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월 16일은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대회날이었습니다.
동아마라톤은 참가자만도 2만 5천명이며, 전세계 65개국에 생중계된 경기였죠. 물론 저같은 마스터즈 경기는 자세히 중계는 안하고, 이봉주 선수같은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를 중계했을 것입니다.

어제 아침, 사실은 밤잠을 설쳐서 거의 한 잠도 이루지 못한 채 5시경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비교적 일찌기 대회장인 광화문 세종로로 갔죠. 이른 아침 지하철 내부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가까운 역이 다가오자 차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운동복에 마라톤화, 모자를 쓴 참가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역 구내에는 끼리끼리 둘러모여 옷을 갈아입거나 몸을 풀거나 대회당일 컨디션을 조절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역시 제법 큰 대회를 넘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축제같았습니다.

사실 이 대회를 앞두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원래 큰 두려움 모르고 세지 못한 체질에 2년 반 달려온 거리였지만, 이번 대회는 약간 두려웠습니다. 지난 겨울 11월 초순 대회에 참여한 이래 겨울 달리기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12월과 1월은 단 한 번도 달리기 연습을 하지 못했습니다. 2월 중순에서야 조금 씩 달리기를 하였는데, 이번 겨울은 왜 이렇게 춥게 느껴지는지 연습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2008년 들어 첫 풀코스인 동아마라톤은 작은 두려움이자 설렘이었습니다.
전 날 밤 잠을 못이루었지만 그런대로 몸 상태는 즐거웠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것이 좋았고, 아는 후배, 친구, 선배를 만나서 출발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습니다.
2005년 9월 마라톤 달리기 연습을 처음 시작한 이후 네 번의 풀코스를 힘겹게 완주했습니다. 이 날 대회가 가장 어려울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달리기 기간에 제가 느낀 것은 마라톤이 아주 정직한 경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겨우내 훈련하지 않은 나의 잘못을 이 날 대회는 혹독하게 저를 꾸짖을 것이라는 걸 잘 압니다.
2008년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

숭례문의 아픈 상처를 돌아 달리는 마라톤 참가자들



처음엔 풀코스를 처음 달리는 후배와 함께 10킬로 지점까지 순조롭게 달렸습니다. 겨우내 열심히 연습해온 후배는 10킬로를 지나자 걸린 발동을 늦추지 않고 역시 조금씩 앞서 나갔습니다. 그 후로는 계속 저 혼자 달려야 했습니다. 광화문을 출발해 숭례문을 바라 보며 돌아 을지로, 청계천을 다리 건너 왕복하고, 다시 종로를 돌아 달렸습니다. 20킬로 지점까지 큰 무리없이 어쩌면 예상보다 잘 달릴 수 있겠다는 착각이 기분좋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마라톤은 착각하는 저를 용서치 않았습니다. 25킬로 지점 조금 못가서 나즈막한 언덕을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작은 걸음을 잘 넘었습니다. 그런데 25킬로 지점부터 다리가 무거워 지고 어깨가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오늘 죽음의 레이스가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5킬로 지점이후는 점점 속도가 느려져 그동안 잘 맞추어 오던 저의 페이스를 잃어버렸습니다. 30킬로 지점까지 하는데도 벌써 힘에 겨워 4시간 30분 페이스 메이커는 물론,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도 따라가기 벅찼습니다.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의 커다랗고 둥그런 노란풍선이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길가에 응원단과 자원봉사자가 그렇게 많은 대회인데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작은 희망 하나는 응원단이 많고 참가자가 많으므로 어느 정도 따라가면 완주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대회였습니다. 30킬로 지점에서 이 대회의 최대고비인 35킬로지점의 잠실대교 언덕은 정말 힘겨운 레이스였습니다. 힘에부쳐 더 이상 달릴 수 없고, 쥐나려는 다리를 멈추어 가로수를 붙잡고 풀어주어야 한 1~2백미터 달릴 수 있었습니다. 수차례 달리다 멈추어 다리 풀다 걷다를 반복하여 35킬로 지점의 잠실대교를 마주했습니다. 지난해가 생각났습니다. 비교적 쉽게 잠실대교를 달려서 건널 수 있었던 지난해를 연상하며 달리려 했지만 발걸음이 떼지질 않습니다. 결국 걷는 걸이가 더 늘어나 겨우 다리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점점 많아지는 거리의 응원단들, 자기 동호회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대열들을 지나 조금씩 조금씩 전진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간신히 5시간 내에 완주할 수 있을 것 같긴한데 좀더 쉬었다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질 않습니다. 아무리 달리려고 팔과 어깨를 힘차게 치며 나아가려고 해도 다리가 굳어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또 멈추어 기둥을 잡고 다리와 허리를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남은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보니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조금만 더 쉬면 5시간 완주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머릿속으로 옛날 코미디언 이주일의 실룩거리는 걸음걸이로 달려볼까 생각이 날 정도였습니다.

