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그리고 우리가 결정하는 걸 돕기 위해 종종 전문가에게 의존합니다. 하지만, 경제학자인 노린 헐쯔가 말하기를, 전문가에게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제한적이고 심지어는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전문화할 것을 --의사와 최고경영 책임자들의 말 뿐만이 아니라 직원들의 제안도 들어--민주주의화 할것을 요구합니다.
▲ 원본 시청 : (TEDSalon London 2010, 2011. 2 ) Noreena Hertz: How to use experts - and
when not to
▲ 한국어 번역 : Jeong-Lan Kinser, 검토(Review) : Sophia Yu
▲ 한글 자막 (전문)
노린 헐쯔: 전문가를 이용하는 방법과 이용하지 않아야 하는 시기
월요일 아침 워싱턴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서 예멘에 있는 알카이다를 공습해야 할지 그 여부를 검토중입니다. 다우닝가 10번지에서는 데이빗 카메론이 경제 이중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삭감해야 하는지를 고심중입니다. 마드리드에서는 마리아 곤잘레즈가 문앞에 서서 그녀의 아이가 계속 우는 것을 보면서 울다 잠이 들도록 그냥 놔둬야 할지 안아줘야할 지 고민중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의 병원 침대 옆에서 1.5리터병에 든 물을 보면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과연 아버지께 이 물을 드시게 해야할까요? 아버지가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못 드셨고 오늘은 뭐라도 꼭 마시게 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지만 이 물을 마시게 하면 아버지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진 않을까요?
우리는 살면서 중요한 결과가 뒤따르는 중대한 결정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결정들을 내리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결정의 순간 우리는 친구들과 상의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뒤져보기도 합니다. "구글"과 "트립어드바이저"(여행 전문 웹사이트), "아마존 추천"이 대중화된 오늘날에도 위험도가 높고 중요한 결정일수록 우리는 여전히 전문가를 찾습니다. 온갖 정보가 범람하고 극도로 복잡한 오늘날, 전문가들이 우리보다 정보를 더 잘 분석할 수 있고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때론 끔찍하고, 때론 혼란스런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전문가들이 있어야만 마음을 놓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문가들은 마치 부모님들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확실히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점이 바로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이것은 앞으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전문가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의 공헌은 큽니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전문가들에게 중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문가들의 분명하고도 확신에 찬 모습, 명확한 일처리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지성과 분별력 대신 전문가들이 하는 소위 "타당성 있는 말"로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감을 회피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불편함과 불확실성을 그들이 제공하는 확실성의 환상과 바꾸어 버린 것이죠.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최근 한 성인 집단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습니다.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고 그동안 MRI로 뇌의 활동을 관찰했습니다. 상당히 믿기 힘든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전문가의 음성을 듣고 있는 동안 그들 뇌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부분이 전혀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뇌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문가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맞든지 틀리든지요.
하지만 전문가들도 실수를 범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의사들이 열번 중 네 번 정도 오진한다는 걸 아시나요? 만일 여러분이 세금정산을 스스로 처리한다면 세금담당자가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다음 예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재정 전문가들이 엄청난 실수를 해서 우리는 1930년 이래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건강과 부유함 그리고 집단적인 안전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 두뇌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형성하는 부분의 스위치를 계속 켜두어야 합니다. 더는 지난 몇 년동안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람들은 누구를 신뢰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경제학자로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아이러니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저 자신 역시 전문가의 한 사람이고 교수이고, 또한 각 나라의 수상들이나 대기업 사장들과 국제 조직에 조언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전문가의 역할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인거죠. 하지만 저는 우리가 더욱 마음을 열고 우리의 의견들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민주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 제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분을 저의 세계, 전문가의 세계로 모시기로 하죠.
물론 거기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훌륭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예외가 있지요. 하지만 제 연구가 보여준 것은 전문가는 대부분 아주 엄격한 집단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고 이 집단내에서 지배적인 견해가 생겨나고 종종 반대의견을 침묵하게 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 지배적인 견해를 따라 움직이고, 때로는 그들의 집단의 스승들을 숭배하기도 합니다.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앨런 그린스팬의 주장은 경제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그의 동료들에 의해 반박이 되었습니다. 보세요, 우리도 알다시피 전문가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의 규범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규범에 의해 지배당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의사들은 성적 욕구를 표현한 여자들을 수용소에 보내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1973년까지 정신과 의사들이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시사하는 것은 패러다임이 변하는 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복잡성이나 미묘한 차이 같은 것들은 무시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자본의 영향력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제약회사들이 약품 효능검사연구에 자금을 제공하고 그 연구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약품의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례들의 증거가 있습니다. 또한 식품회사들도 자신들이 새로 시장에 내놓을 제품에 대해 그 건강효능을 과장되게 광고할 수 있도록 연구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식품회사가 개입된 식품 효능연구는 독립연구보다 일곱배나 더 과장을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문가들도 역시 실수를 한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매일 매일 실수를 합니다. 부주의에서 기인된 실수들이죠. 최근 수술 기록에 대한 분석에 의하면 외과의사들이 건강한 난소를 제거하거나 수술해야할 반대편 뇌를 수술하고 치료해야할 반대쪽 손, 팔꿈치, 눈, 발 등을 치료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실수는 생각의 오류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방사선전문의들이 종종 잘못된 생각으로 실수를 하는데, CT스캔을 볼 때 - 검사를 의뢰한 의사가 한 말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다고 의심을 하고 검사를 의뢰하면 방사선전문의는 의사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방사선전문의가 어떤 환자가 폐렴을 가졌다고 의심하고 그 환자의 스캔을 보게 될 경우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스캔도중 폐렴의 증거를 발견하면 방사선전문의는 거기서 스캔을 멈춥니다. 3인치 아래 족에 있는 폐 종양을 놓치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전문가들의 세계를 통찰해 보았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과 공유한 사실들이 통찰에서 끝나지 않고 그 사실들로 인해 여러분들이 왜 우리가 전문가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멈추어야 하는지 왜 우리가 반항해야 하는지, 또 왜 우리가 우리의 독립적 의사결정 스위치를 켜놔야 하는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시간관계상 세가지 전략에만 집중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지금까지 나눈 전문가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을 취하거나 또 배제해야 합니다. 걱정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말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 모든 분야에 박사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전문가들의 짜증스런 얼굴에도 계속해서 우리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들어,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우리가 실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 주기를 바랍니다. 제가 전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의사가 제게 "헐쯔 여사, 이상고열을 인지하세요"라고 하더군요. 알아듣기 쉽게 "고열 조심하세요."라고 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전문가를 취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보는 그래프의 이면과 복잡한 식과 예측, 예언 등을 캐내서 무슨 말인지 알아내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할지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 말입니다. "이것을 입증하는 전제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요? 당신의 조사는 어디에 중점을 두었습니까? 그리고 어떤 사실들이 배제되었습니까?"
