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무자년(戊子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벌써 4일째이지요.

게을러서인지 머릿속 생각이 많아서인지 쉽게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해마다 12월 31일 자정과 1월 1일 첫시각은 밖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맞이합니다.
괜히 마음이 들떠서일까요? 집에서 TV속의 종소리만 듣기엔 너무 아쉬워서 무작정 밖으로 나갑니다.

종로 보신각앞에는 인파가 너무 많고 요란한 폭죽이 흡사 시가전을 방불케 해 몇 해 전부터는 가지 않습니다.
그대신 교외로 나가 임진각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습니다.

2007년 12월 31일 마지막 밤을 다하고, 2008년 무자년 새해의 첫 시각의 시작은 종소리로 시작합니다.
춥고 어둡고 밤이 깊은 시각 새로운 시작이라니 얼핏 생각하면 모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올해도 여지없이 새해 새날 새 시각은 한 밤중에 시작되었습니다.
일출이 있어야 참된 시작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게는 정확하게 2008년 1월 1일 0시로 부터 시작했습니다.
일출은 몇 시간 더 있어야 겠지만 새해와 새날의 바뀜은 한밤중에 이루어지는 것을 오늘 새삼 알겠습니다.

따뜻한 날씨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역시 새해 맞이는 칼바람 속에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어두운 시각을 지나 새해와 새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추운 겨울을 지나 새해가 시작되는 것도 지난해의 낡은 찌꺼기가 동장군을 이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지요.

지난 해 다 버리지 못한 낡은 찌꺼기를 한밤 중에 버리고, 시급히 새 것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도 새해 맞이는 그래서 뜻깊습니다.

제가 하는 일 가운데서도 낡은 찌꺼기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초라한데 화려한 척 하는 것들도 많고, 취업시장과 직업생활은 어려운데 무조건 긍정하라 말하기도 합니다.
저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어딘가에 가서 누군가를 향해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저는 낙관을 이야기 합니다. 희망에 대해 나즈막이 또는 강렬하게 말합니다. 그래도 어두운 그림자를 각자 걷어내라고 당부하는 것이 내내 미안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시스템적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가령, 발표되는 실업률보다 우리가 체감하는 실업률은 몇 갑절은 될 것입니다. 일할 의사가 있고 능력이 있어도 전부 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도 경쟁사회니 각자 경쟁력을 갖추라고 열변을 토하는 이 연사는 사실은 초라한 것입니다.

새해 새 아침에 저는 작은 바람을 가집니다.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그 지혜와 힘을 모아 좀 부족한 사람도 일깨워 주고 함께 하는 꿈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나만 잘 산다고 잘 되는 세상이 아닙니다. 모든 관계가 다 얽혀있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슬기롭게 개척해 나갈수록 옆의 이웃, 동료, 벗들은 힘겨워 하지 않는 지 조금씩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제가 주장하는 커리어경영의 영역들이 균형있게 채워져 나갈 것입니다.
행복은 모든 것을 무조건 긍정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현실에서도 구체적으로 그것을 이길 지혜와 힘으로 당당히 맞설 용기로 가득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008년 무자년 한 해는 자신의 인생에서 올해가 차지는 위치를 잘 파악하고, 목표를 높이 세우고,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매일 매시각 행할 때 아름답게 수놓아 질 것입니다.

저는 제가 가진 일을 하면서 한 단계 높고, 구체적인 방도를 찾아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할 것입니다. ( 서형준 2008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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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의 일입니다. 어버이 날이었습니다.
전날 팔고도 넘쳐나는 카네이션 꽃송이들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이동 중에 문자를 받았습니다.
"코치님 저 합격했어요. 이제 신체검사만 남았어요."
휴대폰의 주소록에 있던 낯익은 이름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난 3월에 면접교육과 코칭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의 모대학 4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교육과 면접코칭 때도 무척 열성적으로 임했던 기억이 선합니다.
국내 최고기업에 도전하기 위해서 그룹스터디도 했었는데 저와의 일정 때문에 매주 벌금 1만원씩을 부담해가며 참석했었던 학생입니다.
수많은 지원자들 가운데 서류전형을 거쳐, 적성검사도 합격하고, 여러 종류의 면접을 거쳐서 드디어 합격통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중이어서 소리는 칠 수 없었지만 제가 더 기뻤습니다. 작은 힘이나마 교육이나 코칭을 통해서 보탬이 되고 그 분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결실에 제게 인사라도 해오는 학생이라면 제가 더 고맙고 기쁠 따름입니다.

면접교육과 코칭에서 면접을 뛰어 넘어 평생 커리어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몇 마디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당면한 면접에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나 봅니다.
이제 합격해서 최고라 불리는 기업에서 당당하게 커리어를 경영해 나가라는 저의 축하 메시지에 "코치님이 면접 외에 해 주신 말씀 기억하며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라고 또 답장을 보내옵니다.
더 기뻤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당장 취업이 급한 분들에게 면접교육과 면접코칭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이상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커리어코치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그 날은 참 행복했습니다.