41킬로 지점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골인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만치 41킬로 푯말이 보이자 그 곳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렸습니다. 달린다고 해봤자 빠른 걸음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을 겁니다. 41킬로 지점이 되자 맥이 놓였습니다. 여기까지 너무 힘내서 왔더니 더 나아가기 힘들었습니다. 또 부지런히 가로수를 붙잡고 떠밀었습니다. 경직된 다리 근육과 어깨를 풀기 위함이지요. 반성하는 의미였을까요. 머리를 조금 수그린채 아스팔트만 바라보고 조금씩 달렸습니다. 잠실 주경기장 입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설마 이젠 달릴 수 있겠지. 남은 1킬로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요. 경기장 입구 터널을 지나 트랙을 4분의 3바퀴 돌아 드디어 골인했습니다. 4시간 56분. 간신히 5시간 내 완주에는 성공했습니다.

다섯 번째 풀코스 완주의 작은 기쁨보다 정직한 마라톤 앞에 나의 반성이 앞 섭니다. 연습없이 완주없다. 나는 마라톤 기록에 큰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풀코스를 고통없이 천천히 달려서 완주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런 나의 반성이 하는 일과 더불어 달리기 연습을 정직하게 하리라는 각오를 줍니다.
그래서 제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지 모릅니다. 늘 깨우침을 줍니다.
연습하면 쉽고 편하게 달리고, 연습하지 않으면 죽음의 레이스 마라톤.
우리의 커리어와 인생 또한 그렇지요.
마라톤은 정해진 코스라도 있습니다만, 우리 인생과 커리어는 정해진 코스도 없지요.
눈 뜬 마음과 준비, 이것이 커리어와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어제 마라톤 좋았습니다.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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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2007년 4월 22일) 마라톤 풀코스에 세번 째 도전했습니다.
아름다운 코스를 찾아 달리는 것은 마라톤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이번엔 춘천의 호반마라톤을 택했습니다. 영화 '말아톤'의 형진이가 달렸던 그 코스입니다.
호반의 가로에는 화사한 벗꽃이 꽃그늘을 드리우기도 하고, 바람으로 달려와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몸을 잠시 시원하게도 해 줍니다.

요즘엔 지난 해에 비해 강의가 많아져서 여기 저기 지방으로도 다니다 보니 공연히 바쁜 일정이 돼 버렸습니다. 핑계가 된 것인지 달리기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일주일에 일요일 하만 십 몇 킬로를 달렸으니 모자란 연습이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완주는 자신있었습니다. 세번 째 완주이니 시간단축은 못해도 완주는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었죠.