최근 알려지기를, 대부분의 약품들이 시장에 나오기 전에 이미 임상실험을 거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우선 수컷 동물들에게 실험을 하고 그 다음에는 남성들에게 실험을 합니다. 어찌된건지 그들은 세계의 절반 인구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성들이 운나쁘게 당하게 되는거죠. 왜냐하면 이 약품의 대다수는 남성들에게 효과가 있는 만큼 여성들에게도 효과가 있지 않거나 그 약품들이 너무나 효과가 있어서 여성들이 복용하기에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역자가 된다는 것은 전문가의 추측들과 그들의 방법들에도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제가 "반대권 행사"라고 이름붙인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고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내고 신화를 파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전문가의 아이디어들이 싸움에 져서 내몰려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그 안에서 새롭고, 다문화적인 생각과 대립적이고 이단적인 견해 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토론으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러한 과정이 아이디어의 창조 뿐만아니라 아이디어의 파괴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지고 대립되는 의견들과 이단적인 생각들로 우리 자신들을 둘러싸야만 그런 과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우리가 더욱 현명해질 수 있다는 것을 연구결과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대권을 장려하는 것은 반항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믿고 있거나 또는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의견과 조언으로 우리 자신을 둘러싸려고 하는 우리의 바로 그 본능들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활발하게 반대권을 행사할 필요에 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구글의 최고경영 책임자인 에릭 슈미트는 이 철학의 실질적인 실행가입니다. 회의할 때, 그는 사람들을 주시하다가 팔짱을 끼고, 약간 어정쩡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바로 그 사람들을 토론으로 끌어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사실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반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불일치와 부조화 그리고 다름의 가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출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정의해봐야 합니다. 통념적으로는 전문가라고 하면 고학력에 화려한 직책, 학위증을 갖고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상위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상상해 보세요. 만일 우리가 이 전문가라는 개념에 있어서 엘리트 핵심집단으로 보는 관점을 버리고 대신에 민주적인 개념으로 전문가를 포괄적으로 생각한다면 전문가는 단지 외과의사나 최고경영간부 뿐만아니라 가게의 여자 점원도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스트바이라는 전자제품 전문 판매회사는, 모든 고용인들에게 내기를 걸게 합니다. 실질적으로 판매 예상수치를 맡고 있는 부서뿐만아니라 청소부, 판매 보조원, 자원부서 직원들까지 모두 내기를 걸게 합니다. 어떤 상품들이 크리스마스 전에 잘 팔릴지 안 팔릴지, 소비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회사에서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할지를 말입니다. 또한 어떤 프로젝트가 제 때 시작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고 회사내의 전문성을 수용함으로써 베스트바이라는 중국에 개점 예정이었던 아주 큰 규모의 거대한 매장이 제 시간에 개점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해낼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 중국에 오픈할 매장을 예정대로 제 때에 오픈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내기를 걸어보라고 했는데 재정부서의 한 그룹이 그들의 칩을 전부다 매장이 열리지 않는 쪽에 걸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예측 전문가들이나 중국의 현지에 있는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던 기술적인 문제를 그 회사내의 어떤 전문가도 알지 못하고 있었을 때, 그들은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밤 제가 말씀드린 전략들을 정리하자면 반대의견을 받아들이자는 것과 전문가들을 어떻게 이용해야할지, 전문성을 민주화하자는 것입니다. 반항적인 전략들은 우리로 하여금 혼돈스럽고 복잡하고 어려운 이 시대의 도전들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뇌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형성하는 부분을 계속 켜놓고 있다면, 만일 우리가 전문가들에게 도전한다면, 만일 우리가 의심쩍어 한다면, 만일 우리가 권위를 양도한다면, 만일 우리가 반항적이라면, 그리고 만일 우리가 불확실성과 의심, 미묘한 차이 등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리고 전문가들이 불확실성과 의심, 미묘한 차이 등을 사용하여 그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21세기의 도전에 대해 잘 대항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자,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은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은 두 눈을 크게 뜨고 - 세계에 직면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래요. 전문가를 이용하는 것은 우리가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제 스스로 직업을 완전히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한계점과 우리 자신의 한계점을 인지하기를 바랍니다.