저의 커리어코칭이 어느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의 힘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그런 기쁨을 맛봅니다. 일을 하면서 이런 기쁨을 종종 느끼는 것은 행복한 장면입니다.
내일도 아침 일찍 연수원으로 나는 달려갈 겁니다.
그곳에 취업을 앞두고 커리어디자인과 커리어경영, 생애 경력설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픈 교육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c)서형준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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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종 기타업종
직      무 기타업무
경      력 3년미만
질문제목 평소의 경력관리와 헤드헌팅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질문내용 안녕하세요.
저는 아직 회사를 이직할 계획은 없지만 차후 더 좋은 경력발전을 위해서 준비중인 2년차 직장인입니다.

헤드헌팅의 구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이력서를 등록하고 헤드헌터가 업체와 연결을 해주는 방식인지요? 아니면 단순히 이력서를 등록하면 업체의 연락으로 이력서 검색으로 인재를 선출하는 방식인지 궁금합니다.

소정의 컨설팅 비용이 들더라도 꾸준히 이력서 업그레이드함과 동시에 컨설턴트와의 대인접촉을 통한 이해로서 경력관리 및 이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상, 회사를 다니면서 여러회사의 구직현황과 설령 원하는 회사가 있더라도 그 회사의 구직시기를 점검하기엔 여러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무엇 보다도 불확실한 잦은 면접과 개인 신상이 서류전형이 너무 노출이 되는것이 꺼려지는것이 사실입니다.

헤드헌팅의 구조가 이런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답변제목 평소경력관리와 헤드헌팅의 구조에 관하여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귀하는 평소에 경력관리를 하시면서 헤드헌팅사를 통하여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이직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싶은 분으로 이해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력서를 등록해 놓으시면 여러 회사에서 자신의 정보를 열람하게 되니까 개인신상 일부공개 등으로 인한 불편한 점을 우려하고 계십니다.

취업.이직.경력관리에 관한 서비스 회사들이 워낙 많다 보니 정확한 서비스를 이해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크게 취업관련 서비스는 (1)온라인 채용(구인.구직)사이트, (2)헤드헌팅 회사(서치펌), (3)인재파견회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헤드헌팅의 구조부터 말씀드립니다.
헤드헌팅이란 원래는 중역.고급인재서치(Executive Search)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채용회사에서 서치펌(헤드헌팅 회사)에 특정한 스펙의 인재를 추천해 줄 것을 의뢰하고, 서치펌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인재를 찾아 서류검토 및 사전인터뷰(Pre interview)를 통해 후보자를 선정하여 채용회사에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서치펌은 일반적으로 회원들의 이력서를 Database로 구축하고 온라인으로 이력서도 접수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재 DB 및 이력서에 대한 외부검색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서치펌들의 채용정보는 자사의 사이트에 올리던 외부에 올리던 채용기업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으며, 당연히 채용기업에서는 인재들의 구체적인 신상을 알 수 없습니다.

온라인 채용사이트는 일반적으로 잠재적인 채용기업들에게 유료로 인재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온라인 구인구직활동을 하는 곳입니다.

인재파견회사는 결정적으로는 인재파견회사 소속으로 채용기업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혼동하기 쉬운 점은 최근 추세가 온라인채용사이트, 인재파견회사들도 헤드헌팅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귀하께서 문의해 주신 컨설턴트와의 대인상담을 통한 꾸준한 경력관리 및 이직서비스는 미국등 외국에서 일반화된 서비스인데 국내에서는 아직 정형화된 서비스가 없습니다. 즉, 국내의 서치펌들은 이력서 등록회원 모두는 아니어도 필요에 따라 개인회원의 의사에 따라 무료로 위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어떤 서치펌이던 이직에 도움을 드리고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개인으로부터 서비스 비용을 부담시키는 회사는 없습니다. 헤드헌팅의 수수료는 채용기업이 전액 부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헤드헌팅과는 별개로 평상시 또는 필요시 진로선택, 취업, 이직, 커리어업그레이드, 경력전환, 연봉, 면접 등 커리어관리와 평소의 커리어경영을 잘 해나기 위해서 정기기간 또는 횟수 및 시간을 정하여 커리어코치를 고용하여 커리어코칭과 멘토링을 받는 서비스는 제공하고 있습니다.

참고되셨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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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종 서비스
직      무 기획,(경영,전략,사업)
경      력 신입
질문제목 커리어코치(Career Coach)가 되고 싶은 학생입니다.
질문내용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대학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지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 성격상 공무원은 아닌 것 같아서 부모님과는 상의없이 다른 직종을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우연히 신문을 보니까 커리어 코치가 요즘 유망직종이라고 하더라구요. 생각해보니 제 성격상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커리어 코치가 되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학교는 꼭 졸업해야 하는지, 어떤 요소들을 갖춰야 하는지 잘 몰라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답변제목 커리어코치(Career Coach)가 되기 위한 요건
답변내용 안녕하세요.
대학 3학년 재학중인 학생이시네요. 공무원시험 준비중 이신데 언론에서 커리어코치라는 직업이 유망직종이라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신 것 같네요. 커리어코치가 되는 방법이나 요건 등을 궁금해 하시는군요.