얼마 전 달리기 연습할 때 무릎 부상은 그런대로 거의 다 나아갔습니다. 날씨는 참 좋아서 아주 무덥지도 않고 약간 흐린 날씨여서 달리기엔 참 좋은 날씨였던 것 같습니다. 춘천의 코스는 초반 4킬로미터까지가 가장 어려운 난코스입니다. 계속 오르막길이죠. 그래서 초보자는 오버페이스를 하기 쉬운 곳입니다. 이런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오버페이스를 자제하면서 천천히 달렸습니다. 봄풍경과 호반풍경을 적당히 즐기면서 달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42.195 킬로미터의 반을 지날 무렵 지난 대회와는 다르게 조금 힘이 부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30킬로 지점은 왜이렇게 먼 것인지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5킬로 단위로 설치된 음수대에서마다 물을 마시고, 10킬로마다 있는 간식도 먹고 다리도 적당히 풀고 달렸지만 힘이 모자라기 시작했습니다. 30킬로를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지점부터는 발걸음을 옮기기 힘에 겨웠습니다. 도저히는 더는 달리지 못해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멈추어 서서 다리를 푸는데 앰뷸런스를 내 뒤를 따라왔습니다. 속으로 창피했습니다. 앰뷸런스 자원봉사자가 나오더니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줍니다. 내가 쥐가 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냐고 물으니 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다시 달렸습니다. 천천히 통증이 점점 심해져 오는 다리를 간신히 옮기며 달렸습니다. 이번 대회는 큰 대회는 아니어서인지 풀코스 신청자가 160명 가량 되어서인지 너무 외로웠습니다. 3백미터 가량 앞에 한 사람 있고, 2백미터 쯤 뒤에 한 사람 있는 외로운 행로였죠. 솔직한 심정으로 너무 힘들고 아파서 달리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회수차량을 탈까 생각했습니다. 순간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한참을 서서 고민했습니다. 얼마간 천천히 달리는데 수지침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서 손가락을 스무 군데도 넘게 사혈을 하고 다시 달렸습니다. 100리가 넘는 거리는 정말 짧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지난 대회까지 풀코스를 두 차례 완주했기 때문에 방심했던 나의 안일을 마라톤이라는 한계는 나를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걷다 달리다를 반복하여 운동장의 트랙을 천천히 돌아 간신히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제한 시간 4분을 남겨놓은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죠.
역시 인생과 닮았습니다, 마라톤은!  또 그렇게 힘들게 달렸는데도 달리고 나면 그 쾌감으로 멈출 수 없는 달리기 본능.

삶의 무게를 안고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나에게, 우리에게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꾸준히 연습하고 자신을 관리하면서 달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달리며 '질주본능'이란 말은 떠오르는데 하염없이 빠르게만 달릴 수 없는 그런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풀코스의 한계도 연습에 의해 정복되었듯이 인생 또한 나의 열정과 노력으로 조금씩 순응시켜 나갈 것 같습니다. 내가 인생에 순응하고, 인생이 내 앞에 순응하여 하나가 되는 그 날까지 나는 계속 달리고 싶습니다.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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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이다. 자동차나 집에 관해서 장마철, 겨울철, 휴가철이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과연 개인의 경력에도 휴가철이면 어떤 관리가 필요할까? 아니면 경영이 필요할까?

휴가는 쉬라고 있는 것

하늘에선 장대비가 몹시 내렸다. 환경파괴의 재앙인지 장마가 예전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이 다음에 올 더위는 얼마나 더울까. 비피해로 휴가철의 시작이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사람들은 휴가를 즐길 것이다. 먼바다로 가던 가까운 산이나 들을 찾던 휴가는 쉬는 것이다. 격무에 시달리고 야망에 지친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하는 한 켠의 겨를이다.
어떤 조사에서 휴가를 한 달 이상 다녀오게 되면 일에 복귀하는데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머리가 멍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휴가철에 쉬지 않고 과외공부를 할 것인가? 아니다. 휴가철엔 적당한 기간 충분히 쉬면서 뭔가 알찬 것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에게 휴가가 한여름에 있는 것은 다행이자 지혜이다. 가장 더워서 능률이 오르지 않을 때를 쉬고자 함이요, 한 해의 절반쯤 지난 시점에 매듭을 짓고 넘어가라는 기회가 아닐까. 지혜로운 휴가는 전반기 지친 육신을 달래고, 성과를 스스로 칭찬하며, 실패를 만회하여 반격을 준비하는 마음의 휴식이어야 한다. 조용하고 균형잡힌 삶을 행복의 요소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터득하는 마음챙김이어야 한다.