필리스 로드리게스와 아이차 엘-와피는 가늠할 수 없는 상실감에서 강한 우정을 이루어냈습니다. 로드리게스의 아들은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에서 사망했습니다. 엘-와피의 아들인 자카리아스 무싸위는 그 테러에 가담하여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평화를 찾는 희망을 품고, 이 두 어머니들은 서로 이해와 존중을 하게 되었습니다.
필리스 로드리게스 : 저희는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다고 여기는 저희의 우정 때문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우정이 이제 저희에게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저는 제 아들이 세계무역센터에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지만, 36시간 후에야 제 아들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는 그것이 정치적인 사건임을 알았습니다. 조국이 제 아들과 제 남편 올랜도, 저와 우리 가족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려할지 두려웠습니다. 그 사건을 겪었을 때, 말 그대로 우리의 삶에 정말 끔찍한 충격이었음에도 우리는 복수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자카리아스 무싸위가 테러에 대한 공모의 6가지 죄목으로 기소를 당하고, 유죄가 평결될 경우, 미국 정부가 사형을 요구했을 때도 제 남편과 저는 공개적으로 그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 상황을 거치며 인권단체들을 통하여 우리는 몇몇 다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기소당했을 때 왔던 아이차를 대중매체에서 봤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용감한 여성인가. 언젠가 내가 좀 더 강인해지면, 그녀를 만나고 싶다." 저는 여전히 깊은 슬픔 가운데 있었고, 제가 강인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그녀를 찾거나 서로를 찾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제 아들이 희생자라는 것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제게 동정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녀의 아들이 기소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그런 동정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저와 동일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2002년 11월에 만났습니다. 이제 아이차가 여러분께 그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통역) 아이차 엘-와피 :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자카리아스 무싸위의 어머니입니다. 저는 인권단체에 희생자들의 부모님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를 다섯 가족들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필리스를 만났고 그녀를 봤습니다. 그녀는 그 모임의 유일한 어머니였습니다. 다른 이들은 피해자들의 형제, 자매들이었죠. 저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녀는 저와 같은 어머니였습니다. 저는 어머니로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는 14살에 결혼을 했고, 15살에 아이를 잃고, 16살에 둘째 아이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 자카리아스의 이야기는 정말 감당하기 힘듭니다. 저는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제 아들이 생매장을 당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필리스가 아들 때문에 정말 슬퍼한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아들의 생사도, 고문당하고 있는지의 여부도 모릅니다. 저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제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제가 겪는 고통이 다른 여성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말입니다. 모든 여성과, 생명을 잉태하는 모든 어머니들은 사랑을 돌려주고,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여성들에게 달렸습니다.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이고,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뭔가를 함께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여성에 반(反)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여성과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폭력과 테러리즘을 비난합니다. 저는 어린 무슬림 소녀들에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학교에 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지에 반하는 조혼(早婚)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어린 소녀들이 저와 같이 결혼을 하고 고통을 겪는 것을 피하도록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 앞에 나선 이유입니다.
필리스 로드리게스 : 다른 가족들과 가장 처음으로 만났던 날로부터 저는 아이차에게 아주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때가 2002년 11월이었기 때문에 그 모임은 아주 조용히 진행되었습니다. 가실 그 당시에는 저희 가족 모임 구성원들은 미국내에서의 배타적 애국주의가 두려웠습니다. 우리는 모두 긴장했습니다. "왜 그녀가 우리를 만나기 원할까요?" 그리고나서 그녀도 긴장했죠. "왜 우리가 그녀를 만나기 원했을까요?" 우리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통성명이나 다른 것을 알기도 전에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이런 화해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도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둘러 앉았습니다. 아이차가 시작했을 때,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에 얼마나 유감스러운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고 느끼고 있습니다. 범죄가 있다면 공정하게 재판받고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섰습니다. 그것은 서먹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고, 인간으로서 모두 연결되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3시간이 지나 그 오후가 끝날 무렵, 우리가 정말 오랜동안 알아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그녀로부터 배운 것은 이런 현재의 상황하에서 그 당시 어땠는지 그녀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뿐만아니라 그녀의 삶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있어떤 여성상이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저와는 완전히 다르면서,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온 이를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우 소중하고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그것이 상대방을 두려워 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걸음 내딪은 뒤에 깨달았습니다. "이봐요.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네요. 제가 모르거나 저와는 아주 다른 또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자, 아이차. 마지막으로 몇 마디만 해줄 수 있어요? 우리 시간이 다 되어가서요.
(웃음)
(통역) 아이차 : 저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알려고 노력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려분은 관대해야 하고, 마음이 관대해야 합니다. 정신이 관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관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폭력에 대항해 싸워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평화와 상호존중 안에서 함께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아랍 나라들에서 30년이상 영어를 가르쳐왔던 패트리샤 라이언(Patricia Ryan) 이 두바이에서 열린 TEDx에서(TEDxDubai)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이 영어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다른 언어를 통한 위대한 아이디어의 확산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예를들어, 아인슈타인이 토플을 통과해야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2주일마다 한 개의 언어가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정작 영어 장벽 때문에 아이디어를 세상에 펼치지 못하는 것을 날카롭고 열정적으로 지적한 패트리샤 라이언의 강연 영상을 봅니다. 단 10분간의 짧은 강연이 영어에 목을 맨 나머지 우리 자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마저 맘껏 펼치지 못하는 상황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한 번 이상 시청을 권합니다.(서형준 주)
▲ 한국어 번역 : Poram Lee, 검토(Review) : JY Kang
▲ 한글 자막 (전문)
영어만 고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여러분은 네가 길을 잃은 것 같으시겠지요. 그리고 곧 누군가가 무대 위로 올라와 친절히 절 다시 제자리로 안내할 거라 생각하실 겁니다. (박수) 두바이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머님, 여기 휴가 오신 건가요?" (웃음) "아이들을 방문하러 오셨나요?" "얼마나 계실 건가요?"
