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심리학연구소 :: 조직 운영의 통념을 버려라

 ‘잘 짜여진 조직 구조’,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돌아가는 각 부서와 기능들’…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바라는 조직 운영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최근과 같이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는 이와 같은 질서 정연한 조직 운영이 오히려 변화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와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처할 방안 마련에 수 많은 경영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다. 2006년 맥킨지 컨설팅사가 전 세계의 1,500여 명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10명 중 9명의 경영자는 ‘향후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경영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맞춰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민첩성(Agility)과 스피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조직의 민첩성과 스피드를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응답자 중 50%가 ‘과도하게 집중화된 의사 결정 및 관리 프로세스가 민첩성과 스피드를 높이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효율성(Operational Excellency)이 핵심 성공 요인이었던 기존의 경영 환경 하에서는 상부의 명령에 따른 일사불란한 실행, 그리고 불필요한 낭비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관리는 분명 강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수직적으로 잘 정렬된 조직 구조와 중앙 집중식 의사 결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금 기업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상부 조직에 보고를 하고 의사 결정을 기다리는 경영 시스템으로서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미래의 불확실성에 적절히 대응할 수가 없다.   
 
조직 운영의 통념을 버려라 
 
이코노미스트誌의 편집장인 팀 하인들(Tim Hindle)은 변화하는 시대에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 50년 간 절대적인 진리처럼 믿어 왔던 ‘명령과 통제(Command & Control)에 의한 체계적 조직 관리를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직은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기존의 조직 운영 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한 듯 하다. “흔히 사람들은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을 바라볼 때는 만족감을 느끼지만 어지럽게 물건이 놓여 있는 걸 보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회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회사 내 각 조직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하게 결정되어 있지 않고 중복이 있거나, 업무 처리에 있어서 지켜야 할 규칙이 명확하지 못할 때, 조직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완벽한 혼란(A Perfect Mess)」의 저자인 콜럼비아 대학의 에릭 애브라함슨(Eric Abrahamson) 교수의 말이다.
 
이 말처럼 거의 모든 경영자들은 자신의 회사가 보다 질서 정연하고 합리적인 조직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많은 기업들이 조직 재설계, 내부 운영 프로세스 개선, 매뉴얼/규정 등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인력을 투입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조직도,  각 조직 별로 명확하게 규정된 역할과 책임, 적절한 견제와 균형, 일사 분란한 명령 체계 등이 있을 때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믿음 때문이다. 여기에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조직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다. 이런 생각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많은 경영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고, 소위 잘 나가는 기업들을 보면 대개 비전이나 사업 전략에 맞게 일관된 조직을 가지고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브라함슨 교수는 “경영자들이 바라는 것처럼 완벽하게 질서 정연한 조직을 만든다거나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지적도 빼놓지 않고 있다. 덧붙여 “최근과 같이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잘 정돈되고 질서 정연한 조직은 변화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조직 구조나 운영에 있어 어느 정도의 무질서를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무질서의 혜택 
 
1.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 
 
독특한 경영 방식을 가지고 있는 셈코(Semco)사의 CEO인 리카르도 세믈러(Ricardo Semler)는 “많은 경영자들이 질서, 안정, 그리고 예측 가능성을 바라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영역, 모든 경우에 대해 규칙을 만들려 한다. 그리고, 종이에 깔끔하게 정리된 규칙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잘못된 착각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세믈러는 오히려 이런 규칙들은 경영자를 비롯한 관리자들에게 기존의 규칙만 잘 지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면서 변화에 둔감하게 만들고, 새로운 가능성을 눈 앞에 두고도 기존의 규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에 세믈러는 자신이 경영하는 셈코사에서 각종 정책과 규칙을 없애고 대신 직원들간의 토의와 합의를 통한 ‘직장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더 나아가 세믈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직원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라도 직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나와 자신의 계획을 피력할 수 있다. 위원회에서 제안이 통과된다면 그 일을 직접 맡아서 할 수도 있다. 셈코사는 이런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변화에 적응해간다<박스 기사, 셈코 : 무규칙의 성과 참고>.  
 
2. 상호 이해와 부문간 협력 유도 
 
명확한 조직간의 역할 구분을 통해 각 조직의 책임감과 전문성을 높이고, 조직 간 중복으로 인한 낭비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는 조직 운영에 있어 기본적인 원칙이다. 매우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물이고, 논리적으로는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 경영 현장에 적용해보면, 오히려 조직간의 갈등이나 분열 등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조직 간에 중복되는 부문이 전혀 없을 경우, 조직도 상으로는 깔끔해 보이기는 하지만, 정보의 흐름이나 각 부문 간의 협력이 부족하여 오히려 일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게 되기도 한다.  
 
