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비벌리힐스를 사로잡은 남자
- 파티플래너 케빈 리


▶ 방송일시 : 2007년 2월 15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정해상(외주:박하사탕), 작가 : 김수현

미국 최대의 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음반업계 최고 권위의 그레미 어워드!!

세계적 명성의 시상식장 파티를
10년 동안 총괄한 한국인이 있다.

영화배우 브래드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톤의 결혼식!
빌 클린턴 전 美 대통령의 전당대회 파티!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들과 LA의 유명 인사들을 매료시키며
미국 사교계를 꽃으로 장식한
파티플래너 케빈 리(53).

특별한 날,
미국 사람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하는 한국인
케빈 리가 준비하는 파티의 현장으로 들어가 본다!

▶ 미국 사교계는 지금, 케빈 리의 마법에 빠졌다!

미국 최대의 시상식으로 손꼽히는 아카데미 시상식과 그래미 어워드는 별들의 잔치라고 불릴 만큼 영예로운 시상식이다. 이 화려한 시상식장을 10년 동안이나 총괄하며
아름다운 공간으로 연출한 주인공은 53세의 한국인 케빈 리. 할리우드 최고의 화제가
되었던 브래드 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톤의 성대한 결혼식도 케빈 리의 작품이다.
그 후 떠오르는 파티플래너로 자리매김한 케빈리는 안소니 홉킨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나등 이름만으로도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정상급 스타들의 결혼식을 주관하고,
주드로, 아놀드 슈워제네거, 빌 클린턴 등 각계각층 인사들의 다양한 기념일 행사를
도 맡았다. 하지만 파티플래너는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직업. 케빈 리는 파티플래너로 활동하며 꽃으로 미국 비벌리힐스를 사로잡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케빈 리가 20여 년 동안 운영한 la 프리미어 숍은 꽃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비벌리힐스의 내로라하는 대부호들까지 단골로 찾는 꽃집이다. 에디머피,
쟈넷잭슨, 비욘세 등 정상급의 스타들도 단골 고객이 되었다. 꽃 작품 하나의 가격이
수 십 만원에서 수 백 만원을 호가하지만 케빈 리의 가게는 연일 호황을 누리며
비벌리힐스를 대표하는 꽃집으로 자리매김 했다.

▶ 꽃집 종업원, 비벌리힐스 최고의 플로리스트 되다!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케빈 리. 그의 인생이 뒤바뀐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부터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그는 1979년,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의 길을 선택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주유소 꽃집 등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었을 정도.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파트타임으로 일 하던 꽃가게 주인의 권유로 플로리스트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고객들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케빈 리의 철칙. 처음 플로리스트가 되어서부터 정상의 자리에 오른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같은 디자인의 꽃장식을 하지 않았다. 파티가 있는 날이면 꿈속에서 조차 파티를 준비한다는 케빈 리.
그렇게 꽃집 종업원으로 일을 한 지 6년 만인 1986년, 드디어 자신이 운영하는 la 프리미어 숍을 열게 되었다. 현재 케빈 리는 비벌리힐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디자인하는 플로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 파티를 사랑한 남자, 한국인 케빈 리!

촉망받는 플로리스트로 성장하던 케빈 리. 그에게 또 한번의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98년, 불후의 명곡 ‘마이웨이’를 부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장례식 장식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장례식과는 달리 망자의 새로운 인생을 축복하기 위해 화사한 분위기로 꾸며진 프랭크 시나트라의 장례식은 CNN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될 만큼 화제가 됐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장례식을 계기로 콧대 높은 비벌리힐스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파티플래너로 성장하게 된 케빈 리.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한 번 인연을 맺은 고객들의 생일파티를 일일이 챙겨주는 자상함까지 겸비하고 있다. 반신반의 하며 파티를 맡겼던 할리우드 스타와 유명 인사들도 케빈 리의 ‘진심’앞에 이제는 그와 친구가 되길 원한다.
먼 타국에서 화려한 사람들과의 인맥을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고국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다. 요즘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케빈 리.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미국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제 2의 케빈 리가
나올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 꽃을 사랑한 남자, 생애 최고의 순간을 디자인하다.

최근 케빈 리가 디자인한 결혼식은 비벌리힐스 최고 부호들의 전용결혼식장이라는
힐튼 호텔에서 치러졌다. 하객이 수 백 명에 이르는 이 거대한 결혼식에 들어간 비용만
7억 원. 평범한 3개 홀이 케빈 리의 손에 의해 최고급 유럽풍의 결혼식장으로 탈 바꿈
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신혼부부의 행복한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온통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결혼식장. 이렇게 케빈 리가 진행한 행사들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파티장을 장식하는 데만 30억 원의 비용을 들인 적도 있다고 한다. 그가 주관한 대부분의 행사는 부르는 게 값. 고객의 배경과 상황에 맞춰 행사를 기획하기 때문이다. 13세가 된 유대인 소년의 성인식도 케빈 리의 손에 의해 성대하게 치러졌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기 위해 어느 때 못지않게 신중하게 파티를 준비했고, 성인식은 최고의 순간으로 마무리 되었다.
꽃이 생활의 일부인 미국 사람들에게 삶의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꽃의 마술사 케빈 리.
고객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케빈 리의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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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공중보건 지킴이
- 수의사 김세민


▶ 방송일시 : 2007년 2월 8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김상우, 작가 : 허수빈

 

광견병으로 매년 150명 사망.
스리랑카는 광견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스리랑카 광견병 퇴치의 최일선에 나선 한국인 김세민씨.
광견병퇴치와 조류인플루엔자 예방책 마련의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스리랑카의 농축산부장관 직속 수의 보좌관으로 임명 됐다.

공중보건의 불모지 스리랑카에서
수호천사로 통하는 30세의 한국인 수의사 ‘닥터 김’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위해 땀흘리는
그의 인술현장을 동행한다.