사실, 아직까지는 좀 더 머물 생각입니다. 전 약 30년간 걸프만 쪽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박수) 그 시간 동안 전 많은 변화들을 보았지요. 자, 저 통계는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화면 : 세계 총 언어 = 6,000. 90년 후 = 600] 전 오늘 여러분께 언어의 소멸과 영어의 세계화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아부다비에서 성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제 친구 얘기부터 해볼까요. 어느 좋은 날, 그녀는 정원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갔답니다. 자연에 관한 어휘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반대로 그녀가 지역 식물에 관한 여러 아랍어 단어들을 배우고 말았지요. 그 뿐만 아니라, 식물들의 이용 방법도 배웠어요. 그러니까 의약품으로서의 효능, 화장품 대용, 요리 방법, 약초로 활용하는 방법같은 것들이요. 어떻게 그 학생들이 이 모든 지식을 갖고 있었을까요? 물론, 그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심지어 자신의 증조부모로부터 배운 겁니다. 세대 간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굳이 여러분께 말씀드릴 필요 없겠지요.
하지만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언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례없는 속도로 말입니다. 14일마다 하나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오늘 날 영어는 명실공히 세계 공용어입니다. 여기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음, 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겪은 많은 변화를 보아왔다는 건 분명합니다. 처음 걸프만 지역에 왔을 때, 제가 도착한 쿠웨이트는 여전히 체류기피 지역이었습니다. 사실 그리 오래 전이 아니지요. 이 사진은 좀 오래된 사진이네요. 그럼에도 저와 약 25명의 다른 교사들이 영국문화원에 채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쿠웨이트 주립학교에서 가르친 최초의 비이슬람교도들이었습니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불려갔었죠. 쿠웨이트 정부는 교육을 통해 국가를 현대화하고 국민들의 능력도 키우길 원했거든요. 그리고 물론, 영국이 얻은 혜택은 그 매력적인 석유자원이었죠.
좋아요. 바로 이것이 제가 본 그 대단한 변화입니다. 영어를 가르친다는 상호이익이 되는 작은 활동을 시작으로 해서 거대한 다국적 교역사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더 이상 영어는 단순히 교과 과정에 있는 외국어 중 하나가 아닙니다. 이제 어디상은 모태인 영국이라는 지역에 국한된 언어도 아닙니다. 이제는 지구상 모든 영어권 국가들의 우세한 언어가 되어버렸습니다. 딱히 안 될 이유가 있나요? 결국 최고의 교육은, 최근 세계적 대학 순위에도 나타나듯이, 영국과 미국의 대학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자연스레 영어 교육을 받길 원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면 어떠한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과연 학생들 단지 언어적 능력만 보고 거부하는 것이 옳은가요? 어떤 천재 컴퓨터 과학자가 있다고 치죠. 그렇다면 그에게 변호사와 같은 언어능력이 필요할까요? 글쎄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영어 교사들은 늘 그들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멈춰세우고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죠. 그들은 더이상 자신들의 꿈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영어가 될 때까지는요. 자, 이번엔 좀 다르게 설명해보죠. 암 치료제를 개발한 한 네덜란드인이 자국어 하나만 할 수 있다면, 그의 영국 대학으로의 진학을 막아야 할까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어 교사들은(외부인을 막는) 문지기이고, 여러분은 영어 실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야 하는 겁니다. 문제는 사회의 좁은 특정 부분에 너무 많은 힘을 [화면: "chick(양계)포인트", 원래 "check point(검문소)" 여야 함. 번역주] 쏟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장벽이 너무나 보편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연구보고서들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잖아" 그렇죠. 책도 영어로 되어 있고 학술지도 다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충족예언인 거죠.(자기충족예언 :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심리) 영어가 필요조건이 되도록 강화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돌고 돌아 계속되는 거죠. 제가 여러분께 묻죠. "번역은 또 어떤가요? 이슬람 황금시대를 돌이켜보면 그 때는 많은 번역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페르시아어로 아랍어로 번역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유럽의 게르만어와 로망스어로 번역되었죠. 그리하여 유럽 중세 암흑시대에 빛이 밝혀진 겁니다. 자, 제 말을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저는 수 많은 영어 교사들이나 영어 교육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에요. 세계 공용어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어느 때보다 더욱 우리는 세계 공용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 그것을 장벽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여러분은 진정 단 600개의 언어만을 원하십니까? 그 중에서 영어나 중국어만 주요 언어가 되기를 바라세요? 우리는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합니다. 한도를 정할 필요가 있나요? 이 시스템은 영어로 된 지식만을 지성으로 한정 짓습니다. 상당히 독단적인 거죠.
(박수 + 휘파람)
그리고 전 여러분께 현대 지식인들의 디딤돌이 되어준 위인들에게는 영어가 필요 없었고, 영어 시험을 통과할 필요가 없었음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일례로, 아인쉬타인도 학교에서 보충수업이 필요한 아이로 취급받았습니다. 실제로 그가 난독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행스러운 건 그는 영어 시험을 통과할 필요가 없었다는 겁니다. 1964년까지는 아직 미국의 영어 시험인 토플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금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너무나 많고 많은 영어 시험들이 있죠. 수천 수백만의 학생들이 매년 이 시험들을 치릅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화면: IELTS 150달러+, 토플 150달러, 토익 170달러 : 번역주) '응시료가 저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은데요.' 하지만 수많은 가난한 이들에겐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시험입니다.