조직간의 역할 구분이 모호하여 나타나는 중복을 낭비나 비효율로 보기보다는 부문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여 상호 협력을 강화하고, 지식의 공유와 창조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요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식 경영의 대가인 이쿠지로 노나카(Ikujiro Nonaka) 교수가 그 대표적인 학자로 조직적 지식 창조를 위해서는 ‘중복성 (Redundancy)’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례로 캐논(Canon)사의 경우에는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러 개의 연구 개발팀을 운영했었다. 캐논의 경영진은 조직의 중복으로 인해 자원의 낭비가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중복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고, 서로의 지식이 공유되면서 창의력이 높아지고, 결국 회사는 최고의 성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게 여러 개의 소규모 개발팀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공유하면서 일을 진행한다.  
 
조직 별로 역할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무질서해 보이는 조직 운영 방식은 보다 현실적인 의사 결정과 부문간 협력을 이끄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1920년대에서 50년대까지의 GM사의 변화 과정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GM사는 사업본부제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며, 일상적인 생산, 영업 등을 수행하는 사업본부(Operating Division)와 전사 차원의 전략 수립, 자원 배분, 성과 관리 등을 수행하는 본사(Corporate Headquarter)간에는 명확한 역할 구분이 있어야 한다는 조직 구성 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당시 CEO였던 알프레드 슬로안(Alfred Sloan)은 이를 ‘연방적 분권화(Federal Decentralization)’라고 불렀다.  
 
그러나, 경영사학자인 위스콘신 대학의 로버트 프리랜드(Robert Freeland)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는 슬로안의 암묵적인 승인 하에 각 사업본부 리더들은 수시로 전사 차원의 의사 결정에 많은 개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본사는 고객과 현장에 가까운 사업본부 리더들로부터 시장의 상황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들으면서 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었으며, 사업본부 리더들은 자신들이 계획 수립에 참여했기 때문에 본사의 방침에 더 높은 수용성과 몰입을 보였다. 그 결과 GM은 포드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20여 년 동안 꾸준히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슬로안이 은퇴한 이후에야 비로소 GM은 조직 구조에 맞게 사업본부 리더들의 발언권을 제한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조직 구조에 맞게 명확한 역할 구분을 둔 결과, 본사와 사업본부간에는 불신과 갈등이 싹텄고 GM의 성과는 급격하게 하락했다<박스 기사, GM : 연방적 분권화 참조>.  
 
3. 새로운 발상과 혁신 
 
무질서를 허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효용은 서로 전혀 다른 분야, 다른 생각들의 결합이나 창조적 갈등을 통한 혁신이다. 왓튼 스쿨의 이안 맥밀란(Ian MacMillan)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혁신적인 신제품/신기술은 서로 관련이 없던 새로운 영역 간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애브라함슨 교수는 질서가 잡혀 있는 상태에서는 서로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결합이 쉽지 않지만, 무질서한 상황에서는 그와 반대의 현상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해럴드 리빗(Harold Leavitt) 교수와 클레어몬트 대학의 진 블루먼(Jean Bluemen)교수도 급변하는 환경에 대처하고,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지금보다 덜 ‘조직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다. ‘덜 조직적’이어야 한다는 표현의 의미는 각 조직 별로 명확한 역할을 규정하고,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기존의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기업들의 경우, 명확한 규정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규칙의 준수, 질서 유지를 중시하게 되고, 기존의 규칙에 어긋나는 것은 조직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하면서 억누르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조직은 점점 창의성이나 유연성 등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서 변화하는데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과거의 질서정연한 조직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시스템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창의성이 중요한 지식 기반 산업에 속한 기업에서 이런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1969년 설립된 통신 기술 서비스 기업인 SAIC(Science Application International Corporation)는 대부분의 벤처 기업들이 그렇듯이 몇 푼 안 되는 자본금과 아이디어만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연 매출이 7조원에 달하고, Fortune誌의 500대 기업 순위에도 올라 있는 기업이다. 동사의 창업자인 로버트 베이스터(Robert Beyster)는 관리를 포기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성공이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에 대형 방위산업체에 다니다가 관료주의적인 조직 문화를 견디지 못해 뛰쳐나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베이스터는 과학자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연구 모임 중 열정적이고 도전 정신이 강한 그룹을 찾아내 스카우트한 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SAIC사는 이들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통제의 역설 
 
지금까지 소개한 기업들의 사례는 평범의 범주를 벗어난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진리가 된 이 시점에 이들 기업이 주는 시사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의 저자인 톰 피터즈(Tom Peters)의 ‘요즘과 같은 혼돈의 시기에 통제력을 확보할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통제를 포기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라는 역설적인 조언을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끝> (LGERI 2007.05.21 한상엽)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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