■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나라 스리랑카
             스리랑카의 광견병과 싸우는 한국인 수의사 ‘김세민’

인구 2천만명의 스리랑카. 개는 인구수의 5배가 넘는다. 그 중 대부분이 접종과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채 떠도는 유기견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유기견들과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개가 갖고 있는 갖가지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광견병이다.
매년 150명이 광견병으로 사망하는 스리랑카는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국가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살처분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살처분은 역효과만 냈을 뿐
개체수나 광견병으로 인한 피해는 줄어들지 않아 실패했다. 스리랑카 전역을 누비며
수의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수의사 김세민씨.2003년 스리랑카에서 수의보좌관으로 일을 시작 한 이래로 광견병퇴치에 앞장서던
김세민씨는 2004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개들에게 백신접종을 하고 중성화 수술을
실시했다. 중성화 수술은 근본적으로 개체수의 증가를 억제하고 사람과 개들의 건강한
공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 만능 수의사 ‘닥터 김’이 최고야!
                            연막소독기를 둘러맨 수호천사 ‘김세민’

수의사 김세민씨는 동물 치료뿐 아니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스리랑카 유일의 중앙동물병원의 수의사에게 수술법을 가르치고 수술 후
모니터를 해주는 것은 물론 올바른 약품 관리를 위해 약품 보관실의 관리법까지 알려줄 정도로 세밀한 부분에도 신경을 쓴다. 2004년 쓰나미가 스리랑카를 뒤덮었을 당시에도 식수관리는 물론 시체 운구 등의 궂은 일 또한 ‘김세민 수의사’의 몫이었다. 공중보건의체계를 잡는 것이 곧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 말하는 김세민씨.
일주일에 한번씩 연막소독기를 어깨에 둘러매고 구석구석을 돌며 일일이 소독을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사랑하는 만능 수의사 닥터김! 훗날 도움의
손길 없이도 쓰리랑카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그저 작은 힘을 보태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 스리랑카 정부는 닥터김이 필요하다!
               ‘스리랑카 농축산부장관 직속 수의보좌관’ 김세민

김세민씨는 2000년 ‘청소년 교류프로그램’으로 몽골 방문 시 주사기를 재활용하는 열악한 개도국의 현실과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 후 국제협련단(KOICA)에 군 대체복무 요원으로 지원하여 2003년 스리랑카 ‘농축산보건청 수의보좌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조류독감으로 전 세계가 들썩일 때 조류인플루엔자에 무방비로 노출 된 스리랑카에
대비책을 마련한 것도 김세민씨였다. 조류인플루엔자를 확인할 기술이나 장비가 없어서 진단 조차 할 수 없던 때 김세민씨가 나서 한국으로부터 진단기술과 진단키트를 무상 지원 받았다. 김세민씨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외국인 최초로 2005년 농축산부장관
표창과 함께 수의보좌관으로 임명된다. 2006년 1월, 전역을 앞둔 김세민씨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 막 김세민씨의 도움으로 공중보건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한 스리랑카
정부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한국대사관에 김세민씨를
스리랑카로 재파견 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리하여 스리랑카로 다시 돌아온
김세민씨는 본격적으로 ‘농림부 직속 수의보좌관’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 2007. 1. 18
      스리랑카 대통령궁에서 ‘광견병 통제센터’마련을 위한
          프리젠테이션 실시

광견병 퇴치사업을 전국적으로 벌이기 위해 프로그램의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스리랑카.
스리랑카는 현재 김세민씨의 제안으로 광견병 예방 접종이나 수술은 물론 수술 후 입원, 유기견 보호, 개를 기를 때의 주의사항 교육까지 가능한 스리랑카 최초의 ‘광견병 통제센터’설립을 추진 중에 있다. 광견병 통제센터의 건립을 위한 최우선 과제인 부지와 시설마련을 위해 스리랑카 정부를 설득하고 지원을 이끌어 낸 것도 김세민씨였다.
부지와 시설마련뿐 아니라 시설 운영비 등 적극적인 예산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대통령궁에서의 프레젠테이션을 요청했던 김세민씨. 드디어 1월 18일.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광견병 통제센터’마련을 위한 대통령궁 프레젠테이션을 실시, 앞으로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는 김세민씨의 활약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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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편, 브라질이 주목한 사업가
반지의 제왕 이재호

▶ 방송일시 : 2007년 2월 1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이상운, 작가 : 양희정  

2004, 2005년 브라질 최고의 체인점 선정!
브라질 전체 판매성장률 3위!
연 20-30% 성장률 달성!
2006 브라질 사업모델 선정!!
연매출 3600만 달러!
브라질 전역에 110개의 가맹점을 개설한 기업 진진&모라나!
중국음식과 액세서리로 브라질을 점령한 반지의 제왕,
이재호 사장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본다!



 

▶ 브라질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다. 진진&모라나

브라질의 <진진&모라나>는 중국음식 가맹 사업에 이어, 여성 액세서리 가맹사업까지
성공시키며 2004, 2005년 브라질 최고의 체인점으로 선정되는 등 가장 주목받는 기업중 하나다. 현재 브라질 전역에 진진& 모라나가 건립한 가맹점수는 무려 110여개로,
특히 액세서리 전문점 모라나는 창업한지 4년 만에 70여개의 가맹점을 만들어내며 가장 빠르게 성장한 브랜드로 손꼽힌다.

이 놀라운 결실을 일군 사람은 바로 43세의 한국인 이재호씨. 90년대 초반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면서 외식 산업과 여성들의 패션관련 사업 분야가 전망이 밝다고 생각하고 가맹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재호씨의 예상은 적중했고 사업을 시작한지 15여년 만인 지금, 연 매출 3600만 달러를 만들어내는 기업 진진&모라나를 탄생시킨 것이다.

