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종 IT(인터넷,S/W)
직      무 연구,개발
경      력 3년이상~5년미만
질문제목 IT분야에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데요?
질문내용 저는 IT 엔지니어로서 중국어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전산실에 취업하기를 희망합니다. 혹은 중국과 관련이 있는 회사의 전산실 혹은 개발회사로 취업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제목 IT엔지니어의 중국취업
답변내용 귀하는 중국어 구사가 가능한 IT엔지니어로 이해됩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전산실 혹은 중국과 유관한 회사의 전산직에 취업을 희망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대한상공회의소나 중소기업진흥공단 홈페이지의 내용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다만, 그 기업들이 모두 전산직을 원하는 건 아니니까 잘 검토해 보셔야 합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이미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서는 대부분 인원이 셋업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후자쪽 즉, 중국관련해서 개발하는 IT회사들 중에서 적극적으로 찾아보시는 편이 더 유리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감사합니다.
업      종 소비재
직      무 마케팅,홍보
경      력 15년이상
질문제목 기업내 홍보분야의 이직 상담문의 드립니다.
질문내용 저는 만 41세로서, 대기업의 홍보실에서 약 15년 이상 홍보업무 전분야에 걸쳐 다양한 업무를 해왔습니다. 현재는 회사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기획실에서 홍보업무를 비롯한 일반기획, 주식, 이사회 관련업무 등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원래 전공은 디자인 계열이었으나 그룹홍보실에서 언론홍보 및 사내홍보, 홍보물제작, 광고업무 등 홍보의 전분야에서 홍보팀장의 역할을 해왔으나 현재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여 이직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무년수가 많다보니 이직에 어려움이 따르고 외국어가 그다지 좋지 못한 관계로 더욱 이직이 힘든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변제목 40대 초반의 이직이 어렵다면 창업도 고려해 보십시오.
답변내용 귀하는 42세로서 홍보분야에서 15년이상 근무하신 전문가로 인정됩니다. 원래 홍보전문가로 탄탄한 경력을 쌓으신 후 기획실에서 관리업무까지 하고 계신 걸로 이해됩니다. 사정상 이직을 하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귀하께는 어느 정도 규모이상의 회사의 홍보실 임원이 적임이겠으나, 최근 중규모이상 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내부 승진을 통해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만 임원급 홍보 담당 경력사원을 외부에서 채용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기 때문에 객관적인 여건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경기이기 때문에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회원님의 경력 및 연령이 상당히 무겁고 채용시장의 객관적 어려운 사정을 고려한다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job을 서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유명 구인구직 site등을 통해 적당한 job을 꾸준히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저희와 같은 서치펌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아주 급성장하는 회사가 아니고서는 특별한 이유로 홍보담당 임원을 외부에서 영입하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에 적극적인 생각이 함께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창업 등의 대전환도 적극적으로 모색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40대 초반은 일부 영업이나 관리직을 제외하고는 이직 자체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재의 실정임을 감안한다면 고용시장 추세에 수동적으로 따라 가는 것보다 적극적인 생각의 전환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업      종 IT(인터넷,S/W)
직      무 연구,개발
경      력 3년이상~5년미만
질문제목 자격증만으로 이직가능성 여부
질문내용 저는 웹개발자로 3년이 조금 넘는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개발 프로젝트 보다는 유지 관리를 주로 해왔습니다. 그래서, 서버 및 DB관리를 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서버를 직접 설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스스로 웹개발의 한계를 느껴서 학원을 수강하게 되고, CCNA를 취득한 후에 몇 개월 전에 CCIE도 일본에서 획득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구직이 쉽지가 않군요.
경기가 안 좋아서 사람을 채용하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채용하는 곳마다 일단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전부 경력직 위주라 연락이 오는 데는 없군요. 어쩌면 CCIE에 대한 부담때문에 연락을 못하는 걸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격증만으로 헤드헌팅의 대상이 되기는 아무래도 힘들겠죠?
일단은 아무데나 들어가기 보다는 좀 기다려서 자격증에 맞는 곳에 들어가고 싶은데 잘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답변제목 서버유지 관리직의 경우 자격증만으로는 이직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답변내용 귀하가 말씀하신대로 여러군데 채용하는 회사에 지원하시는 것은 참 좋은 방법입니다.