우선 커리어코치라는 직업에 대해 간단히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른바 ‘코칭’이라는 직업분야가 소개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현대적인 코칭은 미국에서 90년 초반에 정립되기 시작했으니 비즈니스로서의 코칭은 그 역사가 길지 않습니다.
코칭이란 상대방의 자발적인 행동을 촉진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피코치자 스스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도록 지지,지원하는 일이며, 코치는 코칭을 함으로써 피코치자(코치이; coachee(를 지지, 지원(support)하는 사람입니다.
코치는 여러 분야에 걸쳐 활약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커리어코치, 비즈니스코치, 라이프코치 등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서 커리어코치는 말 그대로 경력에 관한 고민이나 문제해결을 위해 피코치자에게 상담, 지지, 조언 등을 복합적으로 시행하는 전문가를 말합니다.
국내에서도 커리어코칭을 하거나 커리어코치라는 타이틀로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이 소수 있습니다. 커리어코치는 내면의 의미상으로 본다면, 개인의 커리어(경력)의 진단, 설계에서부터 경력관리(career management), 경력개발계획(Career Planning)등에 대해 코칭하는 직업이라고 보시면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이곳 경력상담신청은 전형적인 커리어코칭 업무의 일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따라서 시중에 커리어코치라고 표방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커리어코치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 대졸이상의 학력과 직업에 관한 전문지식, 최소한 3~4년의 직장생활이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커리어코치가 조언하거나 상담해 주는 분들(커리어코칭 내담자, 상담신청자들)이 대졸이상의 학력이 많고, 다양한 직업에 걸쳐서 코칭을 해드려야 하며, 직장내의 현실적인 궁금증도 많기 때문에 현장체험상으로도 약간의 직장생활은 필수입니다.
물론 업무 자체로 보면 반드시 대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신뢰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며, 오히려 석사이상의 공부를 통해 다양한 이론적 습득이 점점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시중에 직장생할 경험도 없이 커리어코치라고 활동하는 분들은 초기단계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연구를 많이 하셨거나 글쓰기 재주가 뛰어난 분들이 활약하고 계십니다만 직업과 커리어발전의 구체적인 고민들에 대해서 얼마나 현실성있는 답변과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주실지는 의문입니다.

하여 귀하께서 커리어코치가 되고자 한다면 단순히 유망직업이라서가 아니라 이 직업에 대한 상당히 깊은 애정과 이 직업에 대한 심도깊은 조사와 탐구를 기본적으로 하시는게 좋습니다. 숱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론과 실무경험, 실무지식을 습득, 단련하여 준비하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내에서 현실적으로는 직업상담사나 헤드헌터(search consultant)들이 커리어코치와 유사한 업무 또는 업무의 일환으로 커리어코치를 하고 있습니다. 또는 코칭이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커리어코치가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직업세계에 대한 상당한 경험과 실무지식, 상담이론, 코칭기법 등에 대한 이론적 습득과 어느 정도의 아량있는 인격이 겸비되어야 하며, 이를 직업으로 갖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적 감각 또한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향후에는 점점 세분화되어 커리어코치도 체계적인 방법론과 도구(tool)를 활용하여 과학적 기법들이 적용될 것입니다. 특정직종에 대한 커리어코치가, 특정산업에 대한 커리어코치가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언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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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경영과 블로그

바야흐로 블로그 전성시대

 

1994 web의 탄생과 더불어 인터넷은 그야말로 전지구를 대상으로 거미줄을 뻗쳤다. 더욱이 인터넷 환경의 발달이 빨랐던 우리나라는 인터넷으로 인해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벋어나 요란한 인터넷 공화국이 되었다. 인터넷 사용자 수와 정보의 폭발적 증가는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와 만나 1인미디어 시대를 활짝 열었다. 1인미디어의 대표적인 예가 블로그다. 블로그는 이전까지의 개인홈페이지를 빠른 시간내에 대체하여 성장해 왔다. 블로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란 다소 특이한 시작이었다. 2004년을 전후해서 미니홈피 하나 정도 없으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웬지 미니홈피는 10, 20대의 취향에 잘 맞고 그 윗 세대에는 다소 친숙하지 못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1997년경 weblog 라는 단어로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블로그는 오늘에 와서 수많은 사용자와 만나고 기술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이후 개인 및 기업의 공식블로그가 꾸준히 늘어나 이미 개인은 물론, 기업과 고객간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블로그를 주목하는 이유

 

나는 마케팅 전문가는 아니어서 블로그를 이용한 마케팅에 관해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전에는 저자와 독자가 구분되어 있었다. 소수의 저자와 다수의 독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전문적인 컨텐츠 생산자보다 사용자(user)의 생생한 컨텐츠가 더 인기를 끌기도 한다. 블로그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력한 1인 미디어이다.

2005년과 올해에 블로그가 많이 생겨났다. 좋은 블로그, 특색있는 블로그도 많고 아직은 남의 글을 퍼담기에 바쁜 블로거도 많다. 기업들도 블로그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며 조심스러운 시도와 접근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블로그는 대세가 될 것이다.

그것이 가지는 개인성, 역동성, 비즈니스를 지향하되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은 담백한 포스트들. 이런 점들이 블로그를 일반 웹사이트와 구별하며 역동적인 블로그의 급성장을 만들었다.