▶ 고객의 마음을 읽으면 성공이 보인다.
피부도 생김새도 다른 이민족이었던 이재호씨가 브라질의 체인 사업 시장에 뛰어든
지 불과 10여 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둔 데는 남다른 노력과 비법이 있었다.
바로 ‘고객의 마음을 읽는 서비스와 고객 만족 마케팅’이다.


쳇째,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이재호씨는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매장 인테리어부터 판매 될 제품을 선정했다. 그래서 여성액세서리 전문점 모라나 매장에는 유리진열장이 없다. 반지, 목걸이, 머리핀 등 모라나의 모든 제품은 고객들이 직접 만져보고 착용해 본 뒤 선택 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심지어 시간대 별로 고객의 유형과 연령층까지 분석해 그에 맞는 제품 진열하는가하면, 지역에 따라 선호되는 제품이 무엇인지를 조사해 그에 맞는 물건을 지점에 공급한다.

둘째, 최상의 품질을 제공한다.
 
진진에서는 최상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맛 볼 수 있다. 이재호씨는 신선한 재료들을 40여개의 각 지점에 공급할 뿐만 아니라 가맹점을 개설한 사람들에게 한 달 간 요리 교육을 받게 해 모든 지점의 음식 맛을 동일하게 유지한다.

그런가하면 모라나는 신상품에 대한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매주 20여개씩
새로운 상품이 만들어 내고, 뛰어난 디자인과 좋은 제품을 확보하기 위해 일 년에도
여러 차례 한국과 브라질을 오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셋째, 고객이 준 이익은 고객에게로!
모라나는 얼마 전부터 판매수익금의 10%를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기관인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고객에 의해 발전하고 성장한 회사 인 만큼 이제는 그 이윤을 사회와 함께 나눠야한다는 것이 모라나&진진 기업의 방침이다. 좋은 뜻에 동참해 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보수를 받지 않고 기꺼이 모라나 제품의 모델이 되어 줘,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 브라질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재호씨의 꿈은 진진&모라나가 브라질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2007년, 미국시장으로의 진출을 논의한데 이어 곧 유럽시장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불혹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재호씨는 얼마 전부터 MBA 경영대학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모라나&진진이 브라질을 넘어 세계의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가장 선두에서는 이끄는 경영인부터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꿈을 향해 돌진하는 그의 발걸음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계 시장을 무대로 성장하는
이재호씨의 힘찬 내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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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왕 김영완의
굿모닝 LA


▶ 방송일시 : 2007년 1월 25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송철훈, 작가 : 박미연

 

미국 내 햄버거로 대표되는 ‘정크푸드’는 가고,
‘씨푸드’로 대표되는 ‘웰빙푸드’가 뜨고 있다!
성장률이 높아지는 미국 해산물 시장.
해산물에 있어서만큼은 절대강자인 일본인업체들 속에
당당히 맞서는 한국인 업체가 있다.

LA 요식업체 선정 “BEST Company of the year”수상
미국 각지에 거래식당 600여개
취급 어종 300여종
한 해 매출 4천만불


바로 ‘오션 프레쉬 피쉬’를 이끄는 한국인 ‘김영완’ 씨가 그 주인공이다.
비버리힐즈의 까다로운 고급레스토랑부터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라스베가스까지.
20년간 오로지 생선을 향한 김영완씨의 집념과 열정을 만나보자.

■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본인’..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국인’ 김영완!

전 세계적으로 웰빙 바람이 불고 있는 요즘, 미국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
바로 회와 초밥으로 대표되는 씨푸드! 거기에 미국에 진출한 일식 요리사들의 노력이
더해져 미국 내 일식집 1만개로 바야흐로 일식 전성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날로 성장해 가는 거대한 시장임을 미리 꿰뚫어 본 한국인 생선장수 김영완씨!
일본인 주도미국 해산물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타적이고 까다로운 일식 요리사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사업 초기, 싱싱한 생선을 들고 일식집을 찾았지만 김영완씨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일본인이 아니면 나가라”는 말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고객들에게 파는 것은 단순한 생선이 아니라
‘오션 프레쉬 피쉬’라는 자존심이고 ‘코리안’이라는 자부심이기에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사업 시작 23년 만에 고급레스토랑의 콧대 높은 일식 요리사들을 한국인이 운영하는
‘오션 프레쉬 피쉬’로 줄서게 한 비결은 무엇일까.

■ 공부를 하기위해 선택한 생선장수
            끈기로 얻은 별명 ‘김조기’!

1980년, 공부를 목적으로 가방하나 짊어지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김영완씨는 학비 마련을 위해 청소부, 정원사, 도넛 가게 점원, 주유소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중국인 생선수입회사에서 우연히 일한 것을 시작으로 수산업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세일즈맨 시절, 조기의 조리법조차 모르던 한인 타운의 미국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조기를 팔러 다녀 ‘김조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시장을 돌며 상인들과 직접
부딪힌 시간들은 해산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김영완씨에게 수산물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공부의 초석이 되었다. 생선을 팔며 흘린 땀방울의 맛을 알았기 때문일까.
1983년 트럭한대로 미국을 돌며 생선 장사를 시작한다.
먼 타국 땅에서 생선장수의 길을 선택하게 했던 김영완씨가 발견한 미국 해산물 시장의 블루 오션은 무엇이었을까.

■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변함없는 ‘신입 사장’ 김영완!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새벽시장을 여는 김영완씨. 직원들보다 한 시간 앞선 새벽 3시에
출근하여 회사의 일과가 끝난 후 모두가 퇴근한 후 회사 뒷정리를 마쳐야 그의 하루도
끝이 난다. 주문량을 체크하고, 손수 생선을 다듬고, 일과 후 작업장 청소까지 김영완씨
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사장이 직접 현장에서 부지런을 떠니 ‘오션 프레쉬 피쉬’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고 고객들은 입을 모은다. 사업초기
“오션에 가면 내가 원하는 싱싱한 생선을 구할 수 있다. 영킴 믿을 만하다”
입소문이 오늘 날의 ‘오션 프레쉬 피쉬’를 만들었음을 알기에 김영완씨는 어김없이
새벽 3시에 일어나 작업장으로 향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그의 특별한 24시간
덕분에 LA 사람들은 언제나 싱싱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미국 식탁의 싱싱한
해산물을 책임지는 김영완씨의 생생한 일상을 들여다본다.