웹프로그래머로서 서버 및 DB의 유지관리 업무를 주로 해오시다가 CCIE자격증을 취득하신 후 이를 활용한 취업을 생각중이신데, 헤드헌팅을 통해 자격증을 활용한 취업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즉 대부분의 기업들이 헤드헌팅을 이용해 인재채용을 하는 경우 해당분야의 기 전문가 또는 경력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자격증만으로 입사 또는 이직이 가능한 경우는 아주 예외적으로 희귀한 자격증일 경우에 가능합니다.

따라서 귀하의 경우 이미 하고 계신 것처럼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한 다양한 채용기회에 지원해 보시는 것과 아울러 동원 가능한 인맥을 활용하여 회원님을 잘 아는 분들이 추천하는 회사에 지원하는 것입니다. 잘 아는 분이 추천하는 회사는 보통 회원님의 경력과 실력을 신뢰하고 내부 업무의 전환을 통한 전직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면접시험에서 응시자들이 면접관들 앞에서 답변하는 데는 종류로 보면 수도 없이 많다.
그렇지만 개론적으로 답변에 필요한 기본전략을 먼저 익힌 후 세부적인 요령과 연습이 있다면 효과는 가장 좋을 것이다.
그 전략은 간단하게 말해서 언행일치로 요약된다.

: 말은 적극적이고 간단명료하게 하라
▶간단명료하게 답하라
▶결론부터 말하라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라

: 웃는 얼굴로 침착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라
▶침착하고 자신감있게 행동하라
▶예의바르고 정확하게 행동하라
▶틀린 답이란 없다. 부족한 대답에도 흔들리지 말고 침착을 유지하라.

: 일관되게 자신을 피력(PR)하라
▶시작과 끝을 일관되게 유지하라
   : 면접 답변의 한 두마디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 보다는 전체적인 인상과 태도, 자세와 지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그렇다면 면접답변이 매 질문마다 일관성 없다면 좋은 평가(점수)를 받기 어렵다.
▶일회답변으로 끝내도록 답변하라
   : 한번의 답변으로 가급적 일단락 짓도록 하는 것이 좋다. 대개의 경우 추가질문이 쏟아질 때는 면접관의 적극적 관심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추가로 이중 삼중의 고난을 겪을 수도 있다

: 치열하고 솔직담백하게 임하라
▶치열한 입사의지를 보여라
  :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종국적으로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을 채용한다.

가끔 공중파 방송의 골든벨 프로그램을 볼 때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문제를 풀며 마지막 50문제까지 다 풀면 골든벨을 울리는 프로그램이죠.
순심고 윤문열 굴

이번에 2006 골든벨 왕중왕에는 시골의 고등학교 1학년생이 대도시 선배 학생들을 제치고 왕중왕을 차지해 눈길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해 동안 골든벨을 울린 실력자 가운데서 으뜸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는 지난 5월 프로그램에서도 찬스 한번 쓰지 않고 50문제를 모두 맞혀 놀라운 실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군 전체 고등학생이 500명밖에 안되는 시골의 작은 학교 고등학교 1학년생이 이룬 성취는 놀라움과 더불어 적잖은 기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학생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순심고 1학년인 윤문열군이라고 합니다. 학교 이름이나 그의 얼굴이나 순진하고 맑디 맑은 모습이어서 얼마나 참신하고 대견한 지 모르겠습니다.

그 어린 학생의 장래 희망은 의사라고 합니다. '국경없는 의사회'같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합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불우한 이웃들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별다른 과외수업을 받은 것도 아닌데도 늘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윤군은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시골이라 많이 가르쳐주지도 못했는데 아들이 이룬 놀라운 성취에 대해 무척이나 대견스러워 하십니다.

윤군은 자신의 꿈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책읽기를 통해 그 꿈을 향한 행진을 어릴 적부터 시작한 모양입니다. 가난한 이에게도 비교적 평등한 학습수단이 책읽기 입니다. 첨단문명과 디지털학습이 효과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책읽기는 뜻을 품은 사람이 그 뜻을 펼치기 위해 필연적으로 배우는 수단입니다.