 

커리어경영이 블로그를 만날

 

필자는 이 섹션을 통해서 줄곧 커리어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각이한 글로 표현해 왔다. 그런데 그것은 세상에 떠도는 것처럼 가벼운 스킬(skill)이나 팁(tip)만으로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을 시장과 만나게 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 30,40대는 평균수명상으로 볼 때 70세까지는 일해야 한다. 그런데 회사에선는 40대 초반이면 흔들어댄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이런 각도에서 볼 때 블로그는 개인의 커리어와 다년간의 일을 통해 개인이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매체이다. 상당수의 블로그는 직접 저자한 글보다 스크랩한 글들로 가득 채우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짧고 단순하더라도 자신이 생산하는 컨텐츠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 컨텐츠는 베스트셀러일 필요도 없고, 누가 뭐라하지도 않는다. 매일매일 돌 하나 얹어 높은 탑을 쌓는 마음으로 블로깅을 하면 자신의 전문분야 혹은 주관심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의 컨텐츠들은 주요검색엔진의 사랑을 받으면 검색율도 높아서 1인미디어이지만 세상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행복한 블로거를 꿈꾸며

 

나는 올해(2006년)부터인가 블로그를 시험삼아 포털사이트의 서비스형 블로그를 택해 시험운영중이다. 과거에 쓴 글도 올리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답도 해주었다. 사생활의 일부도 공개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재밌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 지방의 어떤 열혈 대학생은 취업동아리를 운영중인데 나를 만나기 위해 머나먼 천리길을 마다 않고 올라왔다. 야외벤치에서의 재미있는 담화는 블로그가 아니었더라면 잡기 어려운 기회였다.

개인미디어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는 블로그의 미래 어떤 모습일까? (2006-10-16 작성)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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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시계가 아날로그시계를 압도하지 못하는 이유

 

198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그 당시 전자시계가 유행하면서 전자시계가 아날로그시계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날로그시계는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시각을 숫자로 보여주는 전자시계에 비해 사람들이 아날로그시계를 더 좋아하는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시침과 분침이 있는 아날로그시계는 현재 시각만을 숫자로 보여주는 전자시계와는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시간단위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시간이상의 정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분침이 20분을 가리키고 있다면 20분이 지났으니까 일을 서둘러야 한다든지 아니면 몇 시까지는 40분이 남아 있으니 좀 느긋하게 해도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것은 아주 단편적인 비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시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고 예고하는 기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단순한 정보를 넘어 시간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래서 결국 아날로그시계는 살아 남았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다.

 

커리어경영의 시간성

 

경력(Career; 커리어)은 한 사람의 일에 관한 역사적 흐름이기 때문에 과거.현재를 아울러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력을 출발하기에 앞서 현명한 사람들은 자기진단을 하고, 목표를 뚜렷이 설정한다. 경력경로(Career Path)를 세워 꾸준히 노력을 전개한다.

 

경력도 시계에 비유할 수 있다. 전체 인생에서 평균수명인 80세까지를 시계의 한 바퀴로 놓고 보기로 하자. 나이가 40세인 사람은 시계로 보면 30분에 와 있는 셈이다. 이것은 그 사람의 인생시계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나이에 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졌고, 되고 싶은 것이 되었다면 30분의 시각은 아직 30분이나 남은 여유 있는 시각이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30(=40)밖에 남지 않았다. 빨리 궤도를 바로잡고 속도를 가그쳐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럴 경우 특히, 전자시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40이라는 나이는 퇴출을 예고받는 시점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아날로그시계의 시판을 바라보면 좀 다르다. 60분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아있다. 그 인생의 시각까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잘 되고 있는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초과달성한 성과에 자만하지 않으며, 부족한 결실에 좌절하지 않게 된다.

 

당신의 Career 시계는 입니까?

 

시침과 분침은 아날로그 기판 위를 서서히 돌아간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지만 각자 개인의 커리어 시계는 각자가 돌리는 것이다. 자연의 시계가 가르키는 그 시각에 나의 커리어시계는 몇 분을 가리키고 있는가. 각자의 커리어시계를 디자인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에 명확한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

 

커리어의 목표에 관한 사항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갖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큰 목표는 몇 가지 되지 않겠지만, 작은 목표는 수십 가지, 수백 가지에 이르러도 상관없다. 단지, 자신이 명확히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목표달성을 위한 요구사항

이미 이전시기에 갖추어 놓은 것들의 리스트 부모로부터 받은 것, 사회적 환경을 모두 포함-와 자신이 만들어야 할 요건들로 나뉜다. 이것 또한 세부적인 항목들로 쪼개어 보면 수십, 수백가지에 달할 수도 있다.

 

경력평가에 관한 사항

나는 목표달성을 위해서 요구사항을 잘 실천했는지?

잘 한 것은 무엇이고, 못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

갖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되었는지?

되고 싶은 것이 되었는지?

 

새로운 경력경로에 관한 사항


나는 이대로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되는가?