우린 즉각적으로 그들을 거부하는 거지요. (박수)
이는 제가 최근에 본 기사 제목을 떠올리게 합니다. "교육: 그 대분수령"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사람들이 왜 영어에 집착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사라들은 자녀에게 인생 최고의 기회를 주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구의 교육이 필요하죠. 왜냐하면, 최고의 직장은 당연히 서구의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대로 이건 돌고 도는 일이니까요.
자 그럼, 여러분께 어느 두 과학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두 영국인 과학자가 있었는데요. 그들은 유전자와 관련하여 동물의 앞다리(forelimb)와 뒷다리(hindlimb)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어요. 어느 독일 과학자가 나타나기 전 까지는요. 그는 영국 과학자들이 앞다리와 뒷다리를 칭할 때 다른 단어를 쓴다는 것을 알아차렸죠. 하지만 유전학은 그 둘을 구분하지 않았고, 독일어 또한 그 구분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빙고! 문제가 해결되었죠.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할 수 없는 경우, 진전이 없이 막혀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언어로는 그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언어간의 협력을 통해서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이룰 수 있습니다.
제 딸은 쿠웨이트에서 영국으로 왔습니다. 그녀는 과학과 수학을 아랍어로 공부했죠. 아랍 중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녀는 영국의 중학교에서는 그 과목을 영어로 변역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목에 관해서는 학급에서 최고였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죠. 어떤 학생들이 외국에서 왔을 때, 우리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알고 있는 것이지요. 한 언어가 사라지면 그 언어와 함께 무엇을 더 잃게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 여러분이 최근 CNN에서 이걸 보았는지 모르겠네요 - CNN은 케냐의 어린 양치기 소년에게 올해의 영웅상을 수여했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에서는 밤에는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을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등유 등불의 연기에 그의 눈이 손상됐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차피 충분한 등유조차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1달러 정도로 무엇을 살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는 돈이 들지 않는 태양등을 발명했습니다. 이제 그의 마을 아이들은 전기시설이 잘 된 집에 사는 아아들과 똑같은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박수) 그 상을 받을 때 그 소년은 이런 멋진 소감을 밝혔습니다. "아이들은 오늘날 어두운 대륙인 아프리카를 밝은 대륙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에반스 와동고"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가 이러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빛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물리적이든 은유적이든 우리의 시험에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절대 알지 못할 겁니다. 우리 자신을, 그리고 그들을 어둠에 가두지 맙시다. 우리, 다양성을 널리 알려봅시다. 여러분의 모국어를 소중히 여기세요. 멋진 아이디어를 확산하는데 그것을 사용하세요.
(박수) [화면: 수많은 꽃이 보는이 없이 혼자 피어 얼굴 붉히고 그 달콤한 향을 사막 허공에 헛되이 뿌리나니 - 토마스 그레이. 시골 묘지 비문에서: 번역주]
요즘 행복과 긍정적 사고가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한편, 긍정적 사고의 위험성을 파헤친 날카로운 책도 눈여겨볼만하다. 이런 두 가지의 경향은 모두 물질만능주의의 페단을 있는 그대로 보느냐 마음상태로부터 시작하느냐의 문제이다.
히말라야의 인구 70만의 작은 나라 부탄은 이런 문제를 실천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1972년에 즉위한 17세의 어린 국왕이 경제성장과 행복이라는 문제를 고민한 끝에 모든 정책을 '부탄 국민의 행복'을 기준으로 펴나간다. 국민총생산(GNP), 국내총생산(GDP)가 아니라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개념을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
유투브에 올려진 3분 29초 짜리 짧은 동영상이 의미있는 시사를 던져준다.
거의 모든 언론의 뉴스가 대부분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뉴스가 지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으로 사고하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나쁜 뉴스, 부정적 소식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록 작은 뉴스일지라도 <좋은 뉴스>를 올린다. <편집자: 서형준 주>
1. 가수 인순이 장애우를 위한 자선 공연
평소에도 나눔 천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잘 돕는 가수 인순이가 이번에 또 좋은 공연을 했다. 한 장애우 시설 확장을 위해 자선공연을 열었다. 공연 수익의 전액을 장애우 시설 확장에 돌리기로 했다. 가수 인순이는 어린 시절 혼혈 가수 등으로 주위 냉대와 차가운 시선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기도 했다. 지금의 그는 어쩌면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주위의 힘없거나 약한 이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과 정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의 착한 행동은 사랑과 친절의 미덕과 강점을 실천한 아름다운 행위이다. 그러니 참 좋은 뉴스이다.
뇌출혈로 쓰러진 광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뇌사판정을 받은 가운데 가족들이 장기기증을 결단, 교육자로서 그의 삶을 뜻깊게 기려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다. 동료 교사들은 "학생과 함께 하는 모습이 가장 교사다운 모습임을 몸소 보여주신 분, 학생을 사랑으로 대하는 자세가 다른 교사들의 귀감이 됐던 분"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비록 그 선생님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또 다른 신체의 일부가 필요한 이에게 이 세상에 돕는 이도 있다는 믿음을 실천한 것이다. 따뜻하고 좋은 뉴스이다.