경제력=경쟁력이 되어 버린 삭막한 시대에서 시골이지만 자신의 꿈을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윤군이 무척 대견스럽습니다. 물론 그가 이룬 성적이나 성취만을 두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렇게 드물게라도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도 큰 꿈을 가진 어린 소년이 있다는 사실에 기쁠 따름입니다. 경제력이 약해 좋은 환경을 주지 못해 학업성취는 물론이고 꿈마저 접거나 유실되어가는 시대에 샘물같은 이야기 입니다.

나는 그 소년이 품은 이웃을 향한 고운 마음이 한없이 예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세상이 삭막해도 아직은 이웃을 향한 마음이 아름답고 이 마음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은 소년의 꿈과 노력, 성취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젊은이들, 취업희망자들,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오늘의 생활인들에게 활력의 메시지가 되길 바랍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2006/12/14 14:0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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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향남 선수의 경력과 도전에 관하여  (0) 2007.01.21

올 해(2006년)따라 송년모임이 많아졌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고교동기회, 반창회, 대학 학과동창회, 동아리 송년회, 옛직장 후배들송년회, 또 다른 모임 송년회들. 어떤 모임에서 강의한 수강생들과의 종파티 겸 송년회 등.

30대 초반에는 동창회, 송년회 이런 모임이 재미가 덜 했다.
그런데 요즘 모임은 제법 인간미가 묻어나서 아주 재밌다.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은 고교동기회, 반창회다. 심지어는 고교 2학년 반창회도 올해는 했다.

40을 넘어서니 친구들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 회사원, 공무원, 사업가, 학자, 예술가, 정치가 직업도 다양하다. 모임마다 특징도 있는데 고교동기회나 반창회는 그 세월의 크기로 보면 아주 오랜 세월 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허물없이 가까워지는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못마시는 술을 조금씩 홀짝거리며 쟁쟁 잔을 부딪히며 마시는 술은 그대로 우정을 마시는 것일게다.

고1때 아주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20년이 훨씬 지나서 만났다. 그 시절 한강 둔치에서 하던 야구시합도 기억해 냈다. 그 친구다 던지다 난조에 빠지자 내가 구원투수로 나섰다는 둥의 이야기는 너무 재밌고 신나는 기억들이다. 같은 반인적이 없어서 얼굴도 생경하던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 주기도 하고, 내가 일하는 업무를 알고 앞으로 재밌게 해보자는 전화도 받게 된다. 그 당시 서로 좋은 인상으로 호감을 가졌던 친구로부터 기회를 잡아 소주 한잔 하자는 메일도 받았다. 뛸듯이 기쁜 일이다. 마치 오랫동안 짝사랑한 남녀가 한 쪽의 고백으로 만남을 앞둔 사람들처럼.

앞으로 늙어 이 생명을 허공에 날릴 때까지 친구들을 다 기억하고 기억속에 자리잡을 수는 없을 거다. 그래도 한 해 한 달 하루를 살면서 조금씩 친구들 삶을 지켜보고 때론 마음으로 거들기도 할 거다.

옛직장 후배들이 잊지 않고 1년에 서너번 모임을 갖는 건 또한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번엔 딱딱한 탁자와 자욱한 술자리를 벗어나 와인파티를 한단다. 재밌는 아이디어다. 어느 스튜디오 하나를 가볍게 빌릴 수 있어서 각자가 와인 한 병씩을 가져오란다. 그런데 참 그 중 선배격인 나는 술을 못마신다고 그냥 맨 손으로 와도 좋단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난 언제나 술을 잘 마실 수 있을까.

어제는 대학친구들 송년회 였는데 나더러 술 좀 늘었단다. 아닌데~ 그냥 똑같은데.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송년회들이 한 해를 마감하는 자리이기도 한데, 그건 결국 나의 몫이란 걸 안다. 그 친구에겐 그 친구의 몫이고. 송년회는 내게 친구란 것, 믿음이란 것, 의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것으로 족하다.