■ ‘선어(鮮魚)’를 위해서라면 세상 끝까지 간다.
         미국 최고의 수산 왕국을 꿈꾸는 김영완!

냉동이 아닌 선어를 선호하는 미국 해산물 시장의 흐름을 꿰뚫고 사업에 뛰어든
김영완씨는 무서우리만치 생선의 질에 집착한다. 가격이 아닌 생선의 질로 고객을
설득하는 것이 20년간 지켜온 변함없는 그의 철칙! 고객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일본, 하와이, 캐나다는 물론 아프리카와 멕시코의 오지까지 30여 개국에서
300여종의 해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산지에서 막 잡아 올린 생선을 현지
지점의 직원이 경매를 통해 구입, 24시간 내에 고객에게 전하기 위해 비행기를 통한
생선 공수 대작전이 날마다 펼쳐진다.
이제 LA를 넘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시장인 라스베가스까지. 전 미지역에
‘오션 프레쉬 피쉬’의 깃발을 휘날릴 그 날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영완씨의 도전 인생을 만나보자.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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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타조왕
- 배효섭


▶ 방송일시 : 2007년 1월 18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김정수, 작가 : 김수현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타조는, 영어‘오스트리치(Ostrich)’대신
우리말
‘타조(Tajo)’ 로 통한다.
‘타조’라는 브랜드로 뉴질랜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자랑스러운 한국인 배효섭 씨 때문이다.
뉴질랜드 타조고기 시장의 99%를 장악하고 있는 배효섭씨!
현재 동양인 최초로
뉴질랜드 타조협회장 까지 맡고 있는
타조왕, 배효섭씨를 만나본다!


▶ 뉴질랜드인들에게
            영어 ‘Ostrich' 보다 친숙한 우리말 ‘타-조(Tajo)’
                               - 배효섭의 뉴질랜드 타조시장 개척기

뉴질랜드 사람들은 타조고기를 영어 ‘Ostrich' 대신 우리나라 말 그대로 ‘타조(Tajo)'라고 부른다. 배효섭씨가 우리말 ‘타조’를 상표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타조 오스트리치'라는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한지 9년여. 이제 사람들은 고급레스토랑에서도, 대형 마트에서도 ‘타조 오스트리치’를 찾는다. 현지의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는 소고기의 가격은 1kg당 한화 1만 8000원, 타조고기는 약 3만원 정도. 뉴질랜드에서 타조고기는 고급육으로 통한다. 배효섭씨는 고가에 판매되는 타조고기를 단골 메뉴로 만들기 위해 맨몸으로 뛰었다. 그리고 현지인들조차 외면한 타조고기 시장을 떠오르는 사업으로 탈바꿈 시켰다. 배효섭씨의 타조고기는 마트에만 납품되는 게 아니다.
최고급 레스토랑에 직접 개발한 다양한 타조 요리들을 소개해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이르렀다. 그가 개발한 메뉴만도 타조 버거, 타조 스테이크, 타조 스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타조 버거는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좋아하는
인기 메뉴로 자리매김 했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중심에 바로 자랑스러운 한국인, 배효섭씨가 있다.

▶ 1인 多역을 소화하는 타조박사!

뉴질랜드 중의 뉴질랜드로 불리는 유라웨라 국립공원. 이곳에 30여만 평 규모의 캐디쉬
농장이 있다. 바로 배효섭씨가 운영하는 뉴질랜드 최대 타조 농장이다. 그가 사육하는
타조만 해도 3천여마리! 배효섭씨는 이 거대한 농장을 단 4명의 직원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모든 것이 기계화 되어 있는 캐디쉬 농장. 이곳에는 배효섭씨의 손이 거치지 않는
곳이 없다. 알을 부화시키고 갓 태어난 타조들을 사육하는 일에서부터 농장을 관리하고 타조고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그가 관리한다. 타조에 관한 거의 박사가 된
배효섭- 그는 농장을 운영하며 또 다른 수익 모델을 연구하던 중 농장을 관광상품으로까지 개발,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 해 캐디쉬 농장을 찾는 관광객들만 수천 명.
뉴질랜드 현지인에서 일본인, 한국인들까지 있다. 배효섭씨는 농장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농장 투어는 물론 타조고기를 시식하게 했다. 반응은 성공적!
하지만 그의 노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정신,
                   뉴질랜드에서 꽃 피우다!

한국에서 증권회사의 이른바 잘나가는 채권펀드매니저로 일했던 배효섭씨. 그는 9년 전, 새로운 일을 찾아 돌연 뉴질랜드행을 택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타조사업. 당시 뉴질랜드 내에서 타조 축산업은 사양산업이었다. 현지인들조차 판로를 찾지 못해 타조 농장을 포기하고 있었다. 처음 그가 타조 농장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주위 모든 사람들이 그의 선택을 만류했다. 차라리 소나 양을 키우라고 했다. 하지만 배효섭씨는 타조가 뛰어난 생산성과 질병으로부터의 안전성, 맛과 영양을 모두 갖춘 미래의 육류라는 확신을 가지고 타조사업에 과감히 도전장을 냈다. 현재 그는 뉴질랜드타조고기의 99%를 공급, 생산량의 70%이상을 유럽, 미국 등지의 해외로 수출하는
기업을 일군 장본인이다.
뉴질랜드 국민당의 대표인 존 키씨는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배효섭과 같은 사업가들을 적극
후원한다.”
며 그의 성공에 박수를 보냈다.
뉴질랜드의 경제발전에도 큰 영향을 준 배효섭씨. 그는 현재 뉴질랜드 타조협회에서
동양인 최초로 협회장으로 활동하며 현지 정재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 타조고기 시장의 부활,
                      그 중심에 선 배효섭!