지금 당장 내가 시작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만들어야 할 요건들 가운데 순위를 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답하고 점검하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각자의 경력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는 각종 디지털 기기와 장비, 소프트웨어들이 필요하지만, 정작 자신만의 커리어를 제대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시계의 통찰력이 필요한 때이다. 그것이야말로 내면의 자기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난관은 있으되 마지막에 패배를 모르는 필승불패의 커리어를 경영해 나갈 수 있다. (2006-10-11 작성)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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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난 2005년 6월 12일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애플과 픽사(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인 스티브 잡스의 연설이 감동과 화제를 던지고 있다. 작년에 반짝 관심이 오르다가 묻혀버린 이야기 였는데 최근 동영상이 한 네티즌에 의해 공개되면서 새로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지난 2006년 7월 포츈에 "잭웰치의 경영지침서를 찢어버려라"란 글이 던진 파문과 환경 때문일 것이다. 스티브잡스는 실제로 '포스트 잭웰치'로 급부상하고 있는 경영자다.

지난 해 나도 감명깊게 읽고 가까운 이들에게 추천했던 스티브잡스의 연설을 다시 원문을 번역한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원문에 충실하기 위해 지나친 의역은 피했다.

직업세계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그가 처한 곤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를 여는 것이 흥미롭다. 그뿐만 아니라 동서양과 고금의 많은 직업과 일에서 전환을 이룬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스티브잡스에 있어서는 일을 사랑하는 열정과 자기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바닥에서 정상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처럼 보였다. 그는 기업경영에서도 성공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관심있는 대목은 그가 자신의 커리어경영에서 빛나는 성취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기업도 사람이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면 기업경영과 커리어경영도 다른 맥락이 아닐 터이다.

오늘날 인생에서 직업과 일이 차지하는 인생에서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가볍고 얄팍한 요령보다는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삶의 무게가 실린 중대한 결단을 나는 권한다. 거친 직업세계, 경제세계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헤쳐 갈 것인가. 여기 그 좋은 예시를 함께 보자. 가벼운 마음으로. 열린 심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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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Ceo, Apple and Pixar Animation Studio (2005년 6월 12일, Stanford University)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으세요"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오늘 이 자리가 대학졸업식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이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딱 세가지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역자주, 또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리드 칼리지(Reed College)에 입학한 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정말 그만두기 전에 18개월 정도는 청강생으로 머물렀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자퇴했을까요?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의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서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들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어떻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그들은 "물론이죠."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양부모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퍼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들이었던 부모님들이 힘들게 모아두었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 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양부모님이 평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 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흥미있는 강의만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숙사에 머물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 방의 마룻바닥에서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 하는 콜라 빈 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Hare Krishna temple)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한 가지를 예를 들겠습니다.

그 당시 리드 칼리지(Reed College)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 먹고 서체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Serif)와 산세리프(san serif)체들,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공간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멋지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저는 매료되었습니다.

이런 어떠한 것도 내 인생에서 실질적으로 적용될 한 가닥 희망도 없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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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Macintosh) 컴퓨터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디자인해 모든 것을 맥(Mac)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다양한 서체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기능은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윈도우즈도 맥을 모방했기 때문에 아마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서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시절에는 그 점들을 앞을 향해서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뒤돌아보니 아주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앞을 향해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과거를 뒤돌아보며 도출할 수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저의 두번 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와 저는 20세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APPLE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만에 애플은 차고의 2명에서 4천명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 나이 30이 되기 1년전에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고,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당신이 세운 회사에서 당신이 어떻게 해고될 수 있냐구요? 글쎄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고용했고, 처음 1년 정도는 잘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젼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30살에 쫒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입니다. 제 성인이된 제 인생의 전체를 쏟아부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파괴되었습니다.

전 정말 몇 개월 동안 무엇을 해야할 지 몰랐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통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 밥 노이스(Bob Noyce, 인텔의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저는 완전한 공공연한 실패작이었고 차라리 실리콘밸리에서 도망치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제게 새벽이 동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의 사건들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전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게 있어 최상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런것들이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의 하나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라는 회사와 또 다른 회사인 Pixar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굉장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Toy Story)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일련의 변화로 애플은 NeXT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왔으며, NeXT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핵심에 있습니다. 또한 로렌스와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만약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 중 어떤 한 가지라도 겪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 봅니다.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뒤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제가 계속 나아가도록 지켜주는 유일한 것은 제가 한 일들을 사랑했다는 점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의 일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당신 스스로가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세요.

저의 세번재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인용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33년이 지나서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하기 원하는가?' 아니오란 답이 계속 나온다면 뭔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 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모든 것들은 죽음에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이 없기에 당신의 심장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는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저에게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치워야 한다는 말이었고, 임종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 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라는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진단을 받은 채로 하루종일 보냈습니다.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체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 주기를,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가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 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운'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그것은 정말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The Whole Earth Catalog)'란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파크(Menlo Park)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 넣은 책이었습니다.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35년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 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 쯤엔 최종판을 내 놓았습니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 였습니다. 최종판의 뒷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Stay hungry stay foolish)". 그것이 그들이 서명한 마지막 고별 메시지였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Stay hungry. Stay foolish). 그리고 나는 내 자신에게 늘 그렇게 소원했습니다. 자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그렇게 가길 바랍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Stay hungry. Stay foolish)."
대단히 감사합니다.