요즘 경제경영, 자기계발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때 인맥관리 운운하는 말들이 많다. 그런데 정작 소중한 친구들, 선후배들과의 인연과 믿음을 인맥이란 경제자산과 같은 말로 대치하는 것은 너무 값싸서 안내킨다. 믿음과 의리로 이어지는 인맥 이상의 가치, 그것이 우리들 사람들에겐 우정이다. 사랑이다. 사람들 사이다. 사람이다.  (2006/12/06 00:17 작성)

 전자시계가 아날로그시계를 압도하지 못하는 이유

 

198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그 당시 전자시계가 유행하면서 전자시계가 아날로그시계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날로그시계는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시각을 숫자로 보여주는 전자시계에 비해 사람들이 아날로그시계를 더 좋아하는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시침과 분침이 있는 아날로그시계는 현재 시각만을 숫자로 보여주는 전자시계와는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시간단위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시간이상의 정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분침이 20분을 가리키고 있다면 20분이 지났으니까 일을 서둘러야 한다든지 아니면 몇 시까지는 40분이 남아 있으니 좀 느긋하게 해도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것은 아주 단편적인 비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시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고 예고하는 기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단순한 정보를 넘어 시간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래서 결국 아날로그시계는 살아 남았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다.

 

커리어경영의 시간성

 

경력(Career; 커리어)은 한 사람의 일에 관한 역사적 흐름이기 때문에 과거.현재를 아울러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력을 출발하기에 앞서 현명한 사람들은 자기진단을 하고, 목표를 뚜렷이 설정한다. 경력경로(Career Path)를 세워 꾸준히 노력을 전개한다.

 

경력도 시계에 비유할 수 있다. 전체 인생에서 평균수명인 80세까지를 시계의 한 바퀴로 놓고 보기로 하자. 나이가 40세인 사람은 시계로 보면 30분에 와 있는 셈이다. 이것은 그 사람의 인생시계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나이에 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졌고, 되고 싶은 것이 되었다면 30분의 시각은 아직 30분이나 남은 여유 있는 시각이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30(=40)밖에 남지 않았다. 빨리 궤도를 바로잡고 속도를 가그쳐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럴 경우 특히, 전자시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40이라는 나이는 퇴출을 예고받는 시점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아날로그시계의 시판을 바라보면 좀 다르다. 60분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아있다. 그 인생의 시각까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잘 되고 있는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초과달성한 성과에 자만하지 않으며, 부족한 결실에 좌절하지 않게 된다.

 

당신의 Career 시계는 입니까?

 

시침과 분침은 아날로그 기판 위를 서서히 돌아간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지만 각자 개인의 커리어 시계는 각자가 돌리는 것이다. 자연의 시계가 가르키는 그 시각에 나의 커리어시계는 몇 분을 가리키고 있는가. 각자의 커리어시계를 디자인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에 명확한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

 

커리어의 목표에 관한 사항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갖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큰 목표는 몇 가지 되지 않겠지만, 작은 목표는 수십 가지, 수백 가지에 이르러도 상관없다. 단지, 자신이 명확히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목표달성을 위한 요구사항

이미 이전시기에 갖추어 놓은 것들의 리스트 부모로부터 받은 것, 사회적 환경을 모두 포함-와 자신이 만들어야 할 요건들로 나뉜다. 이것 또한 세부적인 항목들로 쪼개어 보면 수십, 수백가지에 달할 수도 있다.

 

경력평가에 관한 사항

나는 목표달성을 위해서 요구사항을 잘 실천했는지?

잘 한 것은 무엇이고, 못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

갖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되었는지?

되고 싶은 것이 되었는지?

 

새로운 경력경로에 관한 사항


나는 이대로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되는가?

지금 당장 내가 시작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만들어야 할 요건들 가운데 순위를 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답하고 점검하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각자의 경력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는 각종 디지털 기기와 장비, 소프트웨어들이 필요하지만, 정작 자신만의 커리어를 제대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시계의 통찰력이 필요한 때이다. 그것이야말로 내면의 자기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난관은 있으되 마지막에 패배를 모르는 필승불패의 커리어를 경영해 나갈 수 있다. (2006-10-11 작성)

요즘 지난 2005년 6월 12일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애플과 픽사(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인 스티브 잡스의 연설이 감동과 화제를 던지고 있다. 작년에 반짝 관심이 오르다가 묻혀버린 이야기 였는데 최근 동영상이 한 네티즌에 의해 공개되면서 새로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지난 2006년 7월 포츈에 "잭웰치의 경영지침서를 찢어버려라"란 글이 던진 파문과 환경 때문일 것이다. 스티브잡스는 실제로 '포스트 잭웰치'로 급부상하고 있는 경영자다.

지난 해 나도 감명깊게 읽고 가까운 이들에게 추천했던 스티브잡스의 연설을 다시 원문을 번역한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원문에 충실하기 위해 지나친 의역은 피했다.