뉴질랜드에서 가장 성공한 이민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배효섭씨.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5년 만에 투자한 자본이
모두 바닥나자 그는 마케팅에 승부수를 띄웠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럭비구장, 공원 등을 찾아 타조 고기 시식회를 열며, 타조고기를 알렸다. 대형 마트와
고급 레스토랑에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시식회를 열어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결과는 대성공! 특히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이 모이는 대형마트에 ‘타조 오스트리치’를
납품하는 것은 판매와 홍보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조금씩 알려
지게 된 타조고기는 뉴질랜드의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판매되기 시작했고,
현재 레스토랑에서 판매되는 음식 중 고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메뉴가 되었다.
사업이 성공 궤도에 오른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배효섭씨. 그는
갑자기 주문이 들어온 물건을 직접 배달하기도 하고, 새로운 거래처를 직접 찾아가
‘TAJO(타조)’를 홍보한다. 또 뉴질랜드 사람들의 입맛을 공략하기 위해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현지인을 고용해 메뉴를 개발하는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배효섭씨의 하루는 오늘도 ‘타조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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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는 나의 무대
- 미술 총감독 한유정


▶ 방송일시 : 2007년 1월 11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황범하, 작가 : 허수빈

 

영화의 꿈이 시작되는 세계적인 영화 제작소 미국 할리우드.
할리우드는 배우나 감독 외에도 수많은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진검 승부를 펼치는 세계 최고무대다.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은 세트 제작에서부터
작은 소품배치에 이르기까지
카메라에 담기는 모든 공간을 연출하는 영화제작 전문가.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미술 총감독 중 동양인은
불과 5% 미만에 불과하다.
그 엄격하고 냉혹한 할리우드의 벽을 넘어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미술 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유정씨(34).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영화, TV쇼, 광고 등의 미술 총감독으로 활동한지
9년째가 된 그녀는
파라마운트, 워너브라더스, ESPN, MTV, NBC 등
유수의 제작사와 함께 일했다.
앞으로 5년 안에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 세계 TOP 10에
들겠다는 당찬 계획을 갖고 있는
한유정의 할리우드 도전기와
할리우드를 무대로 펼치는 그녀의 활약상을 따라간다.


▶ 할리우드의 토종 한국인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 한유정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손을 거친다. 그 중 카메라에 담기는 모든 공간을 창조하고 연출하는 총책임자가 바로 프로덕션 디자이너, 미술 총감독이다.
20년 전만해도 할리우드의 여성 미술 총감독은 극소수였을 뿐더러 특히, 외국인이
할리우드에 입성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그런 미개척지에 10년 전 도전장을 내밀고 당당히 할리우드에서 유일한 한국인 미술
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유정씨. 교포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조기 유학파도 아닌
그녀가 자신의 한글 이름 ‘한 유 정’을 당당히 내걸고 할리우드의 냉혹하고 엄격한
무대를 누빌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리더십과 섬세한 미적 감각, 그리고 신선한
아이디어와 도전정신, 자신감 때문이었다.

★ 할리우드는 겉보기에 그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화려한 꿈의 무대처럼 비춰지지만,  그 실상은 치열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항상 나를 긴장하게 하며 나태해 지지 않게 잡아주는 그 할리우드의 전쟁터가 삶의 원동력이다. ★                        
-한유정 인터뷰 중-

▶ 할리우드에서 고교시절 꿈을 이루다.

지금은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영화, 광고, TV쇼 등의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
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본래는 연극이나 오페라의 무대 디자이너가 꿈이었다는
한유정씨. 고교시절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었던 때만 해도 한국의 무대 디자인 분야는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한국의 대학에서 실내 환경 디자인과를 졸업, 1년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하며 악착같이 포트폴리오를 준비한 것은 바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무대, 즉 미국으로 떠나오기 위함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1년간 매일 밤샘 작업했던 포트폴리오가 마침내 미국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무대 디자인 석사 과정에 입학허가를 가져다주었다. 유학시절 덩그러니 작업실에 홀로 남아 도면을
그리고, 무대를 세우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꿈에 매일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늘 행복했다.

★ 유정은 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훌륭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미술 쪽의 이력, 시각적 역량, 상상력으로 봤을 때 그녀가 그 일을 분명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유정의 스승 ‘단 월런’(연극과 조교수)-

▶ 최고의 배경과 공간을 창조하는 미술 총감독, 한유정

대학원 시절, 연극과 대학원 학생들에게 의뢰받은 무대 디자인을 해주며 자신의 경력을 쌓아갔던 한유정씨. 당시 그녀에게 작품을 의뢰했던 대학원 학생 중에는 영화 프로듀서가 있었다. 뛰어난 미적 감각과 순발력, 그리고 팀을 이끄는 리더십이 뛰어났던 그녀는 대학원에서 만난 영화 프로듀서의 발탁으로 1999년 정우성, 고소영 주연의 <러브>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을 맡았다. 이 후 무대 디자이너가 아닌 미술 총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엔디 가르샤, 제임스 코번, 믹 제거 등 유명 스타들이 출연했던 영화에서부터 인디영화에 이르기까지 수십 편의 영화제작에 참여한 그녀는 특히
저예산으로 최고의 배경과 공간을 창조해내는 유능한 미술 총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녀의 능력은 2002년 선댄스에 출품됐던 저예산 영화, 베터 럭 투모로우
(Better Luck Tomorrow)의 신인감독이 일약 메이저급 할리우드 감독으로
성장하는데 숨은 공로를 했다.

★ YJ(유정)과 일하는 것은 매우 즐겁다.
그녀는 몇 가지 요소를 끄집어내어 마치 백만 불짜리처럼 공간을
만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 ‘게리파머’(카메라 감독) -

▶ 곧은 길 보다는 굽은 길로 간다.