비정규직에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주장하는 미화원 어머니들을 소란스럽다면 냉대했던 대학생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와 반대로 자신들의 대학 미화원 어머니들의 어려운 사정을 개선코자 활동하여 따뜻한 점심이라도 제공할 수 있게 된 학교가 있다. 성공회대학 학생들이다. 마침 이 대학의 용영업체는 사회적기업이어서 학생들의 선의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었다고 하니 참 잘 된 일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성공회 대학생들 참 고마운 일을 해주었다. 정말 좋은 뉴스이다.
공중파 방송의 일요일 오후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여러 가지 이유에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처음에 이 프로그램의 제목과 진행방식을 얼핏 듣고 싫증을 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인 분위기에 편승해 프로가수들에게도 적용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나는 가수다'를 시청하면서 참 좋은 인상을 받았다. 실력파 가수들의 집중과 몰입이 진지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공정한 방식이었다. 일곱 명 중 한 명의 탈락을 필수로 하는 서바이벌 게임의 방식에 대한 합리성 여부를 떠나 참가자들이 동의한 방식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나는 일과 직업, 커리어에 관해 연구하고 글을 쓰고, 강의와 상담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가수다'에서 몇 가지 의미 있는 모습을 보았다.
1. 가수들의 자기 일과 직업에 대한 태도가 보인다.
'나는 가수다'는 적절히 연출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가수 경력과 실력이 쟁쟁한 가수들이 미션으로 지정받은 노래를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서 불러야 하는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 대중 앞에서 그렇게 능숙하게 노래하던 가수들이 초긴장 상태에서 노래하는 모습도 보았다. 프로 가수들, 그들도 평가받는다는 조건 아래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낯선 사람들로부터 평가받는 '사회공포증'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 긴장되는 프로그램 전후의 준비과정과 무대에서의 모습은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긍정적인 자극이다. 왜냐하면, 내가 본 것은 그 가수들이 일(work)로서 노래하는 행위, 직업으로서 가수를 대하는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일을 사랑하며, 열정을 쏟아 몰입하는 노래하는 장인의 모습을 본 것이다.
2. 자기 장르와 선호를 떠나 어떤 곡에도 온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 좋다.
아무리 직업 가수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장르가 아니면 부르기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은 그런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 무대로 불리한 곡을 끌어들여 멋지게 소화해냈다. 박정현은 천부적인 재능을 살려 노래의 음률을 완전히 탔다. 김범수는 외모에 대한 소극적 평가를 무색하게 할 만큼 실력과 재능을 맘껏 발휘했다. 정엽은 인지도가 가장 떨어졌음에도 이른바 뽕짝에 가까운 '짝사랑'을 기막히게 소화해냈다. 윤도현은 중간평가에서 어울리지 않는 장르로 고생하여 탈락을 예견케 한 것을 뒤집어 자신의 강점 무대인 락으로 훌륭하게 변신에 성공했다. 백지영은 정통파 가수들보다 노래 실력이야 모자랄지 몰라도 '슬픈 목소리와 창법'으로 자신의 무대를 장식했다. 그 가수들은 평가받는 두려움에도 자신의 과제와 일을 맡아 끝까지 성심껏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래를 일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보았다. 물론 일곱 명 가운데 가수 경력의 차이를 넘어 잘 소화하는 사람과 덜 그런 사람을 어렵지 않게 가릴 수 있었다. 가수 개인에 대한 나의 선호와 달리 자기의 무대로 낯선 노래를 끌어들여 다루는 솜씨에서 차이가 났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일에 대한 진지함의 차이였다. 탈락 가수가 지정되는 것이 번복되고 다시 기회를 주는 데서 문제가 불거졌지만 일곱 명의 가수 누구도 손해 볼 것이 없는 꽤 멋진 일을 해냈다.
3. 선의의 경쟁이 무엇인지 보여줄 새싹
'나는 가수다'의 탈락자 결정 번복과 재도전 기회를 놓고 굳이 '공정 사회'의 논리를 대고 싶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분명히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 확실한 '사고'였다. 그 PD의 결정이나, 재도전 기회를 받아들인 가수의 의도된 '잘못'이라고 보기보다는 일에 대한 욕심이 부른 '큰 실수'였다고 인정한다.
이 프로그램이 사랑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5백 명의 청중평가단에 의한 공정한 평가 덕분에 가공된 '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후배 가수들의 온 힘을 다한 열정과 아름다운 노래와 공연에 대한 아낌없는 박수가 좋았다. 자신의 탈락 여부를 떠나 아름다운 도전에 극찬하는 것은 일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인 사람에 대한 기분 좋은 예우이다.
우리는 필요 이상의 무한경쟁에 노출된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그 무한경쟁의 폐단이 아닌 '선의의 경쟁'이 무엇인지 그 싹을 보여주었다. 동료끼리 서로 지지, 응원하며 객관적인 평가에 대해 초연할 수 있는 그런 경쟁 말이다. PD와 그 가수의 일에 대한 과욕이 그 멋진 선의의 경쟁에 본의 아니게 규칙을 깬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4. '나는 작가다', '나는 청소부다'라면 어땠을까? - 감동을 주는 숨은 이유
'나는 가수다'를 보고 눈물지었다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그랬다. 사람들은 왜 가수들의 노래에 감동했을까? 물론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래와 공연이 감동적이어서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왠지 부족함이 있다. '나는 가수다'가 감동적인 감추어진 이유는 사람들은 그들의 노래와 무대 뒤의 모습에서 '자신의 직업과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의 무수한 일과 직업 가운데 한 가지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세상에 보이는 것은 무대 위의 가수처럼 겉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무대 밖에서 가수들의 긴장한 모습, 자기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망을 모두 보았다. 그래서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나는 가수다'를 감동적으로 보았으리라.