직업세계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그가 처한 곤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를 여는 것이 흥미롭다. 그뿐만 아니라 동서양과 고금의 많은 직업과 일에서 전환을 이룬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스티브잡스에 있어서는 일을 사랑하는 열정과 자기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바닥에서 정상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처럼 보였다. 그는 기업경영에서도 성공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관심있는 대목은 그가 자신의 커리어경영에서 빛나는 성취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기업도 사람이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면 기업경영과 커리어경영도 다른 맥락이 아닐 터이다.

오늘날 인생에서 직업과 일이 차지하는 인생에서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가볍고 얄팍한 요령보다는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삶의 무게가 실린 중대한 결단을 나는 권한다. 거친 직업세계, 경제세계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헤쳐 갈 것인가. 여기 그 좋은 예시를 함께 보자. 가벼운 마음으로. 열린 심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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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Ceo, Apple and Pixar Animation Studio (2005년 6월 12일, Stanford University)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으세요"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오늘 이 자리가 대학졸업식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이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딱 세가지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역자주, 또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리드 칼리지(Reed College)에 입학한 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정말 그만두기 전에 18개월 정도는 청강생으로 머물렀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자퇴했을까요?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의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서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들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어떻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그들은 "물론이죠."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양부모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퍼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들이었던 부모님들이 힘들게 모아두었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 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양부모님이 평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 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흥미있는 강의만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숙사에 머물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 방의 마룻바닥에서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 하는 콜라 빈 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Hare Krishna temple)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한 가지를 예를 들겠습니다.

그 당시 리드 칼리지(Reed College)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 먹고 서체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Serif)와 산세리프(san serif)체들,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공간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멋지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저는 매료되었습니다.

이런 어떠한 것도 내 인생에서 실질적으로 적용될 한 가닥 희망도 없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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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Macintosh) 컴퓨터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디자인해 모든 것을 맥(Mac)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다양한 서체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기능은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윈도우즈도 맥을 모방했기 때문에 아마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서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시절에는 그 점들을 앞을 향해서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뒤돌아보니 아주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앞을 향해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과거를 뒤돌아보며 도출할 수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저의 두번 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와 저는 20세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APPLE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만에 애플은 차고의 2명에서 4천명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 나이 30이 되기 1년전에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고,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당신이 세운 회사에서 당신이 어떻게 해고될 수 있냐구요? 글쎄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고용했고, 처음 1년 정도는 잘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젼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30살에 쫒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입니다. 제 성인이된 제 인생의 전체를 쏟아부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파괴되었습니다.

전 정말 몇 개월 동안 무엇을 해야할 지 몰랐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통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 밥 노이스(Bob Noyce, 인텔의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저는 완전한 공공연한 실패작이었고 차라리 실리콘밸리에서 도망치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제게 새벽이 동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의 사건들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전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게 있어 최상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런것들이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의 하나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라는 회사와 또 다른 회사인 Pixar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굉장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Toy Story)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일련의 변화로 애플은 NeXT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왔으며, NeXT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핵심에 있습니다. 또한 로렌스와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만약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 중 어떤 한 가지라도 겪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 봅니다.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뒤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제가 계속 나아가도록 지켜주는 유일한 것은 제가 한 일들을 사랑했다는 점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의 일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당신 스스로가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세요.

저의 세번재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인용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33년이 지나서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하기 원하는가?' 아니오란 답이 계속 나온다면 뭔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 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모든 것들은 죽음에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이 없기에 당신의 심장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는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저에게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치워야 한다는 말이었고, 임종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 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라는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진단을 받은 채로 하루종일 보냈습니다.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체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 주기를,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가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 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운'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그것은 정말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시오. 도그마-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The Whole Earth Catalog)'란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파크(Menlo Park)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 넣은 책이었습니다.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35년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 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 쯤엔 최종판을 내 놓았습니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 였습니다. 최종판의 뒷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Stay hungry stay foolish)". 그것이 그들이 서명한 마지막 고별 메시지였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Stay hungry. Stay foolish). 그리고 나는 내 자신에게 늘 그렇게 소원했습니다. 자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그렇게 가길 바랍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Stay hungry. Stay foolish)."
대단히 감사합니다.