인생은 정육면체 : 균형잡기

모두가 생존경쟁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실상은 성공을 위한 경쟁이다. 일에서 성취를 거두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인생이 대체로 여섯 가지 면을 가지는데 이것들이 고루 발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과 직장, 가정과 사랑, 충분한 돈, 사회와 인간관계, 건강과 운동, 마음의 평화가 그것들이다. 시기마다 중요하게 부각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휴가철엔 특히 여섯 가지 면의 고른 균형잡기를 할 절호의 기회다.

가족(연인)과 함께 추억만들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아침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전쟁 같은 삶을 이어가지만 점점 외로워진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노력은 능률로 채워지지 않는다. 휴가철 가족 혹은 사랑하는 연인과 더불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보자. 주로 잠들어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중요하다.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가족과 사랑을 나누지 못하면 가족으로부터 왕따당한다. 사랑은 그렇게 자라는 나무이니까. 연인과도 마찬가지다. 지루해지기 시작한 연인과의 관계라면 들녁에 핀 야생화 한 송이, 바닷가 예쁜 조개껍질 하나 소중히 바쳐보자. 예쁜 추억이 많을수록 인생의 여섯 가지 측면의 하나인 가정과 사랑의 면이 충실해 진다.

건강상태를 확인 점검하기

일, 사랑, 돈, 친구,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지라도 건강이 상하면 모든 게 소용없어진다. 남들이 다하니까 나도 하는게 아니라 행복한 삶의 주인인 나의 건강을 꼭 확인해야하는 건 나의 권리이다. 스트레스, 비만으로 인한 질병은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꼭 치유해야 할 증후군들이다. 이상한 곳은 진단받고, 아프면 치료받아야 한다. 이상이 없다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해야 한다.

나의 성과를 칭찬하기

벌써 한 해의 반 이상이 훌쩍 흘렀다. 연초에 세웠던 아름찬 계획들은 잘 진행되고 있는가. 지금 직장과 일에서 계획했던 성과는 그 빛을 보고 있는가.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지만 성과를 낸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자. 그렇다면 못한 부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너무 야단치지 말자. 단, 혁신할 점은 찾아야 한다. 혁신할 계획과 습관을 짧게 리스트로 정리하여 당장 시작하되 휴가철 후에 본격 가동하자. 그 좋은 방법이 이력서를 다시 작성하는 것이다.

이력서를 다시 쓰기(업데이트)

평생 한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때가 있다. 이 시절 사람들은 이력서를 한번도 고쳐 쓴 경험이 없다. 이직을 감행할 시기이건 아니건 휴가철엔 이력서를 다시 쓰는 게 좋다. 전반기에 내가 이룬 업적도 기록하고, 후반기 달성할 목표도 기록해 두자. 시간이 흐르면 내 성과도 잊기 쉽고, 목표도 흐려지기 쉽다. 이력서를 새로 쓰면서 많은 생각이 흘러간다. 소중한 인재인 나의 이력서는 어떻게 채워지고 가꾸어지고 있는가. 다시 쓰는 나의 이력서는 어떤 역사로 채워질 것인가.

마음 챙기기

‘마음챙김(Mindfulness : 깨어 있는 마음)’이 부각되고 있다. 마음이 뇌와 몸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즐거움, 행복감, 마음의 안정과 평화, 평온함과 같은 감정을 느낄 때는 실체로 건강한 에너지와 화학물질이 분비된다고 한다. 반대로 두려움, 분노, 죄의식, 슬픔과 같은 감정을 느낄 때는 질병과 죽음에 이르는 화학물질이 분비된다고 한다. 일상사는 어쩌면 독성물질을 분비하는 감정들이 많을지 모른다. 휴가철 마음챙기기를 통해 긍정적 마음의 상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나만의 희망 찾기

모든 사람에게 오늘이 낙관과 희망에 넘치진 않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오늘이 절망적이거나 큰 좌절에 처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나 희망은 있는 법이다. 희망은 가능성이 희박해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2~5%의 말기 암환자들이 치유된다고 한다. 바로 이 2~5%에 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 그것이 희망이다. 진정한 희망은 현실을 직시하여 불안과 위협요소들을 인식함과 아울러 이것을 이겨서 밝은 미래를 꿰들어보는 마음상태일 것이다.