*원문 :
http://news-service.stanford.edu/news/2005/june15/jobs-061505.html

(2006-09-08 16:37 작성)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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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의 신선한 충격

지난 2006년 6월 어느 날이었다. 2005년 출범한 국내 신생 검색엔진 업체 ‘첫눈’을 놓고 국내 검색포털 1위업체인 NHN과 세계 1위 검색엔진인 구글이 물밑에서 인수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성격상 과점시장인 검색엔진 시장에서 새로운 검색엔진을 들고 진입을 노린 첫눈의 시도가 관심을 끌었던 터였다. IT업계에서 많이 멀어져 검색시장의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안목이 부족한 터라 ‘첫눈’의 시도와 기술은 새로운 흥미거리였다. 그 뉴스는 결국 첫눈이 NHN에 인수되었다는 보도로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내가 관심가지는 것은 검색시장과 첫눈의 미래, NHN의 일본검색시장 진출이라는 비즈니스적 관점만은 아니다. 첫눈의 새로운 시도가 커리어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많은 경력자들과 직업전문가인 나에게 무릎을 치게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운 검색시장에서 ‘첫눈’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데, 하물며 다른 비즈니스와 커리어경영에선 왜 못한단 말인가? 몇 년 전 구글의 태동에서 한 번 놀라고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보다.

구글 검색의 바다를 가르는 물줄기

1994년 가을 모질라, 트럼펫 윈속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웹브라우저가 처음 선보였다. 이 혁명적 변화는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사용자를 폭증시켰다. 인터넷의 대중화시대 첫 시기 인기사이트들은 당연히 검색사이트였다. 야후, 라이코스 등이 1994년을 풍미했고, 뒤이어 알타비스타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당시 알타비스타는 야후가 검색하지 못하는 수많은 정보를 찾아주었다. 이것도 모자라 1997년 스탠퍼드의 두 대학원생은 전자도서관 프로젝트를 연구하던 중 새로운 검색엔진 구글을 태동시켰다. 검색엔진이 극도로 상업화, 포털화 되면서 지저분한 첫 화면에 실증난 사용자들은 구글의 심플함에 매료됐다. 또한, 예상치 못한 뛰어난 검색결과에 랭크방식은 더 새로운 매력을 소박하게 뽐냈다. 1999년 서비스를 본격 시작한 구글은 오늘까지 그 정확한 숫자를 모를만큼 거침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몇 년 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던, 야후의 아성이 흔들리고, 마이크로소트까지 위협한다는 구글은 커리어관리와 경영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커리어경영에 있어서도 블루오션(blue ocean), 니치(niche), 틈새는 어느 업종, 어느 직종에나 가증하다는 것이다.

커리어경영의 블루오션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

최근 년간 블루오션 전략이 경영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붐을 일으켰다. 커리어블루오션이란 말을 쓰는 직업전문가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커리어경영이나 커리어관리분야에 있어서 블루오션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왜 일까? 수많은 커리어경영의 블루오션 사례가 있지만 알려진 것은 CEO가 되어 성공한 기업을 만들었거나, 막대한 재부를 거머쥔 경우만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리어 세계에는 다 일등을 할 필요는 없다. 영원한 일등도 없다. 자신이 만족하고 자신이 즐겁게 일할 수 있으며, 적당한 경제적 대가를 받을 수 있으면 된다. 치열한 경쟁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남고, 최소한의 일가를 이룰 수 있다면 커리어의 블루오션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만의 커리어 블루오션

커리어의 새로운 바다를 찾는다 해서 무작정 항해도중 무인도를 연상해서는 곤란하다. 한 개인의 커리어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이 찾을 수 있는 커리어의 블루오션이나 니치는 그 사람이 가장 잘 찾을 수 있다. 직업전문가가 찾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유망직종, 뜨는 직업 이런 종류들은 학원이나 교재판매상에게 유익할 뿐 정작 커리어 블루오션과는 거리가 멀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면 이미 레드오션이나 다름없다.

커리어의 블루오션은 극히 시대친화적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고, 시대의 고난을 넘어 시대의 미래를 보려는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커리어 블루오션 찾는 비결

학문적, 경영학적 연구를 통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경험을 통해 커리어의 블루오션을 찾는 비결은 추출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수직적으로는 업종, 수평적으로는 직무, 시간적으로는 미래, 기술적으로는 신기술, 전문적인 서비스회사(Professional Service Firm)와 관련한 곳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

  1. 종사중인 산업을 수직적으로 관찰한다.
  2. 전문 직무를 수평적으로 관찰한다.
  3. 해당 산업과 직무를 수요자 입장에서 보아 수요가 증가하는 곳을 찾아본다.
  4. 전문분야(산업 또는 직무)와 신기술이 융합한 분야를 살펴본다.
  5. 지식산업시대 전문서비스업과의 연계고리를 찾는다.
  6. 전문적인 분야와 하고 싶은 분야와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7. 시대변화에 민감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분야를 찾는다.

커리어의 새로운 길이나 블루오션은 사실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자도서관 프로젝트에서 구글이 탄생하듯이, 지식검색과는 또 다른 차원의 중복검색이 첫눈을 잉태시켰듯이 현재상태의 모자람과 답답함, 수요가 있을 법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커리어 블루오션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21세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새로운 직업과 전문분야의 춘추전국시대가 될 것이다. (2006-09-05 14:26 작성)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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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향남선수의 경력과 도전에 관하여
 -한 늦깎이 투수의 메이저리그 도전

나는 일과 직업, 경력과 그 변화에 관해서 관심이 많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나 평범함 속에서도 빛나는 경력을 가꾸어 가는 사람을 보면 절로 마음이 갑니다.