*원문 :
http://news-service.stanford.edu/news/2005/june15/jobs-061505.html

(2006-09-08 16:37 작성)

첫눈의 신선한 충격

지난 2006년 6월 어느 날이었다. 2005년 출범한 국내 신생 검색엔진 업체 ‘첫눈’을 놓고 국내 검색포털 1위업체인 NHN과 세계 1위 검색엔진인 구글이 물밑에서 인수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성격상 과점시장인 검색엔진 시장에서 새로운 검색엔진을 들고 진입을 노린 첫눈의 시도가 관심을 끌었던 터였다. IT업계에서 많이 멀어져 검색시장의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안목이 부족한 터라 ‘첫눈’의 시도와 기술은 새로운 흥미거리였다. 그 뉴스는 결국 첫눈이 NHN에 인수되었다는 보도로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내가 관심가지는 것은 검색시장과 첫눈의 미래, NHN의 일본검색시장 진출이라는 비즈니스적 관점만은 아니다. 첫눈의 새로운 시도가 커리어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많은 경력자들과 직업전문가인 나에게 무릎을 치게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운 검색시장에서 ‘첫눈’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데, 하물며 다른 비즈니스와 커리어경영에선 왜 못한단 말인가? 몇 년 전 구글의 태동에서 한 번 놀라고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보다.

구글 검색의 바다를 가르는 물줄기

1994년 가을 모질라, 트럼펫 윈속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웹브라우저가 처음 선보였다. 이 혁명적 변화는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사용자를 폭증시켰다. 인터넷의 대중화시대 첫 시기 인기사이트들은 당연히 검색사이트였다. 야후, 라이코스 등이 1994년을 풍미했고, 뒤이어 알타비스타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당시 알타비스타는 야후가 검색하지 못하는 수많은 정보를 찾아주었다. 이것도 모자라 1997년 스탠퍼드의 두 대학원생은 전자도서관 프로젝트를 연구하던 중 새로운 검색엔진 구글을 태동시켰다. 검색엔진이 극도로 상업화, 포털화 되면서 지저분한 첫 화면에 실증난 사용자들은 구글의 심플함에 매료됐다. 또한, 예상치 못한 뛰어난 검색결과에 랭크방식은 더 새로운 매력을 소박하게 뽐냈다. 1999년 서비스를 본격 시작한 구글은 오늘까지 그 정확한 숫자를 모를만큼 거침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몇 년 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던, 야후의 아성이 흔들리고, 마이크로소트까지 위협한다는 구글은 커리어관리와 경영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커리어경영에 있어서도 블루오션(blue ocean), 니치(niche), 틈새는 어느 업종, 어느 직종에나 가증하다는 것이다.

커리어경영의 블루오션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

최근 년간 블루오션 전략이 경영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붐을 일으켰다. 커리어블루오션이란 말을 쓰는 직업전문가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커리어경영이나 커리어관리분야에 있어서 블루오션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왜 일까? 수많은 커리어경영의 블루오션 사례가 있지만 알려진 것은 CEO가 되어 성공한 기업을 만들었거나, 막대한 재부를 거머쥔 경우만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리어 세계에는 다 일등을 할 필요는 없다. 영원한 일등도 없다. 자신이 만족하고 자신이 즐겁게 일할 수 있으며, 적당한 경제적 대가를 받을 수 있으면 된다. 치열한 경쟁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남고, 최소한의 일가를 이룰 수 있다면 커리어의 블루오션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만의 커리어 블루오션

커리어의 새로운 바다를 찾는다 해서 무작정 항해도중 무인도를 연상해서는 곤란하다. 한 개인의 커리어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이 찾을 수 있는 커리어의 블루오션이나 니치는 그 사람이 가장 잘 찾을 수 있다. 직업전문가가 찾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유망직종, 뜨는 직업 이런 종류들은 학원이나 교재판매상에게 유익할 뿐 정작 커리어 블루오션과는 거리가 멀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면 이미 레드오션이나 다름없다.