추운 겨울에서 시작해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지나 지치기 쉬운 한여름까지 쉼없이 일한 당신, 떠나라. (2006-07-21 16:37 작성)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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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관리에 대한 세가지 관점과 철학
-다시 생각하는 경력관리의 참된 의미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평생직업의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 평균수명이 갈수록 길어져 지금 20대 청년들의 평균수명은 90세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경력, 경력관리, 커리어에 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경력관리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철학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자칫 경계해야 하는 관점은 경력관리에 관한 '요령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부적으로 경력관리의 실제로 들어가면 요령도 필요할 수 있지만, 경력관리의 본질 자체는 얄팍한 '요령'이 아닙니다.

다시 강조드리지만, 경력은 일에 관한 개인의 역사적 과정입니다.

경력의 본질적 의미에 따라 경력관리를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력 및 경력관리의 본질이나 실제 적용면을 꿰뚫는 관점과 철학을 알아보겠습니다.

제1관점 : 경력과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제2관점 : 경력관리의 성패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제3관점 : 경력은 무한히 개발할 수 있다.


제1관점 : 경력과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경력이 개인의 일에 관한 역사적 과정이므로 경력은 인생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경력과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관점을 명확히 해야 개인의 일에 관한 역사적 과정을 주인다운 태도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경력관리는 회사도, 집안도, 국가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제2관점 : 경력관리의 성패는 내게 달려있다.

개인의 경력은 성공한 경력과 실패한 경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력 및 경력관리의 주인이 '나 자신'인 만큼, 경력관리의 성패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나의 출신학교도, 나의 첫 직장도, 나의 집안배경도 아닌 바로 경력의 주인인 나 자신이 경력관리의 성패의 주요인인 것입니다. 사업 아이템은 시장(객관적 환경)에서 찾고, 사업의 성패는 주체, 즉 나에게서 찾으란 말이 있습니다. 경력관리의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자신에게서 찾고자 하는 것이 경력관리의 중요한 관점의 하나입니다.

제3관점 : 경력은 무한히 개발할 수 있다.

인생만큼이나 경력도 파란만장한 곡절 끝에 멋진 결실을 맺는 분들도 많습니다. 직업과 경력에 관한 많은 역사는 실제로 경력의 개발한계는 없으며 무한히 개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앞선 1,2관점에서 세워진 확고한 주인다운 경력관리의 관점과 철학은 바로 열정의 엔진에 시동을 걸러 경력을 무한히 개발할 수 있도록 끌어당깁니다.

경력관리에 관한 위와 같은 세가지 관점과 철학은 실제로 경력관리를 해 나가는 실전에 있어서 높은 활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경력관리의 실제란,
자기진단, 목표설정, 경력계획, 경력경로의 설정, 실행, 재도전이라는 단계를 따라 운영되게 되는 것입니다. 경력관리에 관한 주인다운 관점과 철학을 취하느냐, 아니면 어떻게 하면 요령만 터득할 것이냐에 따라 경력관리의 각 실제단계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이 항해지도에 목표점을 찍고,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고, 돛을 달고 운항하는 하면서 날씨나 바람탓을 하지 않고 꾸준히 목표점을 향해 운항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선장은 배와 항해의 안전의 책임도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모든 풍랑과 암초를 예상하며 앞으로 배를 운항해 가는 것입니다. (2006-04-26 15:39:30 작성)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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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길을 가는 대장금
개인의 인생에서 커리어체인지를 단행하게 되는 것은 반드시 계획적으로 평온하고 좋은 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직장에 근무하면서 자신의 경력계획에 따라 미래를 계획하고 시행하는 것은 정상적인 커리어체인지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지향하고 도전하게 되는 일입니다. 반면 전혀 뜻하지 않은 인생의 어려운 굽이굽이 마다에서 커리어의 주인공의 각별하 노력과 결단으로 커리의 뒤안길을 꿋끗이 헤쳐온 커리어의 대전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현실과 역사 속에는 숱한 고난과 역경속에서 훌륭하게 커리어체인지에 성공한 사례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이루어낸 놀라운 커리어체인지 가운데는 고려시대 문익점 선생이 위험을 무릅쓰고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것을 떠올립니다. 또한 신유사옥때 천주교인으로 지목되어 18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조선후기 실학자로서의 커다란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낸 정약용 선생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커리어체인지의 훌륭한 사례로 최근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의녀 서장금의 커리어체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실존인물 의녀 장금의 전설적 커리어성공담이기도 합니다.