최향남이란 야구선수를 아세요?

최향남선수

저는 프로야구 열혈팬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 이름이 낯설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이 선수를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모처럼 최향남 선수라는 프로야구 선수의 커리어경영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최향남 선수가 최근 깜짝 주목받게 된 것은 그의 특이한 경력과 도전에 있습니다.
미국 클리브랜드 인디언스 산하 트리플A 팀인 버팔로 바이슨스 소속으로 올시즌 34경기에 출장해 8승5패, 평균자책점 2.37 로 놀라운 성적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로 진입하기 위한 그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6년 9월 4일 시즌을 마치고 구단측은 메이저리그 승격자 6명의 명단에서 그를 제외하였습니다. 충분히 기대해 봄직한 좋은 성적이었지만 구단측은 젊은 선수들로 승격대상자를 가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을 확인한 최향남 선수는 곧바로 7일 귀국하였습니다.

최향남 선수의 이력서

그럼 여기서 잠깐 최향남 선수의 이력을 살펴봐야 겠습니다. 그의 이력서를 약식으로 작성해 보겠습니다.

기본사항

성명 : 최향남
생년월일 : 1971년 3월 28일생(양력)
병역사항 : 육군 현역 필(1991년~ )

학력사항
1990년 2월 영흥고등학교(목포) 졸업

경력사항

1990년 ~ 1996년  프로야구단 해태타이거즈
1996년 ~ 2003년   프로야구단 LG트윈스
2004년 ~ 2005년   프로야구단 기아타이거즈
2005년11월 ~ 현재 미국 클리브랜드인디언스 트리플A 버펄로 바이슨스 재직중

상세경력사항

해태타이거즈 (1990~1996)
1990년 0승 1패 평균자책 15.19
1995년  0승 5패 평균자책 3.86
1996년  1승 0패 평균자책 4.88

LG트윈스 (1997~2003)
1997년 8승 3패 평균자책 2.99
1998년 12승 12패 평균자책 3.63
1999년  8승 5패 평균자책 4.26 
2000년  4승 7패 5세이브 평균자책 3.46 
2001년  0승 1패 평균자책 6.75 
2002년  7승 9패 평균자책 4.46
*2003년 11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트라이아웃 참가(일본)
*2004년 2월 대만 라뉴 베어스 테스트 참가

기아타이거즈 (2004~2005)
2004년  2승 1패 평균자책 3.57
2005년  2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 4.10

* 한국프로야구 활동시 통산 44승 4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3.91

버팔로파이슨스 (2006)
2006년 8승 5패 평균자책 2.37 (출장 34경기)

다시 보는 최향남 선수의 경력

위 상세한 경력사항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최향남 선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태타이거즈에 입단해서 부진하게 출발했고, 4년간은 완전히 출장하지 못한 공백상태였습니다. 이 당시 해태의 감독이었던 김응룡 감독은 최향남 투수를 '불펜의 선동렬'이라고 했습니다. 불펜에서 구질이 좋은데 마운드에 들어서면 웬일인지 구질이 떨어지고 난조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편 최향남 선수는 '새가슴'이라는 별로 예쁘지 않은 별명도 얻게 됩니다.

LG트윈스 시절에는 경력상에서 위기를 의식했을까요. 아주 열심히 던져서 1997, 98, 99년 3년동안에는 상당히 좋은 성적으로 LG트윈스의 에이스 역할도 했습니다. 그러나 2천년부터는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고, 2001년에는 어깨 부상으로 1패만을 기록했습니다. 2002년 부활하는 듯 했으나 2003년 부상여파로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한 채 바로 그해 10월 방출됐습니다. 가까스로 그의 첫직장이었던 기아타이거즈로 정착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2003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였으나 "방출 이력이 있는 선수는 안 봐도 뻔하다"고 하여 곧바로 짐을 싸야했습니다. 뒤이어 최향남 선수는 2004년 2월 대만으로 향하여 라뉴 베어스에서 다시 테스트를 받았으나 무소식 이었다가 기아에 재입단 하자마자 오라고 연락와서 못간 경험도 거치게 되었습니다.

기아에 정착한 뒤 빅리그에 대한 꿈을 접지 않은 최향남 선수는 다시 진출을 시도한 끝에 결국 2005년 2월 미국행에 성공하여 빅리그의 바로 아래 급인 마이너리그 트리플A의 버팔로 바인슨스(클리브랜드 인디언스 소속)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최향남 선수가 보여주는 커리어경영의 교훈

36세의 노장 투수. 필살기도 없는 평범할 수도 있는 투수. 통역도 에이전시도 없이 혈혈단신 미국으로 향한 기인투수, 풍운아, 남들이 말리는 짓을 강행한 투수 최향남.

