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열흘 전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전화벨에 잠이 깨어 친구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며칠 전에 간암으로 위독하다는 친구 소식을 듣고 중환자실이라 면회도 안된다고 마음 속으로 안타까와 했던 순간이 스쳤습니다.
멍하니 이불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일단 내 생각은 접어둔 채 많은 친구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에 연락을 했습니다.
내가 임종을 지킨 것도 아닌데 나한테 묻는 친구들에게 나는 그냥 그대로 1월 초에 말기 간암 판정을 받았는데 3주만에 운명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연말 동창 모임에서 술도 제법 마시던 친구였습니다. 워낙 모범생 스타일의 친구여서 과음을 하거나 흐트러지는 법이 없는 친구였죠. 술은 그 친구의 간암의 발병 원인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명색이 직업세계의 전문가라고 해서 최근 2년여간 그 친구의 커리어에 관해서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명문대를 나와 몇 년간의 수험생활과 실패, 다시 대기업 입사와 오랜 기간 근무, 퇴사후 다시 수험생활, 다시 다른 대기업에 입사한 지 수개월 되는 터였습니다.
안색이 많이 안좋았는데 어디 아프냐고 하면 그냥 피곤해서 그런다고 하면서 전혀 본인도 병색을 눈치채지 못하였던가 봅니다.
재작년엔 이른 새벽 귀가길에 사고로 운명을 다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40대에 접어들어 가까운 곳에서 운명소식이 들릴 때마다 섬뜩함을 느낍니다. 벌써 그럴 수도 있는 나이인가 하고 말입니다.

사고이든 병이든 한국의 40대는 죽음과 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는 연일 술로 고객과 상사,동료, 부하직원들과 몸을 지치게 합니다. 쌓이는 스트레스는 피할 길 없어 끊지 못하는 담배는 몸을 병들게 합니다. 지친 몸은 주말마저 가볍게 운동하는 것도 방에 묶어 둡니다. 자상하지 못한 남편, 아빠로 낙인찍히며 가족들에게서도 따뜻하게 대접받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40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닙니다.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40대는 정말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직업세계의 길목에 서 있는 나는 이런 상황을 자주 봅니다.
10여년간 충성을 바친 회사에서도 더이상 고용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전날 과음하면 지각하고도 웃으면서 상사에게 아양을 부리면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부하사원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면서 눈치를 보는 일이 흔치 않다고 합니다. 회사는 노련한 사원을 원치 않나 봅니다. 아까운 인재들을 말입니다.

나는 커리어코칭이나 커리어컨설팅 하게 된느 40대에게 말합니다. 아직도 적어도 30년을 넘게 일해야 하는데 벌써 지치시냐구요. 일한 경력을 잘 정리해서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어떠냐구요. 30년이면 최소한 몇 개 분야에서 전문가로도 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보통 한 분야에서 2천시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 2시간 씩 어림 계산해 보면 3년이면 가능한 시간이지요.

40대는 위기를 기회로 맞이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의지와 열정이 남다르고, 경험이 모자르지 않는 40대여 죽음의 그림자를 거두고 새 삶의 굳센 뿌리를 내려봅시다.
친구 J야, 병마가 너를 데려 갔지만 그곳은 조금 편히 쉴 수는 있겠다. 나중에 내가 아주 많이 일해서 이제 쉴만하다 싶어 그 곳에 가게 되면 다시 만나자.
안녕.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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