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월 16일은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대회날이었습니다.
동아마라톤은 참가자만도 2만 5천명이며, 전세계 65개국에 생중계된 경기였죠. 물론 저같은 마스터즈 경기는 자세히 중계는 안하고, 이봉주 선수같은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를 중계했을 것입니다.

어제 아침, 사실은 밤잠을 설쳐서 거의 한 잠도 이루지 못한 채 5시경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비교적 일찌기 대회장인 광화문 세종로로 갔죠. 이른 아침 지하철 내부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가까운 역이 다가오자 차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운동복에 마라톤화, 모자를 쓴 참가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역 구내에는 끼리끼리 둘러모여 옷을 갈아입거나 몸을 풀거나 대회당일 컨디션을 조절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역시 제법 큰 대회를 넘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축제같았습니다.

사실 이 대회를 앞두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원래 큰 두려움 모르고 세지 못한 체질에 2년 반 달려온 거리였지만, 이번 대회는 약간 두려웠습니다. 지난 겨울 11월 초순 대회에 참여한 이래 겨울 달리기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12월과 1월은 단 한 번도 달리기 연습을 하지 못했습니다. 2월 중순에서야 조금 씩 달리기를 하였는데, 이번 겨울은 왜 이렇게 춥게 느껴지는지 연습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2008년 들어 첫 풀코스인 동아마라톤은 작은 두려움이자 설렘이었습니다.
전 날 밤 잠을 못이루었지만 그런대로 몸 상태는 즐거웠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것이 좋았고, 아는 후배, 친구, 선배를 만나서 출발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습니다.
2005년 9월 마라톤 달리기 연습을 처음 시작한 이후 네 번의 풀코스를 힘겹게 완주했습니다. 이 날 대회가 가장 어려울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달리기 기간에 제가 느낀 것은 마라톤이 아주 정직한 경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겨우내 훈련하지 않은 나의 잘못을 이 날 대회는 혹독하게 저를 꾸짖을 것이라는 걸 잘 압니다.
2008년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

숭례문의 아픈 상처를 돌아 달리는 마라톤 참가자들



처음엔 풀코스를 처음 달리는 후배와 함께 10킬로 지점까지 순조롭게 달렸습니다. 겨우내 열심히 연습해온 후배는 10킬로를 지나자 걸린 발동을 늦추지 않고 역시 조금씩 앞서 나갔습니다. 그 후로는 계속 저 혼자 달려야 했습니다. 광화문을 출발해 숭례문을 바라 보며 돌아 을지로, 청계천을 다리 건너 왕복하고, 다시 종로를 돌아 달렸습니다. 20킬로 지점까지 큰 무리없이 어쩌면 예상보다 잘 달릴 수 있겠다는 착각이 기분좋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마라톤은 착각하는 저를 용서치 않았습니다. 25킬로 지점 조금 못가서 나즈막한 언덕을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작은 걸음을 잘 넘었습니다. 그런데 25킬로 지점부터 다리가 무거워 지고 어깨가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오늘 죽음의 레이스가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5킬로 지점이후는 점점 속도가 느려져 그동안 잘 맞추어 오던 저의 페이스를 잃어버렸습니다. 30킬로 지점까지 하는데도 벌써 힘에 겨워 4시간 30분 페이스 메이커는 물론,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도 따라가기 벅찼습니다.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의 커다랗고 둥그런 노란풍선이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길가에 응원단과 자원봉사자가 그렇게 많은 대회인데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작은 희망 하나는 응원단이 많고 참가자가 많으므로 어느 정도 따라가면 완주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대회였습니다. 30킬로 지점에서 이 대회의 최대고비인 35킬로지점의 잠실대교 언덕은 정말 힘겨운 레이스였습니다. 힘에부쳐 더 이상 달릴 수 없고, 쥐나려는 다리를 멈추어 가로수를 붙잡고 풀어주어야 한 1~2백미터 달릴 수 있었습니다. 수차례 달리다 멈추어 다리 풀다 걷다를 반복하여 35킬로 지점의 잠실대교를 마주했습니다. 지난해가 생각났습니다. 비교적 쉽게 잠실대교를 달려서 건널 수 있었던 지난해를 연상하며 달리려 했지만 발걸음이 떼지질 않습니다. 결국 걷는 걸이가 더 늘어나 겨우 다리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점점 많아지는 거리의 응원단들, 자기 동호회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대열들을 지나 조금씩 조금씩 전진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간신히 5시간 내에 완주할 수 있을 것 같긴한데 좀더 쉬었다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질 않습니다. 아무리 달리려고 팔과 어깨를 힘차게 치며 나아가려고 해도 다리가 굳어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또 멈추어 기둥을 잡고 다리와 허리를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남은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보니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조금만 더 쉬면 5시간 완주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머릿속으로 옛날 코미디언 이주일의 실룩거리는 걸음걸이로 달려볼까 생각이 날 정도였습니다.

41킬로 지점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골인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만치 41킬로 푯말이 보이자 그 곳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렸습니다. 달린다고 해봤자 빠른 걸음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을 겁니다. 41킬로 지점이 되자 맥이 놓였습니다. 여기까지 너무 힘내서 왔더니 더 나아가기 힘들었습니다. 또 부지런히 가로수를 붙잡고 떠밀었습니다. 경직된 다리 근육과 어깨를 풀기 위함이지요. 반성하는 의미였을까요. 머리를 조금 수그린채 아스팔트만 바라보고 조금씩 달렸습니다. 잠실 주경기장 입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설마 이젠 달릴 수 있겠지. 남은 1킬로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요. 경기장 입구 터널을 지나 트랙을 4분의 3바퀴 돌아 드디어 골인했습니다. 4시간 56분. 간신히 5시간 내 완주에는 성공했습니다.

다섯 번째 풀코스 완주의 작은 기쁨보다 정직한 마라톤 앞에 나의 반성이 앞 섭니다. 연습없이 완주없다. 나는 마라톤 기록에 큰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풀코스를 고통없이 천천히 달려서 완주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런 나의 반성이 하는 일과 더불어 달리기 연습을 정직하게 하리라는 각오를 줍니다.
그래서 제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지 모릅니다. 늘 깨우침을 줍니다.
연습하면 쉽고 편하게 달리고, 연습하지 않으면 죽음의 레이스 마라톤.
우리의 커리어와 인생 또한 그렇지요.
마라톤은 정해진 코스라도 있습니다만, 우리 인생과 커리어는 정해진 코스도 없지요.
눈 뜬 마음과 준비, 이것이 커리어와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어제 마라톤 좋았습니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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