5백년전 봉건질서 체제하의 조선시대 천민의 신분으로 각고의 노력끝에 궁중 최고의 요리사로 되었다가, 다시 관비로 전락하였던 천민 장금. 파란만장한 운명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각고의 노력으로 의녀로 변신에 성공, 다시 궁중에 들어가 조선 최고의 의녀로서 대성취를 이룬 장금. 중종임금으로부터 '대장금' 호칭을 하사받고, 어의를 비롯한 남자 의원들을 제치고 최초로 임금의 주치의가 되었던 전설적인 여인 장금의 성공적인 인생담이자 커리어체인지의 전설적 이야기입니다.

드라마적인 허구와 각색은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 의거해 알려진 의녀 서장금의 실존과 그 주변이야기는 참으로 오늘 커리어 관리와 커리어체인지를 생각하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교훈을 안겨줍니다. 물론 당시에는 직업의 종류도 얼마되지 않았고 경력이란 말 자체가 없거나 관심의 대상이 아니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5백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직업적 관점에서 보면 오늘의 커리어관리에서도 서로 통하는 빛나는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종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켰습니다. 수라간(소주방)에서 궁중요리를 배우고 익혀 최고의 요리사가 된 것으로 시작해서, 제주로 쫒겨났을 때 의술을 배우기 시작하여 최고의 의녀가 되어 다시 궁중으로 들어가려한 목적의식은 얼마나 한 개인을 방향성있게 이끌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둘째, 각고의 노력으로 커리어관리를 뒷받침했습니다.
한 개인이 두 개의 전문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장금은 요리와 의술의 두 분야에서 최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선택한 직업과 일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유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셋째, 고난과 시련을 딛고 선 불굴의 의지와 커리어의 대전환 즉 커리어체인지를 감행한 것입니다.
수라간 최고의 요리사로 되었다가 죄인으로 몰려 제주로 귀향가서 관비로 전락한 개인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절망에 가깝습니다. 그런 운명에 처한 한 여인이 더군다나 봉건제하의 조선시대에서 다시 궁중에 들어갈 수단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장금은 우연한 기회를 필연으로 바꾸어 부단히 의술을 연마하여 의녀가 되었고, 다시 궁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관비에서 의녀로의 대전환, 그것은 가장 어려운 역경에 처한 한 개인이 선택한 발상의 대전환으로 감행한 커리어체인지의 전형적 모범입니다. 오직 자신만이 커리어체인지를 감행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한 의녀 장금을 통해서 현대에서도 하기 힘든 커리어체인지의 큰모범을 보는 듯합니다. 역경과 시련이 인간을 나약하거나 힘겹게 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딛고 일어선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일으켜 개인의 경력개발과 발전을 이루게 하는지 보게 됩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커리어체인지의 전형입니다.

우리의 관심 keyword인 커리어 관리와 커리어체인지! 역시 그것은 뚜렷한 목적의식과 그 주체인 개인의 의지로부터 시작하여 피나는 노력으로 영그는 아름다운 종합예술인 것 같습니다. (2004-03-03 01:41:52 작성)
Posted by 커리어심리학자 서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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