그래서 자신의 직업이 작가인 사람은 '나는 작가다'를 되뇌었을 것이다. 청소부인 사람은 '나는 청소부다'를, 간호사인 사람은 '나는 간호사다'를, 사회복지사는 '나는 사회복지사다'를 마음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어느 직업인들 이렇게 현장 앞과 뒤를 생생히 보여준다면 모두 감동적일 것이다. 어떤 직업과 일 모두 그것을 열렬히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일에는 세 가지의 차원과 정체성이 있다. 돈을 위해 일하는 생업(job), 돈과 명예, 출세를 위해 일하는 직업(career), 일 자체를 사랑하고 그 일이 세상에 보탬이 된다고 여기는 천직(calling)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윤택해지려면 직업(career)에서 천직(calling)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가수다’는 그 새싹을 보여주었다.
5.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은 스트레스마저 즐겼다.
'나는 가수다'에서 배울 점이 있었다. 그 멋진 가수들은 자신의 스트레스마저 즐겼다. 서바이벌 방식에 대한 부담, 장르가 다른 노래에 대한 부담 등 스트레스가 엄청나 보였다. 그러나 이 스트레스가 부정적인 스트레스인 디스트레스(distress)와 다른 점은 목표를 향한 밝은 스트레스 즉, 유스트레스(eustress)라는 점이다. 스트레스의 밝은 면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다. 이 유스트레스야말로 우리가 일을 좋아하거나, 행복해하는 정서를 뛰어넘어 실질적 성과로 나가는데 동기가 된다.
6. 즐거운 일을 하되, 힘껏 하자
일은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기도 하고, 행복한 감정은 일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해진다. 또한, 일하는 데서 행복해야 일의 성공도 이룩할 수 있다. '나는 가수다'는 진정으로 자기 일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일에서 높은 성취에 도전하는 멋진 직업인들과 우리 이야기의 한 모습이다. (2011. 4. 5)
거의 모든 언론의 뉴스가 대부분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뉴스가 지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으로 사고하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나쁜 뉴스, 부정적 소식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록 작은 뉴스일지라도 <좋은 뉴스>를 올린다. <편집자: 서형준 주>
지난 해 9월 17일 이후 <좋은 뉴스>를 올리지 못했다. 일이 바빠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 후에 짬이 났을 때도 올리지 못한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좋은 뉴스>가 드물고 나쁜 뉴스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부정적인 뉴스가 자칫 우리의 정서를 어둡게 만들 수 있다. 지금도 쉽지 않지만, 오늘 문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고등학생이 내게 용기를 준다.
고교생 영화감동 김수랑 청춘이 무엇인지 말하다
영화예술이 각광받는 시대이다. 시청각과 디지털 기술이 힘을 합쳐 사람들에세 새로운 세상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 영화 제작자들도 숱한 고생과 수련을 거쳐 영화인의 길에 들어선다. 나이어린 학생신분이야 말할 나위 없다. 요즘 처럼 입시지옥에 공부 잘 하면 성공한다는 획일적인 기준이 암묵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에서 말이다.
김수랑 감독!
그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그것도 고 3이란다. 그가 우리 앞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제 9회 퍼블릭액세스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부터이다. 7전 8기 끝에 첫 수상을 한 순간이다. 열정과 재능으로 가득한 17세 소년에게 심사위원들이 심사비를 모아 상금을 마련해 주었다는 그 소년이다. 지난 해엔 제 10회 퍼블릭액세스시민영상제에서 <풋! 고추이야기>라는 뮤지컬영화로 고등부 작품상을 수상했다. 제 4회 공주 신상욱영화제에서 특별상도 수상했다.
그는 아직 학생이라 전문 영화인이 아니지만 영화감독답다. 평소에는 순하고 어리벙한 성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단 영화제작에 들어가면 동료학생들에게도 민감할 정도로 날카롭고 세심해진다. 스탭과 배우들을 선발할 때도 꼼꼼히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그의 학교 계양고교의 방송반 선생님의 도움으로 인천의 모든 고등학교에 공문을 보내 스탭과 배우를 선발하는 것을 알렸다.
이쯤되면 그는 영낙없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청소년영화이면서도 우리 세상이 채우지 못하는 부족한 그 무엇을 메시지로 전하고 싶단다. 기특하고 장한 일이다.
21세기 그리고 현대. 다양하고 주체적인 개성들이 존중받는 세상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겉으로 표방하는 것과 실상이 다르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아직도 공부 잘해야 똑똑한 학생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여기 저기서 우리의 젊은 김수랑들은 작은 반란을 시작하고 있다.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그에게 많은 시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련은 달콤한 것일 수 있다. 왜냐고? 그가 원하는 일이니까.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고교생 영화감독 김수랑의 행동은 긍정심리학의 24가지 강점 가운데 창의성, 호기심, 용기, 인내를 발휘한 참 좋은 뉴스이다.