가족을 떠나온 지 10년. 미국 땅에서 힘들 때 마다 그녀를 붙잡아준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마라, 미래만 생각해라’라고 늘 말씀해 주신 어머니였다.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한국음식과 드라마를 보면서 향수를 달랜다는 한유정씨. 한국의 전통
문양과 한옥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언젠가 할리우드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 것이
꿈이기도 하다. 곧은 길 보다는 일부러 굽은 길을 택해, 장애물을 하나씩 넘으며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아가는 삶이 더 즐겁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 자신이 만들고 싶어 하는 공간에 대한 욕심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용기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한유정씨는 앞으로 5년 안에 할리우드 미술 총감독(프로덕션 디자이너) TOP 10에 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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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축구계 신화를 만들다.
- ‘데뽀르띠보 꼬레아노’ 구단주 최병수


▶ 방송일시 : 2006년 12월 14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김상우
▶ 작가 : 김수현

 

남미축구를 대표하는 나라, 아르헨티나!
이곳에 ‘꼬~레아노(대~한민국)’를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축구클럽,
‘데뽀로띠보 꼬레아노(Club Deportivo Coreano)’를
응원하는 소리다.
‘데뽀르띠보 꼬레아노’는 말 그대로 한국인 클럽이라는 뜻이다.
구단주는 한국인, 최병수(42)씨.
그는 해외 프로 축구계 첫 한국인 구단주다.
최병수, 그가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가는 꼬레아노 神話-
그 열광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아르헨티나에 울려 퍼진 함성, ‘꼬~레아노’

2005년 3월 21일 창단한 한국인 클럽 ‘데뽀로띠보 꼬레아노(Club Deportivo Coreano)'는
6부 리그에서 데뷔, 수많은 클럽들과의 경기에서 전승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 5부 리그로 진출, 64개 팀이 참가한 5부 리그에서 우승까지 거머쥐어 당당히
아르헨티나 4부 리그에 진출했다. 창단 1년 반 만에 이뤄낸 눈부신 성과.
이는 백년 전통의 아르헨티나 축구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고지인 로보스 지역언론은 물론, 전국에 연일 대서특필 되며 아르헨티나 축구계 무서운 신예로 떠오른
데뽀르띠보 꼬레아노! 지난 시즌, 경기장 앞은 그들을 취재하러 몰려든 사람들로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에 혜성처럼 등장한 클럽,
데뽀르띠보 꼬레아노- 이 클럽의 중심에는 바로 한국인, 최병수가 있다.

▶ 스프츠 마케팅 전문 변호사 최병수, 축구 구단주 되다!

아르헨티나의 명문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최병수.
그는 현재 15년 경력의 베테랑 변호사다. 최병수 변호사는 현지 법과 제도에 밝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한인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스포츠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하며
여러 축구클럽들의 법률 자문을 맡아왔다. 그런 그가 지난 해 3월, ‘로보스’를 연고로 한
축구클럽을 창단했다. 로보스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 1946년 대통령에 당선 된 후안페론의 고향이기도하다.
로보스에는 큰 축구클럽이 없어 현지의 팬을 확보할 수 있고, 한인들의 상가와 묘지가
인접해있어 연고지로써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최병수 변호사가 ‘데뽀르띠보 꼬레아노’를 창단한 데는 숨겨진 뜻이 있었다.
아르헨티나에 한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지 40여년. 하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한인들은 더불어 사는 사람이 아닌, 일벌레로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최병수 변호사는
‘축구를 통해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 최병수는 아르헨티나 축구계의 유명인사이자 로보스의 자랑이다.

▶ 한국의 매운맛, 꼬레아노를 만들다!

축구클럽을 창단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문제.
최병수 변호사의 뜻을 공감한 한인중소기업체, 두 곳이 최병수의 취지를 이해하고
흔쾌히 동참해 주었다. 또한 현지의 한인들도 데뽀르띠보 꼬레아노의 창단에 팔을
걷어 부쳤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병수 구단주를 비롯한 한인 이사진들은 ‘데뽀르띠보 꼬레아노’에
한국인의 정신을 심었다.
‘한국인의 투지와 열정’, 그것은 오늘의 꼬레아노팀을 있게 했다.

▶ 꿈을 향한 도전, 1부리그를 향하여!

‘데뽀르띠보 꼬레아노’팀의 성장은 아르헨티나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백년 전통의 수많은 현지 클럽들도 하지 못했던 일을 최병수는 해낸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백지상태였던 로보스 지역 사람들은 물론, 한국인을 아르헨티나에 잠시
머물다 떠날 일벌레로 여기던 사람들까지 이제는 함께 ‘꼬~레아노’를 외친다.
그가 그리던 1차 목표는 달성한 셈!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아쉽게도 이번 시즌 전기리그를 4부 리그 하위권으로 마무리 한 데뽀르띠보 꼬레아노.
올해 말 로보스시에 데뽀로띠보 꼬레아노의 전용구장이 완공되면 잠시 주춤했던 연승
행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전용구장은 약 1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어 2부 리그의 허가도 가능한 규모.
이곳에서 최종 목표인 1부 리그 진출을 위한 필살의 노력이 시작될 것이다.
나아가 유소년 축구 프로그램까지 갖춘 세계적인 명문구단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가진 최병수! 클럽 데뽀르띠보 꼬레아노가 만들어가는 神話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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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VIP들의 입맛을 사로잡다.
- 두바이 특급호텔 수석주방장 권영민


▶ 방송일시 : 2006년 12월 7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이상운
▶ 작가 : 허수빈

◎ 기획의도

세계적인 관광·비즈니스 도시로 주목받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두바이에 들어선 260여개에 달하는 호텔 가운데 ‘페어몬트 호텔’은
세계 VIP들이 찾는 초특급 호화 호텔로 꼽힌다.
세계 최고의 음식과 서비스를 자랑하는 ‘페어몬트 호텔’ 수석 주방장은,
바로 서른여섯의 한국인 권영민씨.
2003년 미국 조리사 협회가 주관한 “젊은 조리사 TOP10” 선정,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조리차장,
2005년 중국 톈진 쉐라톤 그랜드 호텔 총주방장
등을 거쳐,
8개월 전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 수석 주방장으로 스카웃된
권영민이 이끄는 조리사들은 모두 191명.
세계 각국에서 모인 조리사들을 호령하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쉐프 권영민의 성공기와
그가 쓰는 요리의 천일야화가 펼쳐진다.