우리가 그의 경력에 다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재능마저 탁월한 상태에서 마이너리그 트리플A 시리즈에서 올린 놀라운 그의 성적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쩌면 언젠가 피어날 수 밖에 없는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 커리어경영에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단지 호흡을 가다듬으며 끊임없이 도전과 재도전을 반복한 것입니다. 지금 메이저리그의 중간이상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만일 끝내 메이저리그행이 좌절된다면 일본무대도 두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럼, 최향남 선수의 커리어와 도전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자신의 인생, 커리어(경력)의 주인 자기 자신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늦은 나이와 좋지 못한 성적에 연봉 10만불에 미국 마이너리그행을 강행한 것은 누가 뭐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뛰고 싶은 무대에서 뛰고자 하는 그의 주인정신입니다. 최향남 선수의 가장 빛나는 모습입니다.

2.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상세경력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그는 처음부터 빅리거가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3.철저한 자기관리를 합니다.
  그의 아내가 언론에 말하고 있듯이 그는 평소에도 자기관리에 매우 철저하다고 합니다. 커리어경영의 본질은 바로 자기경영, 자기관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입니다.
  다른 사람의 만류나 객관적인 선수로서의 평가에만 그가 의존했다면 오늘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가 관심가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억제하지 못할 열정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5.현실에 맞는 역동적인 커리어를 경영합니다.
  그가 무조건 아무런 타산없이 도전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이저리그가 안되면 마이너리그, 미국에서 안되면 일본무대, 외국무대에서 안되면 한국무대에서라도 쉬지 않고 자신의 프로선수로서의 경력을 경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난관과 시련이 있어 느린 전진이 있을 지언정 그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6.자기자신을 믿고 미래를 낙관합니다.

  이번 시즌 마감후 메이저리그 승격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제외되자 같은 팀의 동료들조차 구단에 항의하라고 조언할 정도로 그의 마이너리그 첫해의 성적과 실력은 그의 메이저리거로서의 손색없는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미래를 낙관하여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의 낙관적인 어투는 예전 '와신상담'같은 우울한 도전에 비해 훨씬 현대적입니다. "저는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았어요.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향해 야구하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얼굴 찌푸릴 일이 없었다니까요."

나는 스포츠기자도 아니고 프로야구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가 앞으로 그가 일구어 나가는 경력경로와 성취에도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앞으로 잘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주변환경이나 여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의 주인임을 확고히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주인다운 프로선수로서의 태도와 굴함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오늘 경력관리의 기술을 익히려고 애쓰는 많은 경력직장인들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만한 경력이다.(2006-09-17 작성)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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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입니다.
온 산이 붉게 물들고, 거리는 은행 잎으로 황금길이 되었습니다.

커리어컨설팅(코리어코칭)을 한다면서 웬 계절타령인가요.
현역 헤드헌터로서 헤드헌팅업무와 커리어컨설팅 업무를 하다보면 하루에도 여러 통의 이력서와 경력소개서를 읽게 됩니다.
참 정성스럽게 쓰여진 경력소개서를 읽노라면 그 당사자의 인생이,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그러나 간혹 그 한편의 서사시 같은 이력서에서 무겁게 가슴을 누르며 눈을 멈추게 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첫 직장의 잘못된 선택.
성급하고 경솔한 이직.
경력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서 갑작스레 이직해야 할 경우…

이 밖에도 순조로워야 할 인생드라마에는 꼭 고비가 있고, 그 고비마다 빠르게 바로 잡거나 새로운 모색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인생에 있어서나, 직업상의 경력에 있어서나 첫단추와 중간단추, 마지막 단추를 잘 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잘못 꿰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모든 노력을 다해서 재빨리 단추를 다시 꿰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나 직업상의 경력은 세월의 흐름 때문에 완전히 처음으로 되돌려 끼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원리만이 우리에게 아픈 교훈을 줍니다.

잘못된 단추는 빨리 고쳐야 한다.

제법 긴 인생과 경력 전체를 한 순간에 고치기는 참 어렵습니다. 한 순간에 잘못 되었다는 깨닫기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바쁜 일상에서 잠시 일손을 멈추고 산에라도 올라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 반추를 하기에는 11월이 맞춤한 달입니다. 12월에는 돌아보고 다음 해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없이 바빠서 회고와 반성을 하는데 어렵습니다. 여유있게 되돌아보기 위해선 11월에 해야 합니다.

지난 한해 나의 직장생활과 경력발전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수정하고 변화시켜야 할 점은 없는 짚어 보아야 합니다. 나의 직장생활은 원만하고 순조로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자연스럽게 경력발전과 성숙이 이루어지겠는가. 올해 초에 세웠던 경력발전 계획은 차질없이 마무리 되고 있는가. 나의 직장은 안전한가. 지금 보이지 않지만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 내 경력상의 위험은 없겠는가.

나지막이 그러면서도 힘차게 짚으면서 가기 좋은 때가 11월입니다. 그러면 연말의 번거로움에서 자유로우면서 한 해의 마무리를 최대한 알차게 지을수 있고, 새해의 시작을 의미있게 시작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직업과 경력발전을 늘 꿈꾸는 분들이라면 11월에 지혜를 발휘할 때입니다.
11월에 보내는 커리어컨설팅의 메시지는 깊어가는 가을처럼 거두면서 겨울을 지나 새봄에 싹을 틔우는 낙엽처럼 그런 의미일 듯 합니다. (2004-11-04  01:35:07 작성)
Posted by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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