크건 작건 오늘의 뉴스 가운데 좋은 뉴스 3가지를 선정하여 내 블로그에 기록한다. 거의 모든 언론의 뉴스가 대부분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뉴스가 지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으로 사고하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나쁜 뉴스, 부정적 소식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록 작은 뉴스일지라도 <좋은 뉴스>를 매일 밤 간단히 편집하여 다음 날 오전 중에 올린다. <편집자: 서형준 주>
1. 기부하면 행복해져요
기부행위를 하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이른바 기부천사로 알려진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커다란 만족감과 기쁨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어떤 기부자는 '기부중독'이란 표현까지 사용하며 기부를 기뻐한다. 희열이라고 한다. 또한, 최근에 유명 홍콩배우 주윤발은 현재 재산 약 1, 280억원의 99%는 자신이 죽은 뒤 모두 사회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재산은 영원히 내 것은 아니며 사후에 가져갈 생각도 없다' 고 밝혀 멋을 더해준다. 영화 영웅본색에서 수많은 당시 소년들을 정의와 의리감으로 들뜨게 했던 배우다. 기부행위는 선한 기부가 있는가 하면 추악한 기부행위도 있다. 위에서 말한 기부가 선한 기부의 예들이다. 반면 선거법을 위반해가며 표심을 기부로 사기 위해 금품을 제공하는 등의 기부는 부끄럽고 추악한 기부에 해당한다. 같은 기부이고 금품의 이동이란 면에서 같지만 그 의도의 선악은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룬다. 부의 불공정 배분 등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꽤 심각하다. 기부행위로 이런 사회 문제를 다 해소할 순 없다. 그래도 우리는 선한 마음으로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선한 기부행위를 반긴다. 작은 나눔이라도 큰 기쁨과 큰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적대는 도심을 벗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환경에 있으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기도 하지만 뇌 기능에도 아주 좋은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 쉐필드대학교 인지신경이미지 실험실의 마이클 헌터 박사에 의해 주도되었다. 헌터 박사는 말한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갑갑한 도심에서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볼 때 뇌 기능이 더 활발하다”며 “인위적인 도시를 떠나 자연이 있는 곳으로 탈출하는 것은 마음뿐 아니라 지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단순히 여가를 즐기기위해 산으로 바다로 떠나기도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그동안 우리 선인들의 지혜로운 삶의 태도와도 일치한다. 학문을 갈고 닦음에 가장 좋은 곳으로 뒤로 산이 있고 앞으로 물이 흐르는 곳을 택했던 것이다. 인문의 지혜를 구하는 망가진 도시의 지성들이 자주 찾을 곳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품이다. 참 좋은 연구이니 좋은 뉴스이다.
몸이 튼튼하면 마음 뿐 아니라 머리도 튼튼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잘 뛰어노는 아이는 신체 건강만 좋은 것이 아니라 기억력까지도 탄탄해진다는 것. 미국 일리노이대학 찰스 힐만 교수팀은 9~10세 어린이 49명을 대상으로 신체 건강도를 테스트하고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관찰하여 이같은 연구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기억해내는 ‘관계적 기억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우리의 갇힌 상식과 배치하는 측면이 있는 연구결과이다. 우리에겐 책상과 책에서 많이 매달려 있어야 머리가 좋아진다는 통념이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답답한 구속을 주는 것보다 넓은 운동장에서 맘껏 뛰놀게 하는 것이 기억력(학습능력)에도 좋다는 말이다. 뛰노는 희망의 아이들에게, 그것은 믿는 부모들과 선생님들에게 참 반가운 뉴스이다.
크건 작건 오늘의 뉴스 가운데 좋은 뉴스 3가지를 선정하여 내 블로그에 기록한다. 거의 모든 언론의 뉴스가 대부분 사건, 사고 등 부정적인 뉴스가 지배적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으로 사고하는 것은 지성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나쁜 뉴스, 부정적 소식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록 작은 뉴스일지라도 <좋은 뉴스>를 매일 밤 간단히 편집하여 다음 날 오전 중에 올린다. <편집자: 서형준 주>
1. 간 이식 위해 다이어트하는 아내
간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에게 간 이식을 위해 눈물겨운 다이어트에 돌입한 한 아내가 있다. 간경화가 간암으로 악화된 남편이 의료진의 권유에 따라 간 이식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의 아들이 이식에 적합검사를 받았으나 간 크기가 너무 작아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의 아내가 자청해 검사를 받았다. 크기나 상태는 적합하지만 지방간 수치가 높아 10kg을 감량해야 한다고 한다. 다발성관절염으로 수년 째 고생하고 있는 아내에게 10kg 다이어는 혹독한 인내를 동반하는 아픔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생명이 위험한 그를 위해 그의 아내의 눈물겨운 사랑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좋은 뉴스이다.
17년 전 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젊은 의사 음태인씨가 교통사고로 뇌사했다. 그 때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그의 장기기증으로 3명이 새 생명을 찾았다. 17년 전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가 병원에서 열리기도 한다. 지난 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후 장기기증에 많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모자란다. 한 줌 재로 돌아갈 우리의 목숨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각막고 장기로 눈을 뜨고, 새로운 생명을 찾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재산, 지식, 힘이 있는 지 여부에 관계없이 몸과 마음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인간애의 실천. 우리 모두 조금씩 용기를 내보자.
IQ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감성지수, 사회성지수(SQ)가 중요하다고 한다. 감성지수는 지능지수(IQ)와 달리 자기 감정을 적절히 잘 조절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음의 지능지수를 말한다. 감성지수(EQ)가 높은 직원이 회사생활에 더 만족하고 헌신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스라엘 하이파대학 에란 비고다-가도트 교수팀은 일반 직원들과 관리직 809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화합과 감성지수, 직원의 업무태도 등에 대해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감성지수가 높은 직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았고 자기 조직에 더 헌신적이었다. 반면 감성지수가 높으면 업무 스트레스, 퇴사생각, 게으른 태도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업무태도는 훨씬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교수들의 말대로 "감성지수가 높은 직원은 조직의 훌륭한 자산" 이 된다. 새로운 지혜와 지식은 세상을 보는 참 좋은 뉴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