하고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관찰하여 이같은 연구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기억해내는 ‘관계적 기억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우리의 갇힌 상식과 배치하는 측면이 있는 연구결과이다. 우리에겐 책상과 책에서 많이 매달려 있어야 머리가 좋아진다는 통념이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답답한 구속을 주는 것보다 넓은 운동장에서 맘껏 뛰놀게 하는 것이 기억력(학습능력)에도 좋다는 말이다. 뛰노는 희망의 아이들에게, 그것은 믿는 부모들과 선생님들에게 참 반가운 뉴스이다.
 
(관련 뉴스)
▲   잘 뛰노는 튼튼한 아이, 기억력도 좋다 (KorMedi)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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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건 작건 오늘의 뉴스 가운데 좋은 뉴스 3가지를 선정하여 내 블로그에 기록한다. 거의 모든 언론의 뉴스가 대부분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뉴스가 지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으로 사고하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나쁜 뉴스, 부정적 소식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록 작은 뉴스일지라도 <좋은 뉴스>를 매일 밤 간단히 편집하여 다음 날 오전 중에 올린다. <편집자: 서형준 주>

1. 간 이식 위해 다이어트하는 아내 

간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에게 간 이식을 위해 눈물겨운 다이어트에 돌입한 한 아내가 있다. 간경화가 간암으로 악화된 남편이 의료진의 권유에 따라 간 이식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의 아들이 이식에 적합검사를 받았으나 간 크기가 너무 작아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의 아내가 자청해 검사를 받았다. 크기나 상태는 적합하지만 지방간 수치가 높아 10kg을 감량해야 한다고 한다. 다발성관절염으로 수년 째 고생하고 있는 아내에게 10kg 다이어는 혹독한 인내를 동반하는 아픔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생명이 위험한 그를 위해 그의 아내의 눈물겨운 사랑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좋은 뉴스이다.

(관련 뉴스)
▲  남편에게 간 주려 다이어트하는 아내 (노컷뉴스)


2. 17년전 장기기증하고 떠난 젊은 의사

17년 전 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젊은 의사 음태인씨가 교통사고로 뇌사했다. 그 때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그의 장기기증으로 3명이 새 생명을 찾았다. 17년 전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가 병원에서 열리기도 한다. 지난 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후 장기기증에 많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모자란다. 한 줌 재로 돌아갈 우리의 목숨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각막고 장기로 눈을 뜨고, 새로운 생명을 찾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재산, 지식, 힘이 있는 지 여부에 관계없이 몸과 마음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인간애의 실천. 우리 모두 조금씩 용기를 내보자.

(관련 뉴스)
▲  [생명의 사다리 장기기증] 5명에게 장기기증하고 떠난 젊은 의사 음태인씨… 17년 지났지만 병원서 추모음악회 (조선일보)
▲  [천주교·불교·의료인단체 '장기기증 네트워크' 출범] "의사는 교육자료 만들고 종교단체가 홍보 나설 것" (조선일보)
▲  [생명의 사다리 장기기증] 死後 각막기증, 한국 작년 395건…美의 100분의 1 (조선일보)


3. 감성지수 높으면 회사 일 더 헌신한다

IQ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감성지수, 사회성지수(SQ)가 중요하다고 한다. 감성지수는 지능지수(IQ)와 달리 자기 감정을 적절히 잘 조절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음의 지능지수를 말한다. 감성지수(EQ)가 높은 직원이 회사생활에 더 만족하고 헌신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스라엘 하이파대학 에란 비고다-가도트 교수팀은 일반 직원들과 관리직 809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화합과 감성지수, 직원의 업무태도 등에 대해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감성지수가 높은 직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았고 자기 조직에 더 헌신적이었다. 반면 감성지수가 높으면 업무 스트레스, 퇴사생각, 게으른 태도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업무태도는 훨씬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교수들의 말대로 "감성지수가 높은 직원은 조직의 훌륭한 자산" 이 된다. 새로운 지혜와 지식은 세상을 보는 참 좋은 뉴스이다.
 
(관련 뉴스)
▲   감성지수 높은 직원, 회사 일에 더 헌신한다 (KorMedi)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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