커리어의 블루오션은 극히 시대친화적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고, 시대의 고난을 넘어 시대의 미래를 보려는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커리어 블루오션 찾는 비결

학문적, 경영학적 연구를 통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경험을 통해 커리어의 블루오션을 찾는 비결은 추출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수직적으로는 업종, 수평적으로는 직무, 시간적으로는 미래, 기술적으로는 신기술, 전문적인 서비스회사(Professional Service Firm)와 관련한 곳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

  1. 종사중인 산업을 수직적으로 관찰한다.
  2. 전문 직무를 수평적으로 관찰한다.
  3. 해당 산업과 직무를 수요자 입장에서 보아 수요가 증가하는 곳을 찾아본다.
  4. 전문분야(산업 또는 직무)와 신기술이 융합한 분야를 살펴본다.
  5. 지식산업시대 전문서비스업과의 연계고리를 찾는다.
  6. 전문적인 분야와 하고 싶은 분야와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7. 시대변화에 민감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분야를 찾는다.

커리어의 새로운 길이나 블루오션은 사실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자도서관 프로젝트에서 구글이 탄생하듯이, 지식검색과는 또 다른 차원의 중복검색이 첫눈을 잉태시켰듯이 현재상태의 모자람과 답답함, 수요가 있을 법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커리어 블루오션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21세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새로운 직업과 전문분야의 춘추전국시대가 될 것이다. (2006-09-05 14:26 작성)

 최향남선수의 경력과 도전에 관하여
 -한 늦깎이 투수의 메이저리그 도전

나는 일과 직업, 경력과 그 변화에 관해서 관심이 많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나 평범함 속에서도 빛나는 경력을 가꾸어 가는 사람을 보면 절로 마음이 갑니다.

최향남이란 야구선수를 아세요?

최향남선수

저는 프로야구 열혈팬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 이름이 낯설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이 선수를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모처럼 최향남 선수라는 프로야구 선수의 커리어경영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최향남 선수가 최근 깜짝 주목받게 된 것은 그의 특이한 경력과 도전에 있습니다.
미국 클리브랜드 인디언스 산하 트리플A 팀인 버팔로 바이슨스 소속으로 올시즌 34경기에 출장해 8승5패, 평균자책점 2.37 로 놀라운 성적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로 진입하기 위한 그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6년 9월 4일 시즌을 마치고 구단측은 메이저리그 승격자 6명의 명단에서 그를 제외하였습니다. 충분히 기대해 봄직한 좋은 성적이었지만 구단측은 젊은 선수들로 승격대상자를 가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을 확인한 최향남 선수는 곧바로 7일 귀국하였습니다.

최향남 선수의 이력서

그럼 여기서 잠깐 최향남 선수의 이력을 살펴봐야 겠습니다. 그의 이력서를 약식으로 작성해 보겠습니다.

기본사항

성명 : 최향남
생년월일 : 1971년 3월 28일생(양력)
병역사항 : 육군 현역 필(1991년~ )

학력사항
1990년 2월 영흥고등학교(목포) 졸업

경력사항

1990년 ~ 1996년  프로야구단 해태타이거즈
1996년 ~ 2003년   프로야구단 LG트윈스
2004년 ~ 2005년   프로야구단 기아타이거즈
2005년11월 ~ 현재 미국 클리브랜드인디언스 트리플A 버펄로 바이슨스 재직중

상세경력사항

해태타이거즈 (1990~1996)
1990년 0승 1패 평균자책 15.19
1995년  0승 5패 평균자책 3.86
1996년  1승 0패 평균자책 4.88

LG트윈스 (1997~2003)
1997년 8승 3패 평균자책 2.99
1998년 12승 12패 평균자책 3.63
1999년  8승 5패 평균자책 4.26 
2000년  4승 7패 5세이브 평균자책 3.46 
2001년  0승 1패 평균자책 6.75 
2002년  7승 9패 평균자책 4.46
*2003년 11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트라이아웃 참가(일본)
*2004년 2월 대만 라뉴 베어스 테스트 참가

기아타이거즈 (2004~2005)
2004년  2승 1패 평균자책 3.57
2005년  2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 4.10

* 한국프로야구 활동시 통산 44승 4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3.91

버팔로파이슨스 (2006)
2006년 8승 5패 평균자책 2.37 (출장 34경기)

다시 보는 최향남 선수의 경력

위 상세한 경력사항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최향남 선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태타이거즈에 입단해서 부진하게 출발했고, 4년간은 완전히 출장하지 못한 공백상태였습니다. 이 당시 해태의 감독이었던 김응룡 감독은 최향남 투수를 '불펜의 선동렬'이라고 했습니다. 불펜에서 구질이 좋은데 마운드에 들어서면 웬일인지 구질이 떨어지고 난조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편 최향남 선수는 '새가슴'이라는 별로 예쁘지 않은 별명도 얻게 됩니다.