▶ 미국 “젊은 조리사 TOP10" 선정

쉐프 ‘에드워드 권’이라 불리는 권영민씨의 고교시설 꿈은 가톨릭 신부였다.
집안의 반대로 신부의 꿈을 접고 조리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바로 재수시절. 국내 대학의
조리학과를 거쳐 특급호텔에 취업했던 그가 서양요리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2000년 봄이었다. 언어장벽과 인종차별, 그리고 국내와는 다른 생소한 식재료와
낯선 주방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길 3년만에 2003년 <미국 조리사 협회>가
주관한 “젊은 조리사 TOP 10”에 선정된 쉐프 권영민. 1년에 6차례, 손님으로
위장한 미식가 평가단이 비밀리에 요리의 맛과 질을 평가,
1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최고의 젊은 요리사 TOP 10에 꼽힌 권영민은 타이거 우즈, 토니 블레어, 샤라포바 등
유명인사들 뿐 아니라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요리에 대한 극찬을 받기도 했다.

▶ 모자를 벗다 - 편안하고, 친숙한 수석 주방장, 권영민

권영민씨는 조리사의 상징이자 높은 직위를 말해주는 ‘하얀 모자‘를 미련 없이
벗었다.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191명의 조리사들에게 언제나
편안하고 친숙하게 다가서기 위해서다. 11개국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조리사들과
매일같이 소통하며 남다른 애정으로 대하는 따뜻한 쉐프 권영민.
그런 그도 단
둘뿐인 한국인 후배 조리사들을 대할 때만큼은 유난히 엄격하다. 한국인이기에 더욱
따갑게 채찍질하지만 뒤에서는 격려를 아끼지 않고 어깨를 두들겨 주는 속 깊은 쉐프가
바로 권영민이다. 동료, 후배 조리사들에게 뿐 아니라 호텔을 찾는 모든 고객에게 높은
모자를 쓴 채 우쭐하기 보다 친숙함을 택한 당당한 그의 요리 철학은 무엇일까.

▶ 왕의 남자, 권영민 - 0.01%의 맛을 잡아라!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의 18개 주방을 오가며
조리사들을 호령하는 쉐프 권영민.
그러나 수석 주방장인 권영민씨가 직접 손을 거둬
붙이고 본격적인 요리를 하는 날은 극히 드물다.
식재료 선택부터 요리 완성까지 그가 나서서 하는 요리는 오직 아랍 에미리트 왕족의
식사 뿐.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방인이기
때문에 따라잡을 수 없는 맛의 차이 0.01%를
따라잡기 위해 직접 두바이 재래시장을 발로
뛰기도 하는 권영민은 결코 자신이 서있는
최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다. 매일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고, 창조하는 데에 게을리 하지 않는 그의 손에서 오늘도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요리가 태어난다.

▶ 한국의 맛을 알려라!

세계 유수의 특급호텔 총주방장을 지낸 그에게도 아직은 남겨진 과제가 있다. 바로
한국의 맛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최근 그는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 ‘델리 샵’
메뉴에 불고기 샌드위치를 선보이며 한국의 맛을 알리기 위한 계획을 차분히
실현하고 있다.
“델리 샵‘에서 판매되는 불고기 샌드위치는 현지에서도 선풍적인 인기!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한국요리 개발에도 소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요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엿보인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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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나른다, 13人의 전사들
-영국 국제 택배사 ACI


▶ 방송일시 : 2006년 11월 30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김정수
▶ 작가 : 양희정

◎ 기획의도

세계 물류시장에서 빠르고 정확한 배송으로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 국제택배회사ACI. 그중에서도 ACI런던 지점은 세계 34개의 지점을 건립하는데 교두보가 되었던 곳으로 세계 물류업계의 빅4라 불리는 DHL, 페덱스, TNT, UPS보다 빠르고 정확한 배송으로 현지 무역업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영국-중국 간 24시간 물류수송을 현실화 시키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승리로 바꿔가고 있는 전사들, 김광근 지점장과 12인의 한국인들을 만나본다!

▶ 승부는, 시간이다!

ACI의 업무는 다른 업체들보다 한 두 시간 빠른 아침 7시에 시작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찾듯 세계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한 발 빨라야 한다는 것이 ACI의 생각이다. 세계 최고의 국제택배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ACI가 내세운 두 번째 전략은 넥스트데이(next day)서비스. 가격경쟁 만으로는 거대 물류수송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판단한 ACI가 내린 결론은 물류수송시간 단축. 빅4라 일컬어지는 대형 업체들조차 영국-중국 간 배송에 3일의 시간이 걸리는데 비해 ACI는 그 시간을 단 하루, 즉 고객이 짐을 보낸 다음날 목적지에 도착하는 넥스트데이서비스로 무려 이틀을 단축시켰다. 중국 광주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 지점을 설립해 핸드캐리로 물건을 옮기는 방법으로 초고속 배송이 가능해 진 것이다.

▶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라!

물건이 도착할 시간을 고객에게 미리 알려주는 ‘전화 알림 서비스’또한 고객중심의
생각에서 비롯된 차별화 된 전략이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막히는 구간은
걸어서라도 반드시 시간 내에 배송한다. 가끔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특별히 물건과
함께 꽃을 배달해 주기도 하고, 급한 상황에 처한 고객을 위해서 주문 받은 물건을
당일에 바로 배송해 주는 세임데이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또한 영국의 기업과 거래계약을 맺은 한국 기업들에게 그동안의 거래를 통해 알게 된
정보와 직접 수집한 여러 자료를 분석한 신용도제공서비스를 실시하며 한국기업의
진출을 돕는다. 이렇게 ACI의 고객편의를 위한 노력은 끝이 없다!

▶ 김광근 지점장과 12명의 전사들!

ACI를 성공으로 이끈 요인 중에 그들의 끈끈한 동료애도 빼놓을 수 없다.
13명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물론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중창연습을
하기도 하고, 적어도 한달에 두 번은 회식자리를 마련해 바쁜 업무에 치여 서로에게
쌓였던 앙금을 풀어낸다. 또,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직원을 풀타임으로 채용해 근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워크퍼밋 시스템을 적용했다. 워크퍼밋은 정직원으로 근무한 지
5년이 지난 사람에게 영국정부에서 준시민의 자격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 직원들의
근무의욕을 향상시킨 배려이다. 이 모두가 직원의 행복이 곧 고객의 행복이라는
김광근 지점장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ACI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세계 물류수송업계에 뛰어 든 지 불과 7년 만에, 현재 한국의 대기업과 영국 내 동종
업계의 수많은 고객을 확보하게 된 ACI 런던지점!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매일 새로운 기적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13인의 전사들!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그들을 만나본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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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 장으로 뉴욕의 신화가 된 사나이-
사진작가 김아타

 

▶ 방송일시 : 2006년 11월 23일 (목)  밤 11시 40분,  KBS 1TV

▶ CP : 김영묵

▶ PD : 황범하
▶ 작가 : 소현진

 

나는 존재를 탐구해 가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다.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면 그를 만나고

크고 넓은 세계가 있다면 그를 찾아가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다.

직접 가서 손으로 만져보고 혀로는 핥아보고 귀로는 들어보고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한 사람의 여행자이다.

나는 김아타다. - attakim
 


▶기획의도

지난 10월 한국인 사진작가 한명이 아직 촬영하지도 않은 사진 2장을 무려 1억에 팔렸다는 기사가 신문을 장식했다. 그 주인공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사진작가. 김아타(49)다. 2002년 영국사진전문 출판사 <파이돈>이 선정한 세계 100대 사진가, 2006년 뉴욕의 국제사진센터 ICP에서 개인전을 연 최초의 한국인, 2007년 사진계 아카데미상인 <도이체 보르세 포토 그래피>에 노미네이트
된 최초의 동양인!

그의 이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김아타’ 국내에선 이름조차 생소한 그가 어떻게 미국 그것도 세계사진예술의 메카라는 뉴욕에서 최고의 사진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김아타는 지금 <센트럴 파크>재단에 영구 전시 될 180X240 사이즈의 대형 사진작업과  UN 총회장 작업 등으로 매일매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년 중 가장 아름답다는 뉴욕의 가을 그 한 복판에서 세계 속의 한국인
- 김아타를 만나본다.    

 

▶센트럴 파크를 뷰파인더에 담다.  

“철학적 사고가 극히 참신한 작가”이며 ‘지속성과 동시성의 예술’이다.“

피사체를 다루는 아이디어가 탁월하다.‘ - 뉴욕타임즈
 

사진 2장에 12만 달러(약 1억1400만원)!! 믿기지 않는 액수이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김아타씨가 최근 미국 뉴욕 에섹스 하우스와 맺은 금액이다. 에섹스 하우스는 아타가 찍게 될 센트럴파크 사진을 영구 전시할 예정. 이는 지난 6월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에서 가진 개인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센트럴 파크 작업을 통해 아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어느 위대한 화가가 저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겠어. 자연이 위대함은 저런 것 같아. 내 카메라는 24시간 동안 채집을 한 거야. 천천히... 천천히..” 내 작업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시 같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완벽하게 다 가져와야지..

 


▶섬 소년에서 세계최고의 사진작가로, 세계를 감동시킨 ‘아타’의 사진세계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세상을 만나는데 몸과 영혼과 생명을 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 못 간다는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attakim

 

경남 거제에서 섬 소년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처음 사진기를 잡았고, 카메라를 쥐고 바라보는 세상은 어느 곳이든 환상 그 차체였다고 한다. 한 때 사진집을 폐간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최근 뉴욕에 있는 세계적 사진출판사 “아파추어(Aperture)"사에서 1995년부터 2002년 초까지 대표작만 모은 사진 시리즈로 <뮤지엄 프로젝트>를 출간했다.

<뮤지엄 프로젝트> 외에도 작품을 만들 땐 기본 적인 세계관은 동양철학이었고, 그렇게 아타는 작품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걸 말하고 있다.

 

▶뉴욕시리즈.. 아타의 사진 세상 속으로

'ON-AIR 작업에서 UN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상징이고 클라이막스다.

고향과 같은 곳 소호가 새로운 방의 문화를 시작하는 시간

우리는 카메라를 내린다.' - 2006. 11. 6 소호 작업일지 중에

 

뉴욕시리즈를 통해 아타의 사진 무대는 더욱 화려해졌다. 메트로폴리탄, 월스트리트, 브로드웨이, 소호, UN까지.. 동양인인 그에게 뉴욕은 어떻게 자신의 무대가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작품과 사상을 알아준 것이 뉴욕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곳도 뉴욕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작업이라면 어렵지 않게 촬영 허가증을 내준다. 그렇게 다이나믹한 도시 뉴욕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타를 바라본다.  

이 거대한 세트장 뉴욕에서 아타의 카메라가 반짝인다.

 

아타가 찾아가야 할 세계는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많은 세계가 남아있기 때문에 사진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나야 할 세계가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김아타.

앞으로 <뉴욕시리즈>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클라이막스. 마지막 UN총회 작업이 남아있다. 장장 8시간이라는 시간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베를린에서 아타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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