LG트윈스 시절에는 경력상에서 위기를 의식했을까요. 아주 열심히 던져서 1997, 98, 99년 3년동안에는 상당히 좋은 성적으로 LG트윈스의 에이스 역할도 했습니다. 그러나 2천년부터는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고, 2001년에는 어깨 부상으로 1패만을 기록했습니다. 2002년 부활하는 듯 했으나 2003년 부상여파로 단 한경기도 출장하지 못한 채 바로 그해 10월 방출됐습니다. 가까스로 그의 첫직장이었던 기아타이거즈로 정착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2003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였으나 "방출 이력이 있는 선수는 안 봐도 뻔하다"고 하여 곧바로 짐을 싸야했습니다. 뒤이어 최향남 선수는 2004년 2월 대만으로 향하여 라뉴 베어스에서 다시 테스트를 받았으나 무소식 이었다가 기아에 재입단 하자마자 오라고 연락와서 못간 경험도 거치게 되었습니다.

기아에 정착한 뒤 빅리그에 대한 꿈을 접지 않은 최향남 선수는 다시 진출을 시도한 끝에 결국 2005년 2월 미국행에 성공하여 빅리그의 바로 아래 급인 마이너리그 트리플A의 버팔로 바인슨스(클리브랜드 인디언스 소속)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최향남 선수가 보여주는 커리어경영의 교훈

36세의 노장 투수. 필살기도 없는 평범할 수도 있는 투수. 통역도 에이전시도 없이 혈혈단신 미국으로 향한 기인투수, 풍운아, 남들이 말리는 짓을 강행한 투수 최향남.

우리가 그의 경력에 다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재능마저 탁월한 상태에서 마이너리그 트리플A 시리즈에서 올린 놀라운 그의 성적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쩌면 언젠가 피어날 수 밖에 없는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 커리어경영에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단지 호흡을 가다듬으며 끊임없이 도전과 재도전을 반복한 것입니다. 지금 메이저리그의 중간이상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만일 끝내 메이저리그행이 좌절된다면 일본무대도 두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럼, 최향남 선수의 커리어와 도전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자신의 인생, 커리어(경력)의 주인 자기 자신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늦은 나이와 좋지 못한 성적에 연봉 10만불에 미국 마이너리그행을 강행한 것은 누가 뭐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뛰고 싶은 무대에서 뛰고자 하는 그의 주인정신입니다. 최향남 선수의 가장 빛나는 모습입니다.

2.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상세경력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그는 처음부터 빅리거가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3.철저한 자기관리를 합니다.
  그의 아내가 언론에 말하고 있듯이 그는 평소에도 자기관리에 매우 철저하다고 합니다. 커리어경영의 본질은 바로 자기경영, 자기관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입니다.
  다른 사람의 만류나 객관적인 선수로서의 평가에만 그가 의존했다면 오늘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가 관심가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억제하지 못할 열정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5.현실에 맞는 역동적인 커리어를 경영합니다.
  그가 무조건 아무런 타산없이 도전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이저리그가 안되면 마이너리그, 미국에서 안되면 일본무대, 외국무대에서 안되면 한국무대에서라도 쉬지 않고 자신의 프로선수로서의 경력을 경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난관과 시련이 있어 느린 전진이 있을 지언정 그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6.자기자신을 믿고 미래를 낙관합니다.

  이번 시즌 마감후 메이저리그 승격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제외되자 같은 팀의 동료들조차 구단에 항의하라고 조언할 정도로 그의 마이너리그 첫해의 성적과 실력은 그의 메이저리거로서의 손색없는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미래를 낙관하여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의 낙관적인 어투는 예전 '와신상담'같은 우울한 도전에 비해 훨씬 현대적입니다. "저는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았어요.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향해 야구하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얼굴 찌푸릴 일이 없었다니까요."

나는 스포츠기자도 아니고 프로야구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가 앞으로 그가 일구어 나가는 경력경로와 성취에도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앞으로 잘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주변환경이나 여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의 주인임을 확고히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주인다운 프로선수로서의 태도와 굴함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오늘 경력관리의 기술을 익히려고 애쓰는 많은 경력직장인들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만한 경력이다.(2006